사람은 누구나 옷을 입는다. 외출할 때도, 근무할 때도, 달리기나 축구를 할 때도, 심지어는 수영장에서도 수영복을 입는다. 그렇다면 사람이 언제 어디서나 착용하는 옷에 다른 기능을 덧입힌다면 어떨까. ‘웨어러블 컴퓨팅(Wearable Computing)’은 바로 이러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초창기 단순히 사람의 몸에 IT기기를 걸치는 데 머물렀던 웨어러블 컴퓨팅은 최근에는 섬유와 일체화하여 옷이 곧 IT기기가 되는 시대에 이르렀다. 더 나아가 웨어러블 컴퓨팅은 사람의 옷이 아니라 사람의 몸속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사람이 셈이나 제조에 필요ㄱ한 물건을 몸에 지니려 한 것에서 웨어러블 컴퓨팅의 시초를 찾는다면 그 시작은 한참을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2600년경 중국에서 나온 주판에서, 가깝게는 1907년 선보인 아날로그 손목시계도 웨어러블 컴퓨팅과 개념은 같다.
물론 ‘컴퓨팅’이라는 의미에서 웨어러블 컴퓨팅의 역사는 이보다 훨씬 짧다. 학계는 1960년대 미국 MIT가 개발한 담뱃갑 크기의 아날로그식 웨어러블 컴퓨터를 시초로 본다. 이후 웨어러블 컴퓨팅은 지금으로 치면 원시적인 수준의 행보를 보이다가 1990년대 이후 인터넷, 노트북PC 등의 확산에 힘입어 급속한 발전을 이뤘다.
연구 주체도 대학·연구소 중심에서 벗어나 정부, 민간 기업 등으로 확산되면서 2000년대 이후에는 웨어러블 컴퓨터가 소비자 가전 제품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패션·스포츠·엔터테인먼트 등의 용도로 상용화를 이루고, 최근에는 유비쿼터스 기술과 만나 헬스케어 등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이제는 웨어러블 컴퓨팅의 선을 긋기 힘들 정도로 광범위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하는 웨어러블 컴퓨터는 안경형 모니터라 할 수 있는 ‘HMD(Head Mounted Display)’다. HMD는 당초 군사 목적으로 개발됐으나 최근에는 의료·엔터테인먼트·학습·산업용 등으로 다양하게 쓰인다.
HMD는 컴퓨팅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디스플레이, 모바일 통신 기술 등의 발전에 힘입어 지속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PDA, 휴대폰, MP3플레이어 등도 웨어러블 컴퓨팅의 단골 손님이다. 이들 소형 디지털기기는 의류의 주머니 속 혹은 섬유 자체에 삽입돼 웨어러블 컴퓨팅을 구현한다. 과거에는 귀걸이나 팔찌 정도의 액세서리 형태였지만 최근에는 옷 자체가 디지털기기 역할을 하는 섬유 일체형으로 개발되고 있다.
웨어러블 컴퓨팅의 영역이 너무 넓어서 발전 방향을 점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전문가들은 의류가 곧 디지털기기가 되는 현재의 흐름을 지나면 인체가 컴퓨팅 인터페이스 역할을 하는 쪽으로 발전할 것으로 내다본다.
이미 상용화된 캡슐형 마이크로 내시경, 심장박동 모니터링시스템 등이 그 예다.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웨어러블 컴퓨팅의 궁극의 도착점은 ‘사이보그’가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웨어러블 컴퓨팅이 장미빛 전망만을 지닌 것은 아니다. 우선 상용화된 제품이 많지 않고, 상용화됐더라도 가격이 너무 비싸서 특수용도 외에는 쓰이기 힘들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아직은 첨단 컴퓨팅 기술이라는 상징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 개발된 웨어러블 컴퓨팅이 종국에는 인간의 능력을 퇴행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이 점점 발전할수록 인간의 기능 중 더 많은 영역을 웨어러블 컴퓨터가 차지한다. 언뜻 보면 신체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 같지만 결국 컴퓨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신체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조일연 ETRI 웨어러블컴퓨팅연구팀장은 “웨어러블 컴퓨팅 기술이 현재의 착용 방식에서 점차 의류 일체, 나아가 신체 이식(inside) 형태로 발전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를 진정으로 인류의 삶의 질 향상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학계와 업계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