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시청 근처 서울상공회의소 빌딩 12층. 니콘이미징코리아 본사가 있는 곳이다. 매일 오후 시간이면 이곳은 묵직한 카메라를 든 카메라 애호가들로 북적인다. 바로 ‘니콘 포토 스쿨’ 때문이다. 30명이라는 적지 않은 수강 정원에 주말을 제외하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리지만 항상 만원이다. 그만큼 니콘은 국내 카메라 시장에서 확실한 자리를 잡았다. 니콘 제품만을 찾는 마니아도 불과 몇 년 사이에 크게 늘었다.
야마구치 노리아키 대표(54)는 카메라 브랜드로서 세계 시장에 우뚝 선 니콘의 성공 비결을 ‘니콘 리얼리티’라는 슬로건에서 찾았다.
“니콘 리얼리티는 한마디로 니콘 카메라는 ‘극사실성’을 표현할 수 있는 제품이라는 뜻입니다. 간접 매체인 카메라는 제 아무리 정확해도 눈만큼 정확하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거의 그대로 모습으로 피사체를 보여 줄 수 있다는 자신감입니다.”
‘리얼리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정도로 니콘은 탄탄한 광학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니콘은 9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오직 광학 한 분야만 집중했습니다. 니콘만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카메라에서 렌즈까지 한결같은 제품을 90년 동안 줄곧 고집해 온 셈입니다. 이 때문에 기술·제품 모든 면에서 카메라 분야 선구자라는 소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야마구치 대표는 니콘만의 사진 철학도 잊지 않았다. “니콘 카메라에는 어느 시대, 어떤 지역에서든 항상 존재하는 ‘특별한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 주자는 철학이 깔려 있습니다. 사진·영상으로 남기는 기쁨, 그리고 이 순간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면서 얻는 기쁨을 느끼게 하자는 가치가 지금의 니콘을 만들었습니다.”
니콘은 1948년 첫 소형 카메라 ‘니콘 I형’을 내놓고 필름 카메라 시장에 진출했다. 카메라 브랜드로 니콘을 알린 기념비적인 제품은 역시 1959년에 나온 ‘니콘F’ 시리즈. 일안반사식 구조를 갖춘 이 카메라는 지금의 SLR와 DSLR 카메라 구조를 이루는 뼈대가 됐다. 니콘F 시리즈는 1971년 F2, 1980년 F3를 거쳐 1988년 정통 F 시리즈 AF 카메라인 F4를 선보였다. 이후 니콘은 콤팩트에서 DSLR 등 디지털 제품까지 캐논과 함께 카메라 시장의 양대 산맥으로 성장했다.
니콘은 렌즈도 빼놓을 수 없는 강점이다. 1933년 항공사진용 렌즈 ‘에어로 니코 (Aero-NIKKOR)’를 시작으로 민간·산업용 모두 기술 진화를 거듭하면서 76년 동안 대표적인 교환 렌즈 브랜드로 사랑을 받았다. DSLR 카메라용 니코 렌즈는 이 덕분에 지난 8월 누적 생산 5000만대를 돌파했다. 지난해 8월 누적 생산 4500만대를 넘어선 데 이어 1년 만에 500만대 이상 팔리는 성과를 달성한 것이다. 국내에도 어안·초광각·초망원·줌·마이크로 렌즈 등 총 60여개 니코 렌즈 제품이 나와 있다.
니콘은 3년 전 국내 시장에 직접 진출했다. 야마구치 대표가 한국 카메라 시장과 인연을 맺은 시점도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니콘은 국내 사업을 대행하던 아남과 결별 후 2006년 4월 니콘이미징코리아를 설립하고 국내에 직접 진출했다. 야마구치 대표는 지난 3년 동안 한국에서 니콘 위상을 크게 높인 일등 공신이다. 3년 전 25% 안팎에 불과하던 DSLR 카메라 점유율을 40%대까지 올리면서 캐논에 이어 ‘투톱 체제’를 구축했다. 스틸 카메라 분야도 삼성 등 쟁쟁한 브랜드가 있지만 3∼4위를 오르내릴 정도로 인지도가 크게 높아졌다. 특히 지난해 세계적인 경기 침체 속에서도 전년 대비 30% 이상 매출을 높이면서 회사 규모를 키워 놓았다.
“진출 시점이 주효했습니다. 200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한국에서도 디지털 카메라 사용자가 크게 늘었습니다. 이에 따라 시장도 그만큼 수년 사이에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여기에 D40·D80·D90으로 이어지는 튼튼한 카메라 라인업과 적극적인 고객 마케팅 전략을 펼친 게 컸습니다.”
니콘은 실제로 한국법인 출범 초기부터 소비자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마케팅에 승부를 걸었다. 야마구치 대표는 “카메라 업체 가운데 처음으로 한국능률협회에서 주는 고객만족 인증을 받았다”며 “여기에 니콘 서비스센터 수준을 높이기 위한 정기 교육도 실시 중”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니콘은 소비자 접점을 확대하기 위한 체험 행사를 정기적으로 벌이고 있다. ‘니콘 디지털 라이브’라는 테마로 주요 제품 정식 발매 전 고객이 직접 신제품을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 행사는 매번 40000∼5000명의 카메라 사용자가 방문할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니콘만의 교육과 출사 대회 프로그램도 빼놓을 수 없다.
“카메라를 처음 사용하는 초보자부터 카메라를 좋아하는 전문가까지 다양한 수준의 강좌를 들을 수 있는 포토 스쿨을 운영 중이며 매월 20여개 강좌를 개설하고 있습니다. 지방에 거주하는 고객을 위해 지역 순회교육과 전국 주요 도시와 지역 행사를 순회하는 ‘니콘 무빙 스튜디오’도 니콘만의 차별 프로그램입니다.”
니콘은 앞으로 마케팅 대상을 여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 6월에는 여성 사용자만 참가할 수 있는 전국 7개 지역 순회 출사 대회를 열었다. 구매자 비율이 40%에 가까울 정도로 여성에게 인기가 높은 ‘D5000’ 출시를 기념해 열린 이 행사는 큰 호응을 얻었다. 또 임산부와 예비 엄마를 위한 ‘베이비 맘 스쿨’도 진행 중이다. 야마구치 대표는 “여성 DSLR 카메라 사용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며 “카메라 활용 강의에서 사진 촬영 기회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니콘은 특히 세계에서 처음으로 출시한 동영상 촬영이 가능한 제품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지난해 9월 처음으로 동영상 촬영 기능 ‘디 무비(D Movie)’ 기능을 탑재한 DSLR 카메라 ‘D90’을 선보여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DSLR 카메라 한계를 넘었다는 과분한 평가를 많이 받았습니다.”
야마구치 대표는 “D90은 콤팩트 카메라와 캠코더 역할을 DSLR 카메라가 대체하기를 바라는 사용자가 많아져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모델”이라며 “니콘은 고객 요구에 충실하고 시장 흐름을 주도하는 ‘트렌드 브랜드’로 한국 시장에 남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