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드라마 애호가들 사이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사건 중 하나가 MBC 주말 드라마 ‘탐나는도다’의 조기종영 결정이다. 이 드라마는 주말 드라마라는 자리에 썩 어울리지는 않지만 사전제작으로 극의 완성도를 높이는 한편 톡톡 튀는 감수성으로 그동안의 시대극들이 보여주지 못했던 발랄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조선시대 제주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 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는 정혜나 작가의 만화 ‘탐나는도다’에서 출발했다. 1권이 발매되기도 전에 드라마 판권이 팔리면서 그 독특함을 인정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혹시 드라마 조기종영이 아쉬운 팬이라면 꼭 원작 만화를 읽어보기 바란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가득 풍겨 나오는 제주도 바다 내음에 흠뻑 취할 수 있을 것이다.
등장인물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면서도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한국의 순정만화는 그동안 많은 드라마에서 새롭게 표현돼 왔다. 여성그룹 베이비복스의 막내에서 연기자로 변신한 윤은혜. 그녀를 연기로서 스타로 만들어준 드라마가 바로 ‘궁’이다. 이 드라마의 원작인 만화 ‘궁’은 만일 ‘영국처럼 우리나라도 여전히 왕가가 유지되고 있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 평범한 여고생이 세자비가 되면서 겪는 일들을 흥미진진하게 펼침으로써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드라마도 이러한 만화의 기본 모티브를 살리면서 드라마적 요소를 놓치지 않아 시청률에서 성공을 거뒀고, 또 윤은혜·주지훈 등 새로운 스타를 발굴하기도 했다. 만화 ‘궁’은 아직 연재 중이니 드라마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읽어보기를 권한다.
인기 있는 순정만화를 드라마화한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풀하우스’가 있다. 정지훈(비), 송혜교라는 최고의 스타와 드라마 ‘푸른 안개’ ‘거짓말’ 등으로 마니아 층을 확보한 스타 PD인 표민수가 만나 화제가 됐던 작품으로 연일 시청률을 경신했던 2004년 최고의 화제작이었다. 이 드라마의 원작은 원수연 작가의 ‘풀하우스’. 1994년 처음 연재를 시작한 이 만화는 한국에서의 인기뿐만 아니라, ‘한류’라는 말이 낯설었던 당시 대만을 중심으로 아시아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린 히트작품이기도 하다. 드라마 방영 즈음 속편 격인 ‘풀하우스 두 번째 이야기’가 만화로 발간되기도 했으니, 주인공들의 알콩달콩한 사랑이야기가 어떻게 더 펼쳐졌는지 읽어보지 않으면 섭섭할 것이다.
이 정도 되면 순정만화를 드라마화한 작품은 왜 이렇게 사랑 이야기만 있는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이 질문에 1999년 KBS에서 방송한 ‘우리는 길 잃은 작은새를 보았다’는 드라마를 답으로 말해주고 싶다. 방송 당시 드라마 시청률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해 많은 만화애호가들의 아쉬움을 산 작품이나, 동명의 원작 만화는 한국의 대표 순정작가인 황미나의 작품으로서 부익부 빈익빈을 비롯한 1985년 시대적 문제들을 정면으로 다뤄 한국 순정만화계에 새로운 의미를 담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물론 만화책 처음 발간했을 때에는 사전심의제도로 인해 모든 그림이 초토화되는 불운을 겪기도 한 작품이나, 순정만화란 사랑 타령이나 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바꾸어 놓은 중요한 작품이기도 하다. 또 올해 초 종영된 KBS 사극 ‘바람의 나라’ 원작도 김진 작가의 만화 ‘바람의 나라’로 순정을 넘은 사극 만화의 새로움을 보여준 작품이다. 지금이야 ‘주몽’ ‘태왕사신기’ ‘선덕여왕’ 등 삼국시대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가 있으나, 1992년 만화 ‘바람의 나라’가 연재를 시작했을 무렵, 고구려의 대무신왕 무휼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는 만화계뿐만 아니라 문화계 전반에서도 새로운 시도였다. 그래서일까, 드라마로 제작되기 전부터 게임으로, 뮤지컬로 먼저 선보였던 만화기도 하다. 한번 읽어본다면 순정만화가 보여주는 역사 판타지 만화의 정수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이야기, 관계, 그리고 상상하지 못한 세계를 보여주며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말을 걸고 있는 한국의 순정만화. 앞으로 어떤 만화 작품이 어떤 드라마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지 기대가 되지 않는가. 이것이 바로 우리 순정만화의 힘이다.
백수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규장각 콘텐츠 기획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