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으로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물결이 거세다. 우리나라도 글로벌 경제위기를 세계 어느나라 보다 모범적으로 극복해 나가면서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한 제2의 도약을 요구받고 있다. 폐쇄적인 연구개발(R&D) 혁신에서 처음 출발했던 오픈이노베이션 개념은 이제, 사회·경영·문화·기술을 모두 아우르는 국가·산업 리모델링의 툴로 주목받고 있다. 오픈이노베이션 관련 국내외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전세계 오픈이노베이션 기조와 국내 도입 및 확산전략을 집중 논의했다. <편집자>
◆참석자: 강혁기 지식경제부 산업기술시장과장, 금동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전 원장(사회), 김용근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원장, 드웨인 스프레들린 이노센티브 CEO, 현재호 테크노베이션파트너스 대표
▲금동화 전 원장(이하 사회)= 한국에서도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의 도입 필요성은 충분히 논의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내에서 이렇다 할 성공사례가 만들어지지 못했다.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 어떤 요소가 필요한가? 먼저 이노센티브의 경험을 토대로 성공요인을 말해 달라.
▲드웨인 스프레들린 CEO(이하 스프레들린)= 오픈이노베이션 개념은 2005년 헨리 체스브로 교수가 처음 제기했다. 현재 이노센티브의 고문이기도 하다. 지난 세기부터 혁신의 내용과 방식은 약간씩 변화되어 왔다. 근래에는 벤처간 파트너십이나 기술 관련 투자를 유도할 때 등 적용분야도 넓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주목받고 있는 것은 개별 기업이 강점을 갖고, 집중하는 분야에서 오픈이노베이션을 활용해 어떻게 더 잘하고 강해질 수 있느냐의 문제 해결점이다.
우리는 오랜 기간 체스브로의 이론을 현실화 해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 ‘클라우드 소싱’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즉 혁신의 과제를 시장에 내놓고, 솔버(Solver)가 최적의 해결 방법을 찾아내도록 하는 것이다.
성공적인 사례로 글로벌 생활용품 회사 P&G를 들수 있다. P&G는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매년 40억달러를 투자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 내부적인 투자만 갖고서는 안된다고 느꼈다. 성장의 속도가 점점 늦어지기 때문이다. 마침내 P&G 최고경영자는 특단을 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필수 연구개발(R&D)를 내부적으로 소싱하는 것이 아니라, 50% 이상의 R&D 자원을 외부에서 활용하는 것이다. 8000여명 달하는 P&G의 연구원들은 자체적인 기술 개발과 함께 클라우드 소싱에 직접 참여하면서 그 후에 오픈이노베이션을 대부분 실천하고 있다. 이때부터 오픈이노베이션은 P&G에게 새로운 수익을 내고, 신사업을 만드는 툴이 됐다. 또 하나 성공사례가 있다. 여성 위생용품 생산업체인 SCA는 전세계 시장규모 100억 유로에서 뛰는 한 일원에 불과하지만, 오픈이노베이션 도입 후 70%나 ROI(투자수익률)가 성장했다. 그러면서도 성장성은 계속 보여주고 있다.
▲강혁기 과장(이하 강혁기)= 글로벌 경제시대, 한정된 자원을 지닌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외부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을 적극 수용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전세계 R&D 예산의 약 3%를 투자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머지 97%의 다른 나라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 역량 극대화에 가장 유용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폐쇄적인 자세를 버리고, 다양한 외부기관들과 협력해 전세계에 널린 각종 인력·기술·R&D 자원을 활용할 수 있도록 오픈 마인드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기술측면에선 공급자 중심의 기초원천기술 개발에 치중돼 있는 구조를 수요자와 시장이 요구하는 사업화 기술 개발로 확대시킬 것이 요구된다. GDP의 3.47%를 R&D에 투자하는 우리는 규모상 적은 수치는 아니지만, 생산성은 상대적으로 낮다. 인력측면에서도 대학에 집중돼 있는 것을 기업으로 투입할 유인책이 필요하며, 기술의 수출입 등 무형 자산의 국제화 지수는 굉장히 낮은 수준인 만큼, 개선이 요구된다.
▲사회= 우리는 내부적으로 아무리 R&D에 투자를 하고, 집중한다고 하더라도 세계의 3% 밖에 안된다는 얘기다. 시장의 변화와 기술혁신의 대부분은 외부에서 일어난다. 기술 개발, 점유율 확장 등에 오픈이노베이션이 일어나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것이 우리나라에만 일어나는 특수한 상황은 아닐텐데.
▲김용근 원장(이하 김용근)= ‘클라우드 소싱’ 개념이 아주 인상적이다. 현재 우리는 기술에 둘러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신기술을 더이상 개발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많이 만들어져 있다. 그것을 어떻게 연결하느냐가 중요해졌다. 개발하는 것보다 사오는 것이 싸다면 그렇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이 안고 있는 문제는 성공할 때까지 혼자만 기술을 갖고 가는 구조, 연구소 마다 쳐진 칸막이, 자기것이 최고이고 자기 것을 중심으로 개발돼야 한다는 강박적인 사고다. 협동 연구, 외부와의 협력을 위한 장애요소가 분명하다. 문화적으로 남의 생각과 결합될 때 자기 것도 잘된다는 인식이 확산되지 않으면 오픈이노베이션은 힘들어 진다. 그러나 최근에는 많은 기업들과 연구소에서 오픈이노베이션 담당 중역들이 생겨나고 있다. 외부사람들 만나서 자기 내부와, 외부 정부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아직 초창기 시도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 선도자들이 연구자들의 생각과 기업의 전략을 어떻게 접목시키는가가 중요하다.
▲현재호 대표(이하 현재호)= 패러다임의 변화, 인식의 변화가 중요하다. 우리가 목표로하는 오픈이노베이션은 공동 연구, 협동 연구의 선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노베이션에는 1세대부터 4세대까지가 존재한다. 1세대는 우수한 연구자를 잘 선택해서 뽑아쓰는 것이 중요한 단계였다. 2단계는 R&D 관리를 잘하자는 시기였다. 다음 3세대는 비즈니스와 연계된 연구를 하자는 수준까지 진화했다. 그 다음 4세대는 그야말로 네트워킹 기반의 기술혁신 전략이 필요해지는 시기다. 이 4세대 혁신 전략이 바로 오픈이노베이션의 정점이다. 도입해서 적용하고, 실천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기본적인 콘셉트부터 바꾸고 새로운 변화, 문화의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 비즈니스와 연계된 R&D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대기업은 4세대로 진화하기 쉽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2세대 과제도 잘 안되고 있다. 여기서 생기는 격차와 도전과제도 분명히 있다. 그 부분은 정부가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본다.
▲사회=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것 전적으로 맞는 얘기다. 우리 같은 상황에서 정부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정책에 더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사람의 문제가 굉장히 중요하다. 사람 자체에 대한 오픈이노베이션 교육과 훈련, 그리고 그 인재가 기업과 사회의 네트워크에 들어가야 한다. 능동적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 전체적인 시스템을 나라가 만들어야 한다.
▲스프레들린= 문화적으로 한국이 뒤쳐져 있지 않다고 본다. 이제 제품을 만드는 것은 기본이다. 하지만 기업들이 어떻게 구조적으로 생각을 변화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오픈이노베이션을 빠르게 도입하고 성공적으로 실천하는 기업들에는 네가지 공통 유형이 있다. 첫번째 유형은 최고 경영진을 비롯한 중역들이 스스로 혁신 요소가 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무장돼 있는 기업들이다. 두번째가 내부적인 소통을 통해 변화의 중요성을 전달하고 공유하고 있는 조직이다. 이들은 세계 곳곳의 기업들이 경기 침체에 빠져 있는 상황을 오히려 활용해서 더 제대로된 혁신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찾는다. 세번째가 업무 프로세스를 중요하게 여기는 조직이다. 새로운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단계를 밟아 발전시켜 나가는 조직은 궁극적으로 오픈이노베이션과 직면하게 된다. 네번째는 새로운 생각을 하는 기업이다. 열린 생각을 가진 이런 기업들은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춘다. 우리는 오픈이노베이션 클라이언트를 선정할 때 벤치마크를 하기 싫어하는 곳은 아예 제외한다. 내부적인 문제가 있다면, 오픈이노베이션을 도입하기 전에 그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나서 도입해도 늦지 않다. 한 번 시도해 볼까 생각하는 기업은 성공 가능성이 낮다. 정말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회= 여러가지 걸림돌이 있지만, 오픈이노베이션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공통 분모는 찾아낸듯 하다. 그럼, 오픈이노베이션이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확산되기 위해선 각 분야에서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점검이 필요할 듯 한데.
▲강혁기=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한정된 인력과 자금, 네트워크 부재 등으로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을 도입하는 데 애로가 클 것이다. 무엇보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초기 단계부터 기본틀을 국제 무대로 옮기고 글로벌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적 사고 변화가 중요하다. 유럽의 경우, EU 내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국가간 장벽없이 중소기업과 외부기관간의 협력이 활성화돼 있다. 정부는 중소기업의 해외 자원 활용이 용이할 수 있도록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과 국제화된 기술인력 양성을 계속해서 지원할 계획이다. 공공부문 역시 한정된 국내 시장에서 눈을 돌려 넓은 글로벌 시장의 자원을 활용하는 방안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국수주의적 자세를 버리고, 역량있는 전문 인력이라면 외국인의 채용을 적극 수용하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제도를 도입하는 등 국제화 역량을 키워 나간다면 오픈이노베이션 전략도 성공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 본다.
▲김용근= 오픈이노베이션은 철저하게 시장 중심, 비즈니스 연계 전략 중심으로 가야한다. R&D 전략 수립 전에 아웃워드(Outward) 워킹하는 생각들이 부족하다. 생각을 비즈니스화하고, 시장 중심의 R&D를 어떻게 전개하느냐가 핵심이다. 최근 기업들간 상생협력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오픈이노베이션 확산에 굉장히 긍정적인 인프라 조성이다. 필요한 기술이 크고, 방대하기 때문에 상생의 요구가 더욱 높다. 경쟁기업간에도 협력하고,대기업과 부품 소재 계열회사간 협력이 긴밀하다. 각자의 요구에 따라 상생협력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산업 진화의 정해진 방향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바뀌고 있다. 부품 소재 개발을 위해해 대기업과 대학, 계열회사 간에, 최근에는 해외 연구소·기업과 공동 연구하는 프로젝트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구조가 오픈이노베이션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스프레들린= 전세적으로 우리 네트워크안에 18만명의 솔버가 활동하고 있다. 한국은 태안 원유 오염 사태를 극복한 훌륭한 경험을 갖고 있지만, 엑손모빌에 의한 알레스카지역 원유유출 사고는 15년동안 조사를 했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오픈이노베이션을 활용한 후 3개월만에 해결점을 찾았다. 또 시카고시 교통체계 혁신 방안과 대중교통 활용 확대 방안도 시카고상공회와의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찾아낼 수 있었다. 첫번째 예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에서 해결점을 찾았던 사례고, 두번째는 사람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성공을 만들어낸 사례다. 한국에도 그런 모델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런 역량과 인프라는 충분하다. 현재 등록된 한국의 솔버는 1000명 밖에 안된다. 이 숫자가 몇년 후엔 2만명 정도로 늘어날 것으로 확신한다. 그만큼, 한국도 오픈이노베이션의 활성화 국가에 올라설 것이다.
▲현재호= 융복합기술 패러다임과 함께 하나의 기업이나 팀이 일을 완성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노하우 경영에서 릴레이션십 경영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기술관리에도 노하우(Know how) 보다는 노후(Know WHo)가 필요한 시대다. 국가 오픈이노베이션 수준을 높이기 위해 관련 리더, 챔피온들이 많이 육성돼야 한다. 오픈이노베이션 리더 양성하는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오픈마인드, 혁신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는 챔피온을 양성하는 교육코스가 만들어져야 한다.
정리=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kr
◆드웨인 스프레들린 CEO는 누구? = 현재 세계적 오픈이노베이션 컨설팅 회사인 이노센티브의 대표 이사직을 맡고 있다. 이노센티브 사장으로 취임하기 전 비즈니스 정보회사인 후버스와(Hoover’s)와 온라인 행사 기획사인 스타사이트(Starcite) 사장과 COO를 역임했다. 또 세계 최대 규모의 온라인 기업마켓플레이스인 버티칼넷(Verticalnet)의 사업 개발 수석 부사장과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riceWaterhouseCoopers)의 e비즈니스 및 엔지니어링 기술 디렉터를 지냈다. 대학에서 응용수학을 전공했고, 시카고대학에서 MBA를 취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