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지나고부터 찬바람이 불어오니 골프를 즐기기 좋은 계절이 왔다는 신호지만 경기가 좋지 않다는 생각에 한편으로 필드에 나갈 마음이 들지 않는다.
나도 필드에 나가는 횟수가 현저히 줄었다. 작년과 비교해서도 거의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한 달에 한 번 또는 두 달에 한 번 정도 라운딩을 할 뿐이다. 2009년을 통틀어서 네댓 번밖에 출전을 하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실질적인 가처분 소득이 줄어든 것도 아닌데 괜히 마음이 위축되는 것이 골프를 자주 하지 않는 주된 원인인 것 같다.
지난달 어쩌다 나갔던 라운딩에서 그만 80대 초반 스코어를 기록했다. 골프 클럽을 가까이 하지 않은 것이 두 달 정도였는데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다. 주위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비슷한 스코어를 기록하던 파트너들이었는데 자기들은 90대 후반, 그것도 간신히 100을 깬 스코어인데 비해 내 스코어는 한창 골프를 치던 시절의 스코어를 지키고 있었으니 그런 볼멘소리를 들을 만도 했다.
집에 돌아와서 대체 어떻게 내가 그런 스코어를 만들 수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드라이브 샷은 그저 그랬고 퍼팅도 썩 좋은 편이 아니었는데 아이언 샷의 정확도가 높아진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140m 이내의 세컨드 샷을 만나면 뒤땅을 치는 일이 없이 그린에 올리든지 조금 잘못 치더라도 그린 에지에 볼을 가져다 놓을 수 있었기 때문에 좋은 스코어를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이다. 파3 홀에서는 깃대에서 1m 거리에 붙여서 버디도 잡았다.
지난 두 달 동안 해외 출장이다 주말 특근이다 하는 통에 골프를 치기는커녕 골프 클럽을 잡아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아이언 샷은 믿을 수 없는 정확도를 가지고 그린을 향해 곧장 날아가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나쁜 습관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
과거에는 아이언 샷을 할 때 가능한 한 멀리 보낼 욕심에 잔뜩 힘을 주고 때렸는데 오랫동안 골프를 쉬었더니 멀리 보낸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뒤땅만 안 치면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한두 클럽 길게 선택해서 정확하게 볼을 맞히기만 하겠다고 한 것이 포인트였다. 이렇게 했더니 오히려 전보다 아이언 거리가 늘어났다. 골프는 반대라더니 정말 그런 모양이다.
이 원리를 이용하면 일반적인 보기 플레이어가 스코어를 현저하게 줄일 수 있다. 아이언 샷을 할 때 두 클럽을 길게 잡고 거리를 절반만 보낸다고 생각하면 된다. 130m 남았을 때, 보통 때라면 8번 아이언 혹은 7번 아이언을 잡았을 테지만 6번 아이언을 잡고 살살 치면 제 거리가 다 날아갈 뿐만 아니라 방향성도 좋아진다. 처음에는 그린을 넘어가는 일도 생기겠지만 짧아서 그린 앞 벙커에 빠지는 것보다는 좋다고 생각하고 소신껏 밀어붙이면 전반 나인 홀에서만 3∼4 스트로크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골프를 치지 않으면서도 실력이 향상되는 경험을 하고 났더니 더욱 골프를 자주 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끔 됐다. 어쩌다 한번 필드에 나갈 때마다 나쁜 버릇 한 가지씩 없앨 수만 있다면 몇 년이라도 골프를 쉴 각오가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