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미국 포춘지가 선정한 ‘2009 가장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 리스트가 발표되자 국내 기업 인사홍보 담당자들은 깜짝 놀랐다. 2년 연속 1위였던 구글이 4위로 내려앉은 반면 스토리지업체 넷앱이 전년도 14위에서 1위로 껑충 뛰어올랐기 때문. 넷앱은 스토리지업계는 제외하고는 인지도가 낮았기 때문에 상당수는 회사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곳이었다. 사정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발표 이후 넷앱 본사는 밀려드는 방송국 촬영진으로 장사진을 이뤘다. 그들이 관심을 가진 것은 단 하나. 넷앱이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으로 선정된 비결이다. 서로 존중하는 문화와 탄탄한 팀워크로 뉴IT 시대를 열어가는 넷앱의 기업문화를 미국 현지취재와 e메일 인터뷰 등을 통해 알아봤다.
캘리포니아 특유의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지난 3일, 실리콘밸리 인근 써니베일에 위치한 넷앱 본사. 15개 건물로 이뤄진 넷앱 캠퍼스의 첫 건물인 ‘빌딩1’이 기자를 맞았다. 빌딩1의 전면 상부에 ‘넷앱’ 로고와 함께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 1위를 축하합니다!(Congraturations NetApp! #1 Best Company to Work For)’라는 플래카드가 나란히 걸려있었다.
이날 기자를 안내한 넷앱의 PR매니저 네이선 필립스는 “직원들 모두 일하기 좋은 기업 1위로 뽑힌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지역 언론은 물론 전국 방송사가 연일 취재할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고 말했다. 더욱 심해지는 궁금증.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 넷앱에는 무엇이 있을까.
◇여유롭고 평온한 ‘전쟁터’=실리콘밸리에 위치한 미국 기업을 방문할 때마다 갖는 생각은 정말 이곳이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글로벌 IT기업의 본사가 맞나 하는 것이다.
넷앱 본사 역시 4∼5층 규모의 아담한 건물이 단지 형태로 서 있고, 그 사이사이에는 연못, 야외카페, 분수대, 체육시설 등이 자리잡고 있었다. 연인들의 데이트장소 같은 야외카페에 마침 직원 두어명이 한가로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화창한 날씨에, 옆에서 들려오는 분수 소리가 더해지니 잠깐 취재라는 기자의 본분을 잊을 정도였다.
건물 내부도 바깥과 비슷했다. 건물마다 크고 작은 카페가 직원들의 휴식을 도왔다. 고급레스토랑을 연상시키는 사내 식당에는 유기농 식재료만을 사용한다는 안내장이 놓여있다. 한 건물에는 넓지 막한 실내 농구코트가 들어서 있다.
◇마사지 쿠폰이 전부는 아니다=농구코트를 뒤로 하고 건물을 나서니 여전히 햇볕이 뜨겁다. 겨우 취재라는 본분을 찾고 보니 궁금증이 들었다. 이 정도 시설은 사실 실리콘밸리 소재 글로벌기업은 대부분 갖추고 있는 수준이다.
올 초 한국을 찾았던 톰 멘도자 부회장이 “‘마사지 쿠폰’이 좋은 기업의 척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분명 좋은 근무환경만이 전부는 아닐 듯했다.
그러고보니 회사가 지나치리만큼 조용했다. 사무실에는 군데군데 빈 자리도 보였다. 동행한 필립스에게 물어보니 재택근무자가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재택근무 조건은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별다른 기준은 없고 그냥 상사에게 보고하면 된다”는 싱거운 대답이 돌아왔다. “상사와 직원 모두 상식적인 수준에서 재택근무를 결정한다”는 설명이다. 한마디로 구성원간의 ‘신뢰’가 재택근무의 조건이라는 뜻이다.
◇신뢰에서 시작되는 팀워크=이러한 신뢰는 자연스레 조직 내 팀워크 강화로 이어진다. HP·시만텍 등을 거쳐 지난해 넷앱에 합류한 줄리 패리시 부사장은 “넷앱이 다른 글로벌 IT기업에 비해 팀워크와 협업 정신이 강하다”고 전했다.
팀워크가 하루아침에 저절로 형성된 것은 아니다. 팀워크의 바탕은 모든 임직원들이 회사로부터 존중받는다고 느끼는 데서 시작됐다. 멘도자 부회장은 매일 평균 10∼15명의 직원들에게 전화를 건다. 이른바 ‘칭찬전화’다. 직원A가 사내에서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하면 동료B가 경영진에게 알린다. 그럼 멘도자 부회장이 직접 직원A에게 연락해 ‘이러이러한 성과를 거둬서 고맙다’고 칭찬한다. 직원A는 예상치못한 최고경영진 전화에 놀라지만 자신이 회사로부터 존중받는 관심의 대상이라는 점에 흡족 해한다.
◇‘미국넷앱’에서 ‘글로벌넷앱’으로=넷앱은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유지하는데 힘쓴다. CEO도 개인 집무실이 아니라 다른 사원들과 마찬가지로 개방된 공간에서 근무한다.
이는 한국넷앱 역시 마찬가지다. 존 피트 한국넷앱 사장도 지난해 취임하자마자 닫힌 공간에서 열린 공간으로 자신의 책상을 옮겼다. 넷앱 기업문화가 본사뿐 아니라 넷앱이 진출한 130여개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아태본부가 위치한 싱가포르에서 채널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조지 버지스 디렉터는 “본사에서 시작된 서로를 존중하는 넷앱의 기업 문화가 아시아로도 전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무조건 본사의 기업문화를 억지로 각 지사에 끼워 맞추지는 않는다. 넷앱은 서로 존중하는 문화를 유지하면서, 본사와 현지 문화를 적절히 결합하기 위해 신중함을 잃지않는다.
◇사회봉사도 기업문화=넷앱은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뿐 아니라 존경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서도 힘쓰고 있다. 넷앱의 모든 직원은 1년에 닷새간 봉사활동을 위한 휴가를 사용할 수 있으며 자녀 입양시에는 보조금을 받는다.
넷앱은 매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불우 어린이들에게 장난감을 지원하는 자선행사에 참여한다. 지난해에는 2만여 어린이가 넷앱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다고 한다.
이쯤되니 마사지 쿠폰이 전부가 아니라는 멘도자 부회장의 말이 얼추 이해가 됐다. 처음에 기자를 맞이했던 빌딩1로 되돌아오니 오후 4시. 기자를 안내해준 필립스가 퇴근하는 시간이었다.
그는 학교를 마친 어린 딸을 집으로 데려다 주기 위해 매일 4시에 ‘칼퇴근’한다. 회사는 직원이 퇴근 전에 해야할 일을 마칠 것이라고 믿고, 직원은 못다한 일이 있으면 집에서도 끝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기에 가능한 일이다.
‘회사는 직원을 신뢰하고, 직원은 그 신뢰를 책임진다.’ 이것이 넷앱의 성공 비결이 아닐까.
써니베일(미국)=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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