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바람의 나라’, 1998년 ‘리니지’로 시작된 우리나라 온라인게임은 이제 세계 시장의 선두그룹으로 발돋움했다. 국내 문화 콘텐츠 산업의 45%를 차지하고 지난해 자동차 8만대에 해당하는 10억달러를 수출한 우리나라 대표 문화 상품이다. 반면 급속한 게임 대중화는 젊은층과 기성세대와의 괴리를 불러왔으며 게임이란 새 미디어에 대한 몰이해와 오해 속에 각종 게임규제가 이뤄졌다. 2006년 불거진 ‘바다이야기’ 상처는 아직도 치유되지 못했다. 전자신문은 ‘미래를 여는 즐거운 창-포스트 게임’을 기획하면서 게임의 긍정적 가능성에 주목했다. 산업적인 성장성은 물론 디지털 시대의 국민 여가이자 우리 아이들이 친구들과 어울리는 사회화의 장이 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게임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원칙에 따라 규제와 진흥 정책을 펼치는 것이 필요한지는 매우 중요하다. 규제 시리즈를 마무리하면서 전문가 좌담회를 통해 이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자 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게임 전문가들은 균형잡힌 시각과 풍부한 대안, 미래에 대한 통찰력으로 인상적인 토론을 진행해주었다.
#사회적 인식 개선과 놀이 문화로서의 게임
◇사회(조인혜 전자신문 미래기술연구센터 팀장)=게임이 우리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았지만 게임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게임을 어떻게 다뤄야할 지 모르는데서 오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고…. 이런 인식들이 게임을 둘러싼 정책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유병채(문화부 게임콘텐츠산업과장)=현재 게임에 대한 사회적 논의 구조는 새 미디어에 대한 저항이나 기성 세대의 반감이 과도하게 작용하는 반면 이를 균형 잡을 수 있는 목소리는 찾기 힘든 상황이다. 정부는 산업 진흥과 적절한 규제 모두를 고민해야 하는 입장인데, 전자신문의 포스트게임 기획이 실증적 데이터와 연구를 통해 이런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해주고 있어 기대가 크다.
◇황승흠(국민대 법대 교수)=미국의 경우 놀이 문화라는 기반이 20세기에 이미 확립됐다. 메이저리그 야구는 이미 1960년대에 3대가 함께 즐기는 문화가 되지 않았나. 그런 기반 위에 비디오 게임도 가족 놀이문화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우리는 그런 놀이문화가 없는 상황에서 게임이 급속하게 퍼지니까 기성 세대가 더 민감하게 받아들인 측면이 있다.
◇김민규(한국콘텐츠진흥원 팀장)=우리 사회가 게임을 과도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역기능을 과하게 받아들이고 이에 대응하다 보니 순기능도 필요 이상으로 포장하고…. 기술 발전에 맞춰 노는 미디어가 다양해진 것 뿐이다. 다만 현재 자녀에 대한 기대가 공부 하나로 집중되다 보니 놀이문화가 가정에서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이런 문화가 청소년에 집중돼 나타나면 더 공격받기 쉬운 구조다.
◇권이형(엠게임 대표이사)=게임은 오늘날 하나의 문화적 흐름이다. 못하게 한다해서 막을 수도 없다. 게임 안 하면 도리어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기 힘든 상황이다. 부모들이 게임하면 시간 뺏기고 공부 못한다 등 막연한 두려움 있는데 시간 지나면 이런 문제는 사라지리라 본다. 다만 사회적 환경 등을 고려해 이런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도록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하다.
#현재 게임 규제 정책의 문제점
◇사회=이 문제는 결국 사회 성숙도와 관계가 있지만 지금의 문제는 게임의 부정적 인식을 확대 재생산하는 구조에 있다. 성숙한 게임문화를 위해서라도 미디어나 정책, 입법 담당자의 인식 전환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현재 게임에 대해 균형잡힌 정책이 이뤄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유병채=규제 정책을 선제적으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문제가 불거지면 뒤늦게 쫓아가는 경우가 많다. ‘바다이야기’라는 우리만의 기억도 있는 탓인지 표면적 현상에 비해 과도하게 문제가 커지는 부분도 있다. 어떤 게임에 문제가 생기면 그것 때문에 더 큰 규제가 따라오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이슈가 된 사안에 대해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정부의 어려움이다.
◇정욱(한게임 본부장)=게임은 흥행 산업이라 규제가 없으면 한계점까지 치닫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사행성·폭력·선정성 등을 중심으로 적절한 심의와 등급제 등의 규제는 필요하다. 다만 심의 과정에서 게임 콘텐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있어 안타깝다. 폭력이나 선정성이 등장하는 게임의 맥락이나, 게임이 어떤 연령층에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 하는 고민보다는 형식적 심의에 치우치는 경우가 많다. 게임 및 게임 세대와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이승훈(한국게임개발자협회장)=게임 개발자 입장에서 이야기하면 심의 과정의 제약이 개발 활동을 가로막는다. 심의를 거치지 않은 게임은 배포를 할 수 없는데, 개인 자격으로는 심의를 신청할 수 없다. 또 소규모 개발사가 심의를 신청하기에는 심의료와 서류 준비, 절차 등의 과정이 복잡하다. 요즘 인디 개발자들의 작품을 보면 기성 게임의 모방이 아니라 새로운 미디어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참신한 게임들이 많은데, 이런 게임들이 널리 알려질 기회 자체가 없다. 요즘 애플 앱스토어에 관심 갖고 개발하는 프로그래머도 많다. 국내에선 아직 아이폰도 출시 안 됐고 앱스토어 한국 사이트에 게임 카테고리도 없으니 주로 해외 시장을 바로 겨냥한다.
◇황승흠=게임에 대한 비난도, 게임의 정책 이슈도 결국 청소년 문제와 사행성 문제로 귀결된다. 청소년 문제는 등급제로 거의 수렴된다. 현재 국가 강제 등급제를 실시하는 나라는 한국 외에 호주·싱가포르 정도이다. 나머지는 대부분 업계 자율 규제를 채택한다. 문제는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통제할 수 있느냐이다. 사행성 문제는 도박을 금지하는데 따른 필연적 현상이다. 도박을 원하는 수요가 게임으로 흘러들어 오는 것이다. 물론 국가는 사행 행위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설령 부분 유료화 모델을 없앤다 해도 사행성 문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더 본격적인 도박 시장이 음성적으로 열릴 것이다. 이는 국가가 정책 차원에서 검토할 문제이지 게임을 비난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자율 규제 논의 필요-기업 노력도 필수
◇사회=문제 행동은 강력히 처벌하고 게이머의 게임 선택이나 기업의 비즈니스는 재량을 줘야 하는데 지금은 기업을 길들이고 문제를 덮으려는 데 너무 초점이 맞춰진 것은 아닌가 한다. 규제의 지점 선정에 문제가 있다 할까. 자율규제 등의 방법으로 접근을 달리 해 나갈 수 있을까.
◇김민규=자율규제는 정부의 큰 정책 방향이기도 했으나 ‘바다이야기’ 사태로 논의를 진행시킬 수 없었다. 지난해 게임산업 진흥을 위한 2차 중장기 계획에 그 내용이 다시 들어갔고,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에도 자율 규제를 위한 실질적 근거가 처음 마련됐다. 상징적 의미가 있는 일이고, 이번에 못 하면 다시 몇년이 그냥 흘러갈 것이다.
◇황승흠=민간 자율 규제는 자율적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사회의 압력이 중요하다. 미국·일본이 자율 규제가 잘 되고 우리나라는 아직 못 하고 있는 것이 꼭 외국 기업이 도덕적이고, 우리 기업은 비도덕적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미국서 엔터테인먼트소프트웨어등급위원회(ESRB) 등급 안 받고 내용이 논란이 되는 게임은 월마트에서 받아주지 않는다. 월마트가 그런 판단을 하는 것은 사회 여론을 의식해서다. 그러니 국가가 개입 안 해도 내부 규율이 이뤄진다. 우리나라 정부 규제는 지나치게 제도화돼 있을 뿐 강하지는 않다. 기업도 국가가 정한 것만 지키면 되기 때문에 자율 규제에 소극적인 측면도 있다.
◇유병채=자율 규제로 간다는 방향성은 어느 정도 제시돼 있다. 이를 어떻게 단계적으로, 또 전략적으로 접근하느냐가 문제다. 그 시기를 앞당길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게임에 대한 신뢰도 제고 등의 노력도 필요하다. 업계 내부의 자율적 관리도 기대한다. 지금까지 게임 산업이 높은 성장률 유지하기 위해 단순반복적 이용 행태나, 레벨 올리기 등에 치중한 게임을 많이 만들었다면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게임 기획 등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승훈=우리나라 게임은 계속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가 많다. 하지만 요새 유저들은 플레이 시간은 늘어도 1회 이용 시간은 감소하는 등 과거와 같은 게임 성공 모델이 적용되기 힘들다. 인디 개발자들이 만드는 다양한 게임들이 게임계를 풍성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권이형=법은 최소한의 선을 그어놓은 것이고, 업계는 정부보다는 여론 수위를 보며 가는 것이 이상적이다. ‘바다이야기’ 사태로 업계도 많은 교훈을 얻었고, 스스로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다. 이제 자율 규제 환경으로 가는 시작점이다. 예산 등의 부담이 생길 수 있지만, 과감히 가야 할 길이란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너무 제도로만 규율하려 하지 말고 자율에 맡겨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게임 리터러시를 높이자
◇사회=제도적으로 게임을 관리하는 한편 가정에서 게임에 대한 소양을 높이고 자녀의 게임 플레이를 잘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리라 본다.
◇김민규=게임을 한다는 것은 여러가지 개인적·사회적 소양을 학습하는 사회화 과정의 일종이다. 게임을 통해 여러 판단 고리들의 훈련이 가능하다. 아이들이 놀이를 하며 성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요새 아이들이 용돈 받아서 게임 아이템 많이 사지 않나. 그런데서 경제 관념을 교육시키는 등 부모가 게임을 통해 다양한 생활 지도를 할 수 있다. 그런데 무조건 못 하게만 한다. 게임 역기능 예방을 위해 부모자녀 게임캠프 등을 운영해 보면 확실히 부모의 태도가 달라진다.
◇정욱=한게임에서 서비스하는 ’한자마루’ 게임의 경우, 부모들에게 자녀가 게임을 얼마나 자주, 얼마나 많이 했고 한자는 얼마나 익혔는지 등 자세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렇게 자녀들의 게임 이용을 관리할 수 있는 도구가 있어도 사실 부모들이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부모가 게임에 대해 막연히 두려워하면서 게임 이용 습관이나 이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 지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유병채=게임 문제로 상담하는 사례를 살펴 보면 대부분 가정 환경 등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게임을 못 하게 한다 해도 가정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치료되지 않으면 소용없다. 지금 논의되는 셧다운제 등은 부모와 가정 차원에서 관리할 문제를 게임사나 정부에 관리하도록 요청하는 셈이다. 부모의 감독보다 좋은 규제는 없다.
◇황승흠=부모가 자녀와 함께 게임을 하며 인정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이 게임을 배우는 곳은 학교다. 부모가 게임에 대해 이해하고 자녀와 함께 하지 않으면 통제권을 완전히 잃고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부모가 게임을 체험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사실 중산층 이상 가정은 별 문제 없다. 자녀와 함께 할 시간이 적은 저소득 맞벌이 가정 등에 관심이 필요하다. 게임 기업들도 이런 부분에 사회 공헌 활동을 하면 좋겠다.
◇사회=좋은 말씀 감사하다. 게임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실효성 있는 게임 정책을 고민하는 단초가 되었으면 한다. 앞으로 전자신문은 게임과 관련된 이슈를 놓고 지속적으로 전문가들의 모임을 가질 계획이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정리=한세희 ETRC 연구기자 ha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