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자동차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는 평가가 곳곳에서 나왔다. 한국 차가 단순히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차량이 아니라 품질과 디자인에서 세계 수준에 도달한 제품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현대기아차는 위축된 세계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선방하면서 가장 돋보이는 성장세를 보였다. 우리 자동차산업의 괄목할 성장세는 매우 기쁜 소식이지만 한편으로 불안하다. 한국차가 누리는 상대적 우위는 세계 각국이 뛰어드는 친환경 자동차 시장이 아니라 이미 사양길에 접어든 내연기관 차량 분야에 한정된다. 석유에서 전기로 바뀌는 패러다임 변화에 신속히 적응하지 못하는 자동차 기업은 생존할 수 없다.
미국 자동차 빅3는 잘나가던 시절에 변화 경고를 외면한 대가를 지금 톡톡히 치른다. 한국 자동차업계가 글로벌 구조개편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난 것이 되레 독이 될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의 업체들은 경제위기를 겪으며 생산 부문을 대폭 구조조정했다. 정부와 힘을 합쳐 친환경 자동차 개발과 보급에 총력을 다한다.
우리 업계가 지금의 성과에 자만하다간 불과 몇 년 뒤 친환경 자동차 시장에서 미국, 일본, 중국에 낀 샌드위치 신세가 될 수 있다. 수출을 떠받친 환율효과가 사라지는 상황에서 이제 진정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정부는 친환경 자동차 시장의 궁극적 주역인 순수 전기차에 대한 R&D투자를 후순위로 미루고 완성차업체가 선호하는 하이브리드카, 수소전지 자동차에 매달리는 전략적 실수를 한다. 전기차는 모듈 부품을 4∼5명이서 얼마든지 조립할 수 있다. 수백미터의 일괄생산라인을 갖춘 일부 대기업이 생산을 독점할 이유도 없다. 수십개의 중소기업이 다품종 소량생산체제로 독특한 전기차를 제조하는 구도가 국가 차원에서 훨씬 더 유리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완성차업체들이 수직계열화된 부품사를 거느리는 생산시스템 때문에 기술력이 있는 중소업체가 시장에 진출할 길이 구조적으로 막혔다. 국내에서는 도로주행도 못 하는 CT&T의 전기차가 미국에서 환영받는다는 소식을 업계와 정책 당국은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