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세상읽기] 댄 시먼스의 작품세계

[SF 세상읽기] 댄 시먼스의 작품세계

영미권에는 많은 SF 작가가 있다. 그중에서 대단한 작품을 쓰며 현재 작품활동을 하는 사람들만 추려낸다 해도 많은 작가들과 읽기 버거울 정도의 작품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다시 국내에 SF 번역 출간이 활발해지면서 이전까지 소개되지 않았던, 그러나 영미권에서는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이 속속 소개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댄 시먼스다. 댄 시먼스는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단편 창작에 몰두했지만 계속 미역국을 마시다 유명 SF작가인 할란 엘리슨의 SF 창작 워크숍에 참가한 후 그에게 발굴되면서 본격적인 작가로서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판타지·호러 장르라 할 수 있는 첫 장편 ‘칼리의 노래(Song of Kali)’로 세계 판타지상을 수상한 댄 시먼스는 이후 SF를 중심으로 판타지, 호러 등의 장르에서 다수의 장편을 발표하고 많은 상을 수상하면서 SF계의 스타 작가로 떠오르게 된다.

 대학 시절 영문학을 전공한 작가답게 영문학에 조예가 깊으며 그의 여러 작품에 그런 영향이 드러나 있다. 여러 작품이 있지만 여기서는 우리나라에 번역돼 소개된 ‘일리움’ ‘올림포스’ ‘히페리온’을 중심으로 그의 작품을 간단하게 소개해 보겠다.

 ‘일리움’과 ‘올림포스’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리스 시인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드’의 내용을 근간으로 한 작품이다. 이야기는 크게 세 줄기로 구성돼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만들어진 신(dues ex machina)’이라 할 수 있는 그리스 신들의 명령을 받아 트로이 전쟁의 진행과정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스콜릭인 호켄베리가 신들 사이의 파워게임에 휘말리면서 신들에 대한 전쟁을 선동하게 되는 부분과 지구에 남겨진 ‘고전 인류’가 자신의 삶을 유지시키고 사실상 관장하는 ‘후기 인류’가 남겨놓은 시설을 탐색하는 부분, 목성에 남겨진 인류가 만든 자의식이 있는 기계인 ‘모라백’이 화성에서 감지된 이상 징후를 포착하고 탐사대를 파견하는 부분이다.

 서로 별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 세 줄기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교묘하게 서로 엮인다. 그리고 근저에 숨겨져 있던 장구한 연결고리가 드러나면서 클라이막스를 향해 질주하게 된다. 셰익스피어와 프루스트가 적절하게 인용되고 변주되면서 이야기는 단순한 전쟁놀음이 아닌 호머, 셰익스피어, 프루스트가 고민했던 인간 자신의 본성에 대한 질문까지 던지게 된다. 각각 9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손을 놓을 수 없어 무리를 감수하고 출근길에 짊어지고(!) 가게 되는 파워 넘치는 작품이다.

 ‘히페리온’은 인류가 우주 곳곳에 진출한 미래를 배경으로 인류의 적인 아우스터에 대항하기 위해 히페리온 행성에 있는 고통의 ‘신’ 슈라이크를 향해 가는 7인의 순례자 이야기다. 성직자, 외교관, 군인, 시인, 과학자, 수도자, 사립탐정. 이 7인이 이번 순례에 참여하게 된 각각의 사정을 이야기한다. 이들 모두는 슈라이크와 어떤 식으로든 연관돼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초반에는 전혀 정체를 알 수 없었던 슈라이크와 히페리온 행성, 인류와 그 최대의 적인 아우스터에 얽힌 수수께끼들이 하나씩 드러나게 된다. 슬쩍 보기에는 지루해 보이는 ‘순례담’일 수 있지만 에피소드 하나하나는 사실상 완결된 액자 소설이며 로맨스에서 영웅담, 부성애에 이르는 다양한 범주를 넘나든다. 영문학에 정통한 작가답게 작품의 제목이자 배경, 시인 에피소드의 모티브인 히페리온은 존 키츠의 시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작품의 구성은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에서 따왔다. 비록 문화권이 달라 댄 시먼스가 이용하는 문학작품에 대한 감상이나 느낌이 영미권 독자들과 같을 수는 없겠으나 그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써 충분히 재미있다. 아니 재미있는 정도가 아니라 독자를 끌어들이는 굉장한 흡입력이 있다.

 다만 문제라면, 그의 작품을 읽고 난 후에는 어지간한 소설은 다 재미가 없어진다는 것 정도일까.

홍인수 SF번역가 iaminsu@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