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이 10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검토키로 함에 따라 양국 간 FTA 협상이 진전되는 계기를 맞을지 주목된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천더밍(陳德銘) 중국 상무부장은 이날 오후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통상장관 회담에서 ’한중 경제통상 협력비전 보고서’에 서명하고 경제통상 분야의 협력 증진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FTA 체결도 검토키로 했다.
더욱이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일본 총리는 이날 한.중.일 정상회의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한.중.일 3국 FTA(자유무역협정)가 내년 빠른 시일내 체결될 것을 희망한다”고 언급함에 따라 동북아 3국의 FTA 체결 가능성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한.중 FTA의 경우 농업 분야를 위시한 반대 목소리가 높아 협상 개시조차 적잖은 난관을 거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중.일 FTA 역시 일각에서 아주 낮은 수준의 FTA 체결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지만 한.중, 한.일 FTA조차 진전되지 못한 상황에서 지금 당장 실행하기에는 먼 얘기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소걸음’ 한.중 FTA 탄력받나=한.중.일 3국은 대표적인 수출지향형 국가이지만 각국의 사정 때문에 FTA 협상이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한 상태다.
한.일 FTA 협상의 경우 2003년 10월 협상개시를 선언했지만 한국이 제조업, 일본이 농업 분야의 반대 목소리에 각각 막혀 이듬해 협상 자체가 중단됐다. 이런 가운데 작년 4월 양국 정상회담에서 협상재개를 위한 실무협의를 개최키로 합의, 꺼져가던 협상의 불씨를 되살렸고 지난 7월까지 협상 재개 검토 및 환경 조성을 위한 실무협의가 3차례 개최됐지만 실질적인 재개 시점이 언제일지는 불투명하다.
한.중 FTA 논의는 더욱 더디다. FTA 체결시 파급력이 다른 국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워낙 크기 때문에 협상 개시 선언조차 조심스러운 탓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제조업은 FTA 체결시 이득을 보는 분야로 거론되지만 농업이나 단순 제조업은 중국산 제품에 대한 공포감이 워낙 심해 격렬한 반대 입장이 표출되고 있다. 심지어 제조업조차도 수출 증가폭보다 수입 증가폭이 더 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양국은 2004년 9월 통상장관회담에서 민간 공동연구를 개시키로 합의한 데 이어 2006년 11월 민간 차원의 연구를 산.관.학 공동연구로 격상해 논의 수준을 심화시켰다.
하지만 당시 연구기간을 1년으로 잡았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늦어져 작년 6월까지 5차례 회의를 개최했고 현재 막바지 단계에 와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아직은 FTA 체결에 대한 산업별 우려가 크기 때문에 상황을 점검하면서 내부적으로 의견을 모아가는 일이 중요한 상태”라며 “산.관.학 공동연구를 조속히 마무리하고 다음 단계를 모색해보자는 의지가 담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중 FTA의 경우 협상 개시조차 상당한 논란을 낳을 것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관계자는 “한.중 FTA는 우리가 다른 나라와의 FTA 체결시 우려하는 품목이 모두 걸려 있다”며 “오늘내일 협상을 개시하자는 취지로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한.중,일 FTA는 이제 겨우 민간 차원의 공동연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 정도로 진전 속도가 한.일, 한.중에 비해 더욱 느리다. 일본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중국과의 FTA 체결시 농업 부문의 막대한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데다 제조업 분야 또한 실제 이득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KIEP 정성춘 일본팀장은 “한.중.일 3국 FTA를 체결하려면 먼저 한.중, 한.일, 중.일 간 개방의 이익에 대한 조화를 이뤄내야 하는데 양자 간 FTA 추진상황조차 지지부진한 상황”이라며 “이웃국가임에도 경제구조의 차이가 크고 제약 요건이 많아 3국 FTA는 쉽지 않은 주제”라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하토야마 총리가 이날 ‘내년 빠른 시일내 한.중.일 FTA 체결’을 희망한 것도 실현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기보다는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그의 경제.외교관에서 나온 수사적 언급이라는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다만 3국이 상징적 의미에서 민감한 산업 분야를 모두 제외하고 중장기적 시각에서 낮은 수준의 FTA 체결을 검토할 순 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으나 이 역시 쉽지 않은 작업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중 경제통상 2018년까지 비전 제시=한.중 양국 통상장관이 협력비전 보고서에 서명한 것은 양국 무역액이 1천500억 달러에 달할 정도로 경제교류가 활발하고 교역 및 투자 역시 질적으로 고도화되고 있는 상황에 발맞춰 협력 증진의 지침서를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경제통상 관계의 전반을 한 번 점검하고 이를 토대로 양국 관계를 더욱 발전적으로 키워나가자는 의미를 담은 것”이라며 “무역 실무회담을 활용해 이행상황을 점검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양국은 우선 2천15년까지 교역규모를 현재의 2배인 3천억 달러에 도달하기로 의견을 모았고, 한국의 대중국 투자도 노동집약형에서 자본기술집약형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상호 시장개방폭을 확대해 관세.비관세 장벽을 완화하고 불필요한 통상마찰을 예방하기 위해 투명하고 공정한 무역환경을 조성하는 한편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검토 및 지역.다자 경제협력에의 공동참여를 합의했다.
또 정보통신, 금융, 유통, 물류, 첨단기술, 에너지, 기후변화, 환경, 농업, 자동차, 조선업 등 23개 중점 협력분야를 선정하고 구체적인 정책 방향도 마련했다.
자동차 무역규제 제거 노력, 양국 금융회사의 상호 진출 지원, 육해상 연결 카페리 운송, 우주사업 협력 확대, 원자력발전소 협력 시스템 구축, 제3국 해외유전 공동 개발, 전략석유 비축 분야의 협력 가능성 모색 등이 대표적이다.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 및 아세안+3 체제하에서 협력 강화, 한.중.일 기후변화 협력 강화 등 다자 및 지역 경제협력 방안도 구체화했다.
◇한.중.일 경제긴밀도 제고=3국 정상은 이날 한.중.일 협력 10주년 공동성명과 지속가능개발을 위한 공동성명을 통해 경제통상 분야에서 협력 방안과 환경 등 국제적 이슈에 대한 공동 노력 필요성을 확인했다.
이는 미국 중심의 단일체제가 유럽, 동북아 등 다극체제로 변모하는 와중에 한.중.일로 대표되는 동북아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는 실정에 맞춰 3국 간 공조의 틀을 더욱 강화하자는 인식이 담겨 있다는 시각이다. 3국 모두 경제에서 대외교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국가인 만큼 글로벌 금융위기로 무역의 위축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날 공동성명에 경제.통상 분야의 상호 유익한 협력 방안으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통한 경기 회복, 보호무역주의 반대 및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 성공을 도모키로 했다는 내용이 담긴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또 3국이 아세안, 아세안+3, EAS(동아시아정상회의), ARF(아시아지역안보포럼), APEC(아태경제협력체) 등 지역협의체의 발전을 도모키로 합의한 것은 협력 수준을 동아시아 전체로 확산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3국이 지속가능개발 공동성명을 채택한 것은 기후변화, 환경 등이 범지구적 문제인 동시에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소지가 있는 만큼 선제적 대응을 통해 논의의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도 읽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