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시장으로 각광받고 있는 ‘비스타(VISTA)’가 한국산 TV의 새로운 시장으로 떠올랐다. 비스타는 풍부한 천연자원과 저렴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베트남·인도네시아·남아프리카공화국·터키·아르헨티나 5개국을 지칭하는 용어. 브릭스(BRICs) 이후 세계 경제를 견인할 거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비스타는 전통적으로 일본 TV업체 텃밭과 같은 시장이었지만 지난해 금융 위기를 기점으로 한국 기업이 이를 대체하고 있다. 일본 기업이 ‘수비 경영’으로 돌아섰지만, 한국 기업은 마케팅 예산을 늘리는 등 공격적인 영업 활동을 펼친 결과다. 현지 딜러와 끈끈한 관계를 기반으로 한국 TV는 비스타 국가 시골 마을 곳곳까지 깊숙히 파고들며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잠재력을 가진 비스타 TV 시장=비스타 경제는 향후 50년 내 주요 7개국(G7)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될 만큼 잠재력을 인정받고 있다. 최근 일본 브릭스 경제연구원은 비스타 5개국의 전체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향후 50년간 28배 늘어 G7을 추월할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 경제가 회복되면 원자재 가격도 강세를 나타내고, 자원이 풍부한 비스타 국가의 TV 구매력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특히 2000년대 이후 비스타 국가 경제는 고성장세를 보이면서 중산층이 급증하고 있다. 대도시에 거주하는 고소득, 고학력의 젊은 세대가 소비의 중심세력으로 등장하고 있다. 또 저소득층들이 생계형 소비에서 탈피해 신소비계층으로 꾸준히 편입되고 있다. 향후 신소비계층의 소득 수준이 계속 높아지면서 거대 소비세력을 형성할 전망이다.
신소비계층은 소비 패턴이 서구와 비슷해지는 ‘소비 동조화 현상’까지 보이고 있다. 의식주 중심의 생계형 소비에서 삶의 질을 추구하는 가치형 소비로 변화하고 있다. 문화, 미디어 등이 개방되면서 이런 추세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국가별로 차이가 있으나 이들은 서구브랜드 선호, 선택형 소비 확대, 현재지향적 소비 지출의 공통된 성향을 보이고 있다. 낙후된 유통 인프라가 개선되고 의식주에 대한 소비지출 비중이 감소하면서 고급 TV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현재를 즐기자는 사고방식이 확산되면서 현재지향적 소비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30년 일본 TV 아성 깨고 ‘기술력, 품질하면 코리아’ 이미지 굳혀=30년 동안 비스타 시장을 선점하고 있던 일본 TV를 밀어내고 한국산 TV는 고급 제품으로 이미지를 굳히고 있다. 원래 비스타 시장은 일본 업체가 일찍이 진출해 터를 잡고 있던 곳. CRT TV가 주도하던 시대만 해도 한국 TV는 일본 TV보다 품질이 떨어진다는 대접을 받으며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러나 LCD·PDP 등 디지털TV 시대로 접어들면서 인식은 완전히 뒤집어졌다.
일본 기업이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지만 한국 기업은 현지 마케팅을 강화하고 사회공헌 활동에 꾸준히 투자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금융위기 때 한국기업들은 역발상으로 비스타 시장에 대한 마케팅 투자를 확대했다. 무엇보다 삼성전자가 2006년 이후 세계 TV시장 1위로, 올해 1분기에 LG전자가 2위로 올라서는 등 제품력이 부각된 영향도 컸다.
삼성전자는 연 1회 신제품을 출시하는 경쟁기업들과 달리 연 2회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시장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비스타 시장에서 LED TV 등 고급 제품의 수요가 많지는 않지만 현지 매장에 이들 제품을 전시해 한국기업들의 기술력을 돋보이게 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이런 전략들은 현지 딜러들이 ‘한국 제품은 무언가 다르다’는 차별된 이미지를 갖도록 만들었다.
◇비스타 젊은이들 “한국산 TV 좋아요”=비스타 국가의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국 TV를 선호하는 이들이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젊은층들은 대장금 등 한류 드라마를 접촉하면서 한국에 대해 호의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한국산 TV가 경쟁업체 제품에 비해 감각적이고 세련됐기 때문이다.
제품 교체 주기가 짧고, 과시형 소비를 좋아하는 비스타 국가 신흥소비계층들은 한국 TV를 굉장히 좋아하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는 지난해 금융위기 이후 비스타 TV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 것을 바탕으로 시장 공략에 더욱 속도를 낼 계획이다.
디지털 시대의 경쟁은 단 한 순간의 판단착오로 얼마든지 뒤집어 질 수 있다. 특히 40∼50대 소비자들은 여전히 TV하면 소니·파나소닉 등 일본 제품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깨뜨리는 작업은 중요하다. 삼성전자 측은 “금융위기를 기회로 한국 TV제조업체들이 비스타 시장에서 일본업체를 밀어내고 선두자리에 오르고 있다”면서 “한국업체들이 일본 업체들이 그랬던 것처럼 장기간 비스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브랜드 자산을 지금부터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