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까지 캐릭터 상품으로서의 인기가 워낙 오래 지속되고 있기에 자칫 잊어버리기 쉬운데, ‘아기공룡 둘리’는 오롯이 1980년대라는 역사의 단면을 담아내는 작품이다.
비록 명랑만화 장르 특유의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모험담이 종종 등장한다고 할지라도, 시대성이 제거된 보편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이라는 사회의 1980년대 모습과 그 정서와 떼어놓을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MP3플레이어와 휴대폰과 인터넷이 아니라 LP음반 컬렉션, 거실에 놓인 다이얼식 전화기, 아침 신문을 보며 세상 돌아가는 꼴에 혀를 차는 세계다.
그 속에서는 민폐성 사고뭉치지만 영악한 되바라짐과는 거리가 먼 1980년대식 말썽쟁이 어린이 개념을 각각 다르게 구현한 4총사 주인공이 있다.
더부살이 식구 특유의 궁상이 돋보이는 둘리, 문자 그대로 외계인의 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도우너, 유사 공주병 또치, 아무 생각 없는 아기 희동이가 그들이다. 하지만 이 만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뭐니뭐니해도 가장인 고길동씨다.
고길동씨는 도봉구 쌍문동에 사는 샐러리맨이다. 서울 외곽의 평범한 단독주택에 살며, 자가용을 굴릴 정도로 딱히 여유가 있는 신분은 아니지만(1980년대 초 기준임을 상기하자) 따로 면허를 딸 의지도 없고 대중교통으로 다니는 것에 익숙하다. 하지만 당대의 다른 가장들처럼 나름대로 가장의 취미에는 흥미가 있어서 LP를 모으고 바둑도 두고 낚시도 다니곤 한다. 그리 착하고 대범한 사람도, 반대로 대단한 악인도 아니다. 그저 적당히 치졸하고, 적당히 이기적이고, 버럭 성질을 내면서 가장의 권위를 내세우고, 그래도 자기 집안의 평화를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그런 인물이다. 평범하게 사회에 순응하며 그럭저럭 보수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지낼 사람이다. 평온한 안정이 군식구들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깨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1970년대의 새마을운동 분위기는 이미 지났지만 아직 1990년대의 세계화 무한경쟁의 냉엄한 현실에 내동댕이쳐지지는 않았고, 5공식 독재전략의 부산물로 대중문화 향유가 한층 열린 것이 1980년대의 모습이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서울권 화이트칼라 가장은 탈권위주의를 추구해볼 상상력은 아직 없으나, 부양능력 하나만 내세우며 가족에서 절대권력 대우를 요구할 만큼 정서적으로 빈곤하지도 않다. 다만 그저 식구들이 가장 대접 좀 해주고, 크게 말썽 피우지 않는 것을 바랄 따름이다. 그런 바람에 대한 화답으로, 둘리 패거리는 말썽을 피우고 살림살이를 박살냄으로써 가장에게 민폐를 끼친다. 하지만 그것조차 가장의 구박에 대한 반작용에 가깝지, 권위 자체가 무너져 내리는 것이 주요 모티브로 등장한 1990년대 이후의 풍경과 다르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길동씨 역시 어떤 형태가 됐든, 자신에게 주어진 가족이라는 틀은 깨지 않고 또한 하숙집 주인 같은 느낌보다는 가장으로서 인정받고자 하는 의도가 계속된다. 내쫓겠다고 항상 으름장을 놓고 둘리 패거리가 하루라도 안 보이면 기분이 너무 좋아져서 건강상태가 호전될 정도지만, 반대로 그들을 신고하는 일도, 나갔다가 돌아오는 것을 완전히 가로막는 때도 없다. 그렇듯 뭔가 다음 세상으로 바뀔 듯하면서도 은근히 예전의 보수적 가치에 그대로 따르는 느낌이 바로 1980년대적인 셈이다.
실제로 ‘아기공룡 둘리’가 완결된 수년 후, ‘BS돌리’라는 속편이 지극히 ‘90년대적인’ 감성의 소년만화잡지에 연재된 바 있다. 그 작품에서 길동씨는 탈모에 노이로제로 쇠약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겉으로는 바뀌기 시작했으나 속은 그대로에 가까웠던 1980년대적 정서의 가족관과 달리, 정말 구도와 관계들이 바뀌는 느낌이랄까. 이렇듯 만화작품을 통해 역사를 읽어내는 것은 노골적인 소재나 장르뿐만 아니라 그것이 담아내는 정서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나아가, 그 역사를 그렇게 살아온 오늘날의 사람들을 파악하는 것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김낙호 만화연구가 capcolds@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