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정보화, 세계로 가다!
나는 스스로를 감히 BMW족이라 부른다. 승용차 대신 버스(Bus), 지하철(Metro), 그리고 도보(Walk)로 일상생활을 주로 영위하기 때문이다. 꽉 짜여진 일정을 시각에 맞춰 다니는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 수 없다.
대부분의 BMW족이 그러하듯 나 또한 서울시 교통카드시스템에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마을버스와 지하철을 수시로 바꿔 타면서도 지갑 한 번 열지 않고 생활하게 해주고 비용도 절감시켜 주기 때문이다. 수많은 행정서비스 중에서 이렇게 시민에게 편리함과 경제적 효익을 가져다 준 서비스가 또 있을까.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소비자가 우리나라 소비자라 한다. 이런 소비자인 서울 시민이 만족한다면 세계 어느 시민에게도 통한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의 교통카드 시스템이 세계 여러 국가의 도시에서 운용되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 뉴질랜드, 카자흐스탄, 멕시코, 에콰도르 등에 이 시스템이 구축되고 우리 손으로 운용되고 있다니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이 분야 시장만 하더라도 무궁무진하다. 인구 100만이 넘는 도시가 세계에 500곳 정도 있다. 이들이 우리 교통카드의 텃밭이다. 최초로 버스, 지하철 등을 연계한 세계 유일의 베스트 프랙티스가 바로 우리기 때문에 누구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들 도시에 우리의 시스템을 구축해 주고 향후 20∼30년간 운영할 수 있는 권리를 받을 수 있다면 수출뿐 아니라 우리 젊은이의 해외진출도 꾀할 수 있어 일석이조이다.
교통시스템 수출 사례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무엇보다도 정부의 IT 수출 정책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역대 정권은 전자정부 수출을 위해 기관을 만들고 해외국가에 컨설팅을 해주고 또 필요한 경우 원조를 주는 등 다각도로 동분서주 해왔다. 그러나 아직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 원인을 정확하게 따져봐야 한다. 첫째, 수출할 대상을 잘못 짚었다고 본다. 하드웨어와 핵심 소프트웨어는 모두 외국산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 현실상 해외 국가에 응용시스템을 구축해주는데 주안점을 둔 것이 잘못이다. 또 소프트웨어 산업을 육성해 소프트웨어를 바로 해외에 수출할 수 있으리라 판단한 것도 실수였다.
우리가 수출해야할 내용은 바로 ‘IT에 기반을 둔 서비스(IT 서비스)’다. 여러 요소 기술을 응용해 식별장치 및 단말장치도 만들어 수출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시스템 운용 노하우가 함께 패키지화되어 나갈 때 경쟁력이 있고 지속적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다.
둘째, 전혀 준비가 안 된 국가를 주로 공략했다는 점이 한계점이다. 정보화가 제대로 추진되려면 많은 인프라가 준비돼 있어야 한다. 통신과 같은 하드웨어 인프라뿐 아니라 정형화된 행정업무체계, 국민의 교육수준, 정보기기 보유 수준 및 숙달 정도 등 다양한 소프트 인프라도 필수적이다.
이런 제반 인프라가 마련돼 있지 않은 국가에 정보화 지원과 수출은 결실을 거두기 힘들고 설사 구축됐다 하더라도 그 활용효과가 미미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정보화를 필요로 하고 정보화를 구축했을 경우 그 효과가 금방 나타날 수 있는 곳을 주공략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인구가 많은 대도시의 서비스가 바로 그에 해당한다.
자, 이제부터는 지자체 서비스를 전자정부 수출의 지름길로 인식하자. 국내 IT 서비스 기업들도 단순한 응용시스템 구축에만 매달리지 말고 IT 기반 행정서비스를 수출 전략 육성 품목으로 개발해가야 한다. 교통카드 외에도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본다. 환경, 지능형교통시스템(ITS), 범죄예방 및 범인 검거, 물처리, 하수처리 등에 우리가 강점을 가지고 있는 무선통신, 전자태그(RFID), CCTV 등을 적용한 새로운 행정서비스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IT 서비스든 구축되고 운용하는 데는 많은 요소기술이 필요하고 다양한 업체의 참여가 필요한 법이다. 이들 업체가 각자 경쟁적으로 단위 기술과 제품을 들고 나가는 방식이 아니라 이를 아우르고 통합해 하나의 패키지화된 서비스 형태로 가지고 나가는 게 전략적으로 유리하다.
IT 서비스 업체와 요소기술 및 소프트웨어 업체와의 긴밀하고 지속적 협력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까지의 정부의 IT 및 소프트웨어 산업 정책은 이와 반대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즉 SW 분리발주, IT서비스 기업 입찰금액 하한제 등의 정책이 요소기술 업체와 시스템통합 업체 간의 갈등을 촉발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음이 아쉽기만 하다. 업체들이 상호 협력해 해외 공동 진출을 꾀하는 정책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IT 서비스 산업을 외국에서는 시스템통합(SI) 산업이라 부르는 이유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다양한 요소기술과 해당 분야의 노하우를 통합해 하나의 시스템으로 창조해내는 첨단 지식서비스 산업인 것이다. 여러 개를 섞어서 더 많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산업이야말로 우리가 앞으로 나가야 할 분야임이 분명하다. 어떻게 보면 우리 민족의 자질과 역량도 이런 분야와 잘 맞다. 우리의 대표적 음식인 비빔밥이 외국인에게 인기 있는 것도 같은 이치가 아닐까.
이런 IT 서비스를 해외에 수출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도 필요하다. 중앙 정부와 지자체는 관련 국가 및 도시들과 관계를 맺고 기회가 되는 대로 이들에게 성공적인 IT 서비스를 널리 홍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상대편 도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우리의 선진 서비스 운용 경험을 적극 전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 등이 좋은 방안이라 하겠다.
서울시는 세계도시CIO포럼(World Cities CIO Forum) 구성을 주도하고 있다. 세계의 대도시가 함께 모여 IT 행정서비스 혁신을 협의하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며 필요한 지원을 꾀하는 국제기구인 셈이다. 이번 주간에 마지막 준비대회를 거쳐 내년에 정식 발족할 예정이다. 이런 기구 및 국제회의가 우리의 IT 서비스를 해외에 알리고 수출하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믿는다.
김성근 중앙대학교 교수 (한국CIO포럼 대표간사) sungku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