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폴로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극찬했다는 중국 저장성 항저우시. 서쪽으로 30분 가량 차를 달려 빈지앙 시내로 들어서자 모토동력 자전거와 자동차, 버스들이 서로 먼저 가겠다고 경적을 울려댄다. 차와 사람들이 뒤엉켜 혼잡하기 그지없다.
얼마 쯤 지나자 지금까지의 혼잡을 한 순간에 잊게 해주는 ‘오아시스’가 펼쳐진다. 울창한 숲과 녹색의 잔디밭, 현대적인 건물 등 휴양지같은 정취가 물씬 풍긴다. 이곳은 기업간거래(B2B)세계 시장 점유율 1위, 개인간거래(C2C)시장에서 불과 3년 만에 이베이의 아성을 무너뜨린 알리바바닷컴 본사다. 지난 12일, 올해 6월 이전 신축했다는 알리바바닷컴 본사에 가서 중국 IT를 이끈 원동력을 찾아봤다.
◇중국 속 ‘작은 실리콘밸리’=입구에 들어서기도 전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건물을 에워싸고 있는 기하학적인 건축물이다. 중국의 유명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이 외양은 창의적이고 활기찬 알리바바닷컴의 분위기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다섯개의 건물이 빙 둘러싸고 있는 중심부에는 분수가 있다. 그 사이사이 연못, 야외까페, 체육시설 등이 자리잡고 있었다. 세계적인 커피체인점인 스타벅스뿐만 아니라 고급 레스토랑을 연상시키는 사내 식당 등이 글로벌 IT기업의 위상을 말해주는 듯 하다.
직원들은 자유로운 복장을 하고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누는가 하면 혼자 앉아 수첩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적으며 생각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평온함 속에 치열함’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셈이다.
◇인터넷 기업이 아닌 ‘서비스’ 업체=입구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고객센터에 들어서니 300여명의 직원들은 전화기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고객에게 상담을 해주고 있다. 일부 직원은 흥분한 목소리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짓 발짓을 써가며 고객을 설득하는 모습이다. 세계 최대 기업간 전자상거래 업체의 심장부의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실제 알리바바닷컴의 고객 관리는 무척 엄격한 편이다. 얼마 전 다이아몬드 5개 등급의 한 우수판매자가 신용도를 조작했다는 제보를 받자마자 바로 퇴출시키는 조치를 취한 것은 중국에서도 화제였다.
비교적 ‘느릿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 중국에서 단호하고 발빠른 대처는 중국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결국 그 우수판매자는 타오바오에 직접 사과편지를 써서 보냈고 이는 또 한번 중국을 감동시켰다.
데이빗 웨이 알리바바닷컴 CEO는 “알리바바는 IT회사가 아니며 우리는 그저 고객에게 서비스하는 회사일 뿐”이라며 “우리의 핵심 경쟁력은 바로 서비스”라고 말했다.
◇타오바오의 독특한 ‘무협문화’=알리바바그룹의 설립자인 마윈 회장이 무협지 팬이라는 사실은 꽤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2003년 알리바바 그룹의 계열사인 타오바오를 만들 때도 처음부터 끝까지, 형식부터 내용까지 철저하게 무협세계를 본떴다고 했다.
그래서 직원들이 건네는 명함에는 이름 밑에 별명이 적혀 있었다. 이 별명은 무협작가 진융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이름이라고 했다. ‘장상품’이라는 별명의 직원은 “입사해서 내가 좋아하는 이름을 고르자 이미 다른 사람이 쓰고 있었다”며 “직원이 많아져서 진융 소설에 단 한번 등장하는 캐릭터 이름을 쓰려고 해도 경쟁률이 치열하다”며 웃었다.
사무실을 따라 들어가니 회의실은 ‘영취궁’, VIP사무실은 ‘광명정’이라 이름 붙여져 있다. 동행한 웨이 CEO에게 마윈의 별명을 물어보니 ‘풍청양’이라며 회원들에게 공지사항이 있을 때 이 닉네임을 사용한다고 했다. 웨이 CEO는 “타오바오는 이를 통해 직원들이 의로운 협객의 정신을 배우기를 원한다”며 “알리바바와는 또 다른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알리바바의 또 하나의 신화, ‘모니터링룸’=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으로 올라가니 거대한 모니터링룸이 있다. 가로 30m 크기의 초대형 전광판이다. 24시간 웹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전 세계 지도 및 중국 전역의 지도에 실시간으로 동시접속자 수와 최신 검색어가 노출되고 있다. 실시간 국가별 접속을 나타내는 그래프는 긴박한 국제 무역의 순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전광판에는 B2B 거래 사이트 알리바바닷컴, 중국 최대 C2C(고객 간 거래) 사이트 타오바오 닷컴, 온라인 지불결제 서비스를 담당하는 알리페이닷컴, 소프트웨어 전문업체 알리소프트, 중국 야후, 온라인 광고사이트 알리마마, 생활 소비 커뮤니티 커우베이 닷컴 등 7개 자회사의 전 세계 실시간 접속 상황을 보여준다. 접속자 수에 따라 빨강, 노랑 등으로 색을 달리해 어느 곳에서 체결이 많이 이뤄지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알리바바닷컴 건물을 나서려는 순간 5층 휴게실에 놓인 빨간색의 벽돌 모형의 조형물이 눈에 띄었다. 알리바바 홍보담당은 “1999년에 창립한 알리바바는 역사가 짧다. 5년 이상 다닌 직원들은 ‘명예의 벽돌’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누구나 노력하면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곳. 이것이 바로 ‘열린’ 알리바바닷컴의 ‘깨인’ 기업문화였다.
항저우(중국)=허정윤기자 jyhur@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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