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IT외교력이 필요하다

 세계 최대 격전지 중 한 곳인 북미 디지털TV 시장에서 한국에 주도권을 빼앗긴 일본이 서둘러 중남미 지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브라질과 손잡고 중남미 대륙에 일본식 디지털TV 표준 방식을 전파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공을 들여온 일본은 최근 가시적인 성과를 올리고 있다. 이달 들어 칠레가 중남미 대륙에서 네 번째로 일본의 디지털TV 방식을 공식 표준으로 채택한 것이다. 이로써 중남미에서 일본식 디지털TV 표준을 채택한 나라는 브라질·페루·아르헨티나에 이어 칠레까지 모두 4개국으로 늘었다. 현지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이들 4개국 외에도 베네수엘라·에콰도르·볼리비아·파라과이 등 이웃 나라도 SBTVD 방식에 관심을 보이고 있어 중남미 대륙 전체가 일본식 디지털 방송 시스템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국이나 유럽 방식의 디지털 TV를 주로 생산해 온 국내 업체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진 셈이다.

 이들 중남미 국가가 세계 시장을 양분한 미국과 유럽 방식을 버리고 일본식을 채택한 이유는 저렴한 로열티와 주변 국가들과의 호환성, 그리고 일본·브라질의 적극적인 로비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1일(현지시각)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는 일본·브라질·페루·아르헨티나·칠레 등 5개국 통신장관이 모여 디지털방송 관련 국제회의를 열고, 일본 방식 디지털방송 기술의 남미 주변국 확산 공조에 합의하는 내용의 ‘리마선언’을 발표했다. 이미 일본 진영에 합류한 남미국가들이 연대해 인근 남미국가로 세를 불릴 목적으로 국제회의를 마련한 것이다. 일본의 외교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번 리마선언으로 중남미 시장에서 한국은 일본보다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그렇다고 이 시장을 포기할 수도 없다. 디지털TV뿐만 아니라 디지털 방송장비 시스템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업계와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대책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기술과 가격만으로 승부를 거는 시대는 지났다. IT 한류를 세계로 전파하기 위해서는 한국형 표준을 세계 표준으로 만들 수 있는 더욱 치밀한 IT 외교력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