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시스템반도체 `대만 경계경보`

 국내 시스템반도체업계에 ‘대만 경계령’이 내려졌다.

 대만업체들이 강력한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국내기업들의 주력 시장을 빠르게 잠식했다. 더 큰 문제는 대만기업들이 제시하는 가격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다. 국내 시스템반도체업체들이 ‘넛크래커(nut-cracker·선발업체에는 기술과 품질 경쟁에서, 후발업체에는 가격 경쟁에서 밀리는 현상)’에 휘말리고 있다.

 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불과 2∼3년 전만 해도 대만에서 개발한 시스템반도체는 품질 및 기술 지원 부족으로 국내 제조업체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국내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채택하는 분위기다.

 대만 시스템반도체의 위상 변화를 실감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예가 휴대폰이다. 그동안 휴대폰에 쓰인 시스템반도체는 엠텍비젼이나 코아로직·텔레칩스 같은 국내기업들이 주도해왔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대만의 알파이미징테크놀로지(AIT)는 휴대폰 카메라 구동에 필수인 백엔드IC나 ISP를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납품하는 데 성공한 이후 지속적으로 점유율을 늘리면서 국내업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가 됐다. 특히 이 회사는 국내기업들의 원가 이하인 1달러 안팎에 칩을 공급해 가격 면에서 도저히 경쟁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김학근 넥서스칩스 사장은 “1달러는 국내기업들이 제조원가를 제로(0)로 해도 도저히 맞출 수 없는 가격”이라면서 “기술력과 품질 수준도 상당히 높아져 국내기업들이 퇴출당하고 있는데, 휴대폰뿐 아니라 포터블 기기 시장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볼 때 앞으로 3년 뒤 굉장히 위험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업체들은 대만발 가격 공세를 피하기 위해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등 더욱 높은 기술력이 요구되는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하이엔드 시장으로 진출하면 글로벌기업들과 경쟁해야 한다. 통신에 꼭 필요한 베이스밴드칩이 최근에 멀티미디어 기능을 흡수하기 시작해 휴대폰 분야에선 퀄컴·브로드컴과 같은 기업과 싸워야 한다.

 멀티미디어 시장 역시 엔비디아·프리스케일 등과 부딪힌다. 또 삼성전자가 자사 휴대폰 성능 강화를 위해 AP 개발에 적극 나서면서 삼성전자를 제외한 국내 시스템반도체기업 대부분은 위아래에서 압박을 받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스템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자체 AP를 사용하면서 이제 시스템반도체를 팔 수 있는 곳은 LG전자밖에 남지 않았다는 웃지 못할 얘기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확한 시장 현황 파악과 대처 방안 수립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허염 실리콘마이터스 사장은 “한국은 대만과 달리 전략적인 관계를 맺고 같이 커갈 전문 파운드리가 없다”고 지적하면서 “벤처캐피털을 정상화하고 시스템반도체업계와 파운드리가 전략적으로 동반 성장할 수 있는 전략적 에코시스템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