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경제위기 이후 세계 반도체 질서 재편 대비를

[ET단상]경제위기 이후 세계 반도체 질서 재편 대비를

 세계 반도체 산업의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 멈춰 있던 반도체 생산라인이 다시 돌아가고 매출은 늘어나고 있다. 전 세계 반도체 매출액이 5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고, 반도체 가격도 연초 대비 두 배 이상 오르는 등 반도체 경기 회복을 알리는 청신호가 늘어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촉발한 세계 경기 침체란 쓰나미에 살아남은 우리 반도체 산업의 저력은 놀랍다. 미국과 독일의 일부 반도체 기업이 파산하고 일본과 대만의 반도체 기업은 정부의 공적자금에 의존해 연명하고 있을 때, 우리 반도체 기업은 기술 경쟁력과 위기관리 능력을 발휘해 세계 반도체 시장의 지배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위기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이제 우리 반도체산업은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펼쳐질 세계 반도체산업 질서 재편의 기회를 활용해 진정한 반도체 산업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도약을 내실있게 준비해야 한다.

 대내적으로는 차세대 메모리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해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기술 우위를 확고하게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수직형 자화반전 메모리(STT-MRAM) 등을 비롯한 차세대 메모리 분야의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산학연 공동 연구체제를 더욱 활성화해야 할 것이다. 취약한 시스템 반도체와 장비 산업의 경쟁력 강화도 지체할 수 없는 과제라고 하겠다. 현재 정부와 산학연이 공동으로 수립 중인 ‘시스템반도체 2015’와 ‘신성장동력 반도체 장비산업의 육성전략’은 이러한 점에서 시의성과 적절성을 함께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외적으로는 세계 반도체 산업의 선도국가에 걸맞은 위상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현재 세계 반도체산업이 당면하고 있는 글로벌 이슈는 매우 엄중하다. 각국 정부의 경기부양 조치로 통상 분쟁의 후폭풍이 예상되고 있고, 반도체 제품의 불법 복제와 특허소송 남발을 비롯한 지식재산권 분야의 대립과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기후변화협약에 따른 온실가스 저감을 위해 세계 반도체 업계의 공동 행동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세계 1, 2위의 메모리 기업을 보유한 우리 업계와 정부는 이러한 반도체 분야의 글로벌 이슈를 해결하는 데 역할과 책무를 다할 필요가 있다.

 오는 24일 제주에서 개최되는 ‘세계 반도체 생산국 민관 합동회의(GAMS)’는 매우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지난 수년간 이른바 ‘치킨 게임’이라 불리던 과잉생산 경쟁으로 큰 타격을 입은 세계 반도체 업계가 한자리에 모여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의 현안 해결을 협의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GAMS 회의는 세계 반도체 생산의 약 90%를 생산하는 한·미·일·EU·대만·중국 6개국이 모여, 세계 반도체산업의 현안과 협력방안을 협의하는 민관 협의체다. 이번 GAMS 회의는 한국이 의장국이 돼 회의를 개최하게 된다. 제주 GAMS 회의에서는 반도체 불법복제 방지, 특허소송 남용 방지, 경기부양 조치의 투명성 제고, 중국의 복합구조칩(MCP IC) 제품의 무관세협정 가입, 온실가스 저감방안 등을 비롯한 다양한 의제가 회원국의 주요 관심사항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자간 협의체는 합의 도달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이런 특성으로 신속한 의사결정을 중요시하는 업계에서는 다자간 협의체의 의제설정과 논의에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반도체산업이 세계 반도체 무대에서 리더십을 확보하고자 한다면 글로벌 의제설정에 적극 참여하고 주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전상헌 지식경제부 정보통신산업정책관 sangh-jeo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