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시즈오카현 스루가만 지진의 공포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이달 초 일본 남부에서 리히터 규모 6.0의 강한 지진이 발생했다. 일본에서 지진의 위협은 더욱 자주 강하게 다가온다. 지난달 스루가만 지진 때 나는 자는 도중 건물 전체가 흔들리는 느낌 때문에 잠이 깼다.
평소 깊게 자는 편인 내가 흔들림을 느낄 정도였다면 꽤 강한 규모였던 것 같다. 시즈오카현 스루가만에서 발생한 진도 6.5의 강진이 내가 거주하는 지바현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었다.
스루가만을 직접 가본 적이 있다. 스루가만은 핑크빛이 예쁜 ‘사쿠라 에비’의 주요 산지이자 이즈반도와 시미즈항을 왕복하는 페리가 운행되는 곳이다. 그리고 일본을 대표하는 명산인 후지산을 바라볼 수 있는 최고의 위치로 뽑히는 곳이기도 하다.
영화의 주요 장소로 등장했던 적도 있다. 2006년 일본에서 개봉한 영화 ‘일본 침몰’이다. 영화에서는 일본 침몰의 근원지로 시즈오카현 스루가만을 지목하고 있다. 이곳에서 발생한 진도 10의 엄청난 지진 때문에 일본 열도가 물속으로 침몰한다는 설정이었다. 일본인의 지진에 대한 공포를 반영한 탓인지 개봉 당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만큼 지진에 민감한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지진으로 신음하는 일본열도=스루가만 지진 이후 각종 언론에서는 100년에서 150년을 주기로 발생하는 ‘도카이(東海, 일본 중부의 내륙지방)’ 대지진의 공포가 엄습했다며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섬나라 일본은 과거부터 자연재해의 피해가 우리보다 비교적 큰 편이었다. 특히 지진 다발생 지역에 속해 있기 때문에 지진 피해가 심한 편이다.
1923년 9월 도쿄를 비롯한 요코하마, 지바, 그리고 멀리 시즈오카현까지 영향을 미친 관동대지진이 대표적이다. 당시 발생한 지진은 리히터 규모 7.9에서 8.4 사이로, 이로 인해 10만∼14만명이 죽었고, 3만7000명이 실종됐으며 수많은 가옥과 건물이 붕괴해 어마어마한 경제적 손실을 끼쳤다.
또 1995년 1월에는 6433명의 목숨을 앗아간 한신 대지진, 2004년 10월에는 40여명이 죽은 니가타현 지진, 그리고 1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최근의 시즈오카현 지진까지. 수많은 인명피해와 경제적 손실이 일본 열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지난 8월 11일 발생한 시즈오카현 지진은 그 피해 규모가 다른 지진에 비해 가벼운 편이었다. 확인된 것으로는 일본 간토와 중부를 연결하는 해안간선도로가 일부 붕괴됐고 가옥이나 건물의 직간접 피해가 1000여건, 부상이 100명 정도, 그리고 사망자 1명이다.
사실 사망사건은 지진이 발생하고 한참 지나서 발표됐다. 정부에서는 사망사건 발생에 민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를 조사하는 데 시간이 비교적 많이 걸렸다는 설명이다. 지진으로 발생한 사망사건이 국민에게 미칠 파급 효과를 고려한 것이었다.
◇실생활 속 지진 대비 일상적=진도 6.5의 이번 시즈오카현 지진의 피해가 이 정도라면 이보다 큰 규모의 지진일 경우 피해가 어느 정도나 될까. 일본의 한 방재시스템연구소에 따르면 일본 시즈오카와 아이치현 일대의 도카이 지역에서 진도 8 이상의 지진이 발생한다면 직간접적으로 약 100조엔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건물피해로는 95만채가 전소하거나 붕괴될 수 있다. 인명피해로는 건물 붕괴로 사망하는 사람이 1만2000명, 해일 발생으로 인한 사망자도 이와 비슷한 수준이다. 여기에 화재나 여러 가지 요인을 더하면 2만5000명 정도가 지진으로 사망할 수 있다고 한다.
영화 ‘일본 침몰’에 나왔던 대참사의 내용이 재현되지는 않겠지만, 지진 전문가들은 도카이 지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진도 8 이상의 대형 지진이 대규모 인명피해와 금전적 손실을 야기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지진 피해는 비단 발생 당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실생활 속에서 지진 발생에 대비한 물품 비용 지출이나 지진 발생에 대비한 훈련 등도 간접적으로는 지진 피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지진 발생 대비 훈련을 정규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지진 발생에 대비한 시뮬레이션을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자치구별 소방서에서도 정기적으로 재난사고 발생에 대비한 각종 훈련 활동을 개최하고 있다.
이러한 훈련에는 소방서 인력 외에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실제로 지진과 같은 대형 참사가 발생했을 때를 가정해 실시한다. 이러한 훈련을 실시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 등을 비용으로 환산한다면 제법 큰 금액이다.
나도 얼마 전 지진이 발생하고 나서 가스레인지를 사용하기 위해 점화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갑자기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나중에 알아 보니 지진으로 가스가 자동 차단된 것이다. 결국 가스회사에 전화를 하고 나서야 차단된 가스가 집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이 밖에도 지진 대비 방진시설 구축, 학교나 공공기관의 내진설계 강화 등,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지진에 대비하기 위해 큰 비용을 치르고 있다.
◇지진 대비 투입 비용 천문학적=일본에서는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에 대비하기 위한 방재 관련 시장이 비교적 큰 편이다. 초기 재해비축용품 구매는 정부나 공공시설이 주로 참여했지만 현재는 일반 가정까지 방재 관련 용품 시장이 확산된 상황이다.
일본의 한 민간 경제연구소의 통계에 따르면 이러한 방재구호용품 시장은 2007년 413억엔, 2008년 421억엔이며 이러한 증가세는 앞으로 더욱 두드러질 것이라고 한다. DIY 전문점인 ‘도큐핸즈’나 잡화점 ‘동키호테’ 같은 곳에 가면 이러한 방재용품만을 마련한 코너가 따로 있을 정도다. 회중전등, 라디오 등의 구호물품뿐 아니라 가구 등을 고정시킬 수 있는 시트, 일회용 화장실, 보온 시트 등이 진열돼 있다.
전문점뿐 아니라 동네의 일반 슈퍼에서도 생명수, 건빵, 인스턴트 라면, 전투식량 등을 ‘방재용품 패키지’란 이름으로 묶어 판다.
또 지진을 감시하기 위한 방재감시 경보시스템을 구축하는 데도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 지난 한신 대지진의 참사를 거울삼아 시작된 경보시스템 구축은 2008년에만 4670억엔이라는 막대한 비용을 유발했다. 기존에 설치된 경보시스템의 업그레이드나 디지털화에도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앞으로도 경보시스템에 많은 돈이 들어갈 전망이다.
이처럼 지진은 많은 인명 피해와 비용을 야기시킨다. 어차피 자연재해를 사람의 힘으로 막기는 불가능하니 이를 철저히 대비하고 준비하는 것만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도쿄(일본)=김동운 태터앤미디어 일본 블로거(doggul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