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7주년]뉴IT,기술이 미래다-스마트그리드

난달말 제주 구좌읍 월정리에서 열린 ‘제주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 착공식’에서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착공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난달말 제주 구좌읍 월정리에서 열린 ‘제주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 착공식’에서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착공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스마트 그리드 개념도

 요즘 녹색성장의 강력한 수단으로 ‘스마트 그리드’가 뜨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일명 스마트 그리드 테마주가 생길 정도다. 우리말로는 ‘지능형 전력망’이라고도 한다. 말 그대로 기존 전력망을 좀 더 똑똑하게 만들자는 얘기다.

 그 수단으로는 역시 정보기술(IT)이 쓰인다. 즉, 전력공급자와 소비자가 IT를 통해 양방향으로 실시간 정보를 교환, 에너지효율을 최적화한다. 이렇게 되면 낮에는 높고 밤이면 낮아지는 들쑥날쑥한 전력수요 곡선이 평탄해져 전력회사 측에서는 수급 불균형에 따른 예비 전력 지원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 발전소를 또 지을 필요가 없어진다.

 똑똑한(Smart) 전력망(Grid)을 일컫는 스마트 그리드는 전기를 만들어 파는 업체와 소비자가 서로 정보를 주고받아 에너지 소비를 효율적으로 최적화시킨다. 우리가 내는 전기요금은 단가가 정해져있지만 사실 공급자 쪽에서는 발전단가가 다르다.

 에어컨을 많이 사용하는 여름철은 전력사업자는 전기를 만드는 데 비용이 많이 들고 공해 유발도 큰 화력발전소를 다수 가동한다. 만약 전력 사용량이 줄게 되면 단가가 저렴한 원자력 발전소만 가동해도 된다. 발전단가가 비쌀 때는 요금을 비싸게 매기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많은 사람이 전력사용을 줄일 것이다. 이러한 원리가 작용하도록 전력망을 지능화하는 게 바로 스마트 그리드다.

 이렇게 되면 KEPCO(한국전력)과 같이 전력을 파는 기업 측에서는 전력 수요를 예측할 수 있어 좋다. 소비자 역시 요금이 상대적으로 쌀 때 각종 전기기기를 돌릴 수 있어 이롭다.

 예컨대 세탁기나 전기차의 타이머 기능을 이용해 심야 등 가장 싼 전기 요금 시간대에 맞춰 작동시킨다. 물론 이런 예가 가능하려면 스마트 그리드 기능이 내장된 가전 제품이 양산되고 자동차 배터리 기술도 지금보다 훨씬 발전해야한다는 전제가 충족돼야 한다.

 스마트 그리드는 정부가 나서 의욕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지난 2월 이명박 대통령에게 ‘세계 최초 국가단위의 지능형 전력망 구축 비전’을 발표하고, 이어 3월말 ‘지능형 전력망 로드맵 수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현재 국가 차원의 스마트 그리드 청사진 그리기에 한창이다.

 그 결과는 오는 11월 께 발표된다. 여기에는 지능형전력망을 촉진하기 위한 법안과 실시간 전기요금제의 도입방안, 또 내수창출과 수출산업화 방안 등이 담길 예정이다. 얼마 전에는 한국스마트 그리드협회이 결성됐고 기존의 전력IT사업단을 확대개편한 한국스마트그리드사업단도 탄생했다.

 특히 정부는 한전 등과 공동으로 제주도에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를 만들어 각종 시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특히 이 테스트베드는 국내 최초이자, 세계적으로도 실생활과 연계된 첫 스마트그리드 테스트베드라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달 31일 제주특별자치도 구좌읍 에너지기술연구원 제주 기지에서 열린 착공식에서는 지경부·KEPCO·제주도·스마트그리드사업단 간 양해각서(MOU) 교환식도 함께 거행됐다.

 특히, 업계가 주목하는 부분은 △스마트 플레이스(주거) 분야를 비롯해, 전기자동차가 운행할 수 있는 인프라와 시스템을 구축하는 △스마트 트랜스포테이션(운송), 풍력·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가 전력망에 안정적으로 연계되는 △스마트 리뉴어블(분산) △스마트 파워그리드(송전) △스마트 일렉트리시티 서비스(시장) 등 5개 분야 사업자들이 오는 11월 초에 선정된다는 점이다.

 지경부는 이들 5개 분야별로 필요하다면 복수컨소시엄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론이고, 경쟁력 있는 외국기업에도 참여 문호를 개방할 예정이다.

 11월 말 선정된 컨소시엄과 정식 계약이 체결되면 오는 2013년까지 전체 소요사업비의 50%를 580억원 한도에서 정부가 지원한다. 지경부 관계자는 지금까지 통신사업자들을 중심으로 스마트 플레이스 참여에 대한 관심과 문의가 많았으며, 중전기기업체는 스마트 파워그리드 분야에 대한 참여 의욕이 높게 나타났다고 전했다.

 앞으로 사업자 선정이 임박할수록 가전업체와 자동차업계까지 컨소시엄 참여 열기가 더욱 고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스마트 계량기 보급을 통해 실증단지 주민들의 실시간 전력 요금제 사용이 일상화되면, KEPCO의 기존 요금 체계와 실증단지 적용 요금체계 중 더 싼 요금을 낼 수 있도록 일종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 전력 자동제어 전자제품을 실증단지 내 주민이 구입하게 되면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다는 시각이다.

 김정관 지경부 에너지자원실장은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테스트를 같이 진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며 “2013년 말까지 6000여 가구의 테스트를 완료하고 이후에는 제주도에 시범도시를 더 키워서 확대하는 계획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스마트그리드 성공의 전제 조건, ‘실시간 가격요금제’

 스마트 그리드는 폐쇄적인 전력망에 개방적인 정보통신망을 결합,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이는 고품질 전력망과 정보통신 기술(ICT)이 핵심인데, 한국은 조밀한 국토면적과 높은 인터넷 이용률, 세계 최고 수준의 ICT와 고품질 전력망, 상대적으로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하지만 우리의 스마트 그리드를 세계 최고로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할 과제가 있다. 바로 ‘실시간 요금제(Real-Time Pricing)’의 도입이다. 이는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전기의 가격을 소비자에게 적용하는 제도다.

 실시간 가격신호는 스마트 그리드가 지향하는 궁극적 목표인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 소비절약, 투자비 감축, 에너지 소비정보를 활용한 새로운 비즈니스 창출(전기차의 확산, 배터리 충전소 등)을 달성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전력거래소 주최로 서울 역삼동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린 ‘2009 서울 국제전력시장 콘퍼런스’에 참석한 미국 최대 전력계통 운영기관인 PJM의 테리 보스턴 사장은 “실시간 가격신호에 반응하는 수요를 적극 유인하기 위해 실시간 수요예측과 운영기법을 개발해야하며, 특히 소매전기요금 제도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종웅 LS산전 부사장도 이날 ‘스마트그리드에서의 소비자 역할’을 주제로 한 세션발표에서 “국내에 스마트그리드를 빠르고 원활히 구축하려면 현재의 용도별 전기요금 체계를 버리고, ‘실시간 가격제’를 전격 도입해야한다”고 말했다.

 전기판매사와 소비자간 양방향 정보소통과 가격에 기반한 소비자의 반응은 스마트그리드의 필수 요건이기 때문에, 이를 위한 법·제도 마련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게 최 부사장의 설명이다.

 우리는 물건을 사기 전에 당연히 가격부터 확인한다. 하지만 ‘전기’라는 상품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아마 전기는 우리가 물건을 구매·소비하기 전에 가격을 모르거나 혹은 묻지 않는 거의 유일한 상품일 것이다. 가격을 모르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다. 전기요금이 통상 ‘전기세’라 불리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전기의 가격을 정확히 모르니 습관적으로 낭비를 하게 되거나, 사용상 불편을 감수하게 된다. 실시간 가격신호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준다. 뿐만 아니라,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다양한 신 비즈니스를 창출한다. 이것이 바로 스마트 그리드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