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일본 총리가 10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3국 간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진전을 강조함에 따라 발언 배경과 추이가 주목되고 있다.
교도(共同)통신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그는 회견에서 “한·중·일 간 FTA 협상을 진전시키기 위해, 내년 이른 시기에 3개국 투자협정을 체결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보호주의에 빠지지 않는 형태로 3국이 리더 역할을 한다는 부분에서 협력 관계를 가질 수 있었다”며 “각각 경제 상황이 다르다. 그만큼 서로 단독 행동을 하는 게 좋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경제적인 협력이 필요할 것이라는 인식을 함께 했다”고 보충 설명을 했다.
그동안 일본은 미국은 물론, 한국, 중국과의 FTA 협상에 대해 상당히 소극적으로 임했었다. 자민당 정권에서 한때 한국과의 협상도 벌였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가장 큰 이유는 자국 농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하토야마 총리가 이날 기자회견에서 3국 간 FTA 협상 진전을 강조하면서 내년 이른 시기라는 시점까지 밝히면서 3개국의 투자협정을 체결하고 싶다고 발언한 것은 이례적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그의 이런 발언은 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제시했던 정권 공약의 연장선상에 있다.
민주당은 정권 공약에서 미국과의 FTA 협상을 촉진한다는 내용과 함께 중국,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제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과 투자, 노동, 지적재산 등 넓은 분야를 포함한 경제연대협정, FTA 협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고 명기한 바 있다.
이는 그가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대한 비판적 접근에서 출발하는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국, 중국, 일본이 이 구상의 핵심인 만큼 이 구상의 실천을 위해서는 FTA 체결은 선결과제이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한국이 그의 동아시아 공동체 정책에 대해 일단은 공감을 표시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주도권 문제, 동기 등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만큼 그동안 일본 정부가 소극적으로 임했던 이 문제를 앞장서서 제기함으로써 그 구상의 진정성을 대외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이와 함께 정권 공약에 명시한 이런 내용을 그가 취임 후 처음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분명하게 발표하면서 정부와 정치권, 국민 등 국내 여론을 주도하기 위한 포석도 있다는 것이 총리 주변의 분석이다.
지난달 16일 취임 이후 예산 문제, 각종 국책사업 중단 문제 등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한·중·일 FTA 협상에 대한 정부 내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만큼 국제무대에서 자신이 직접 이를 확인함으로써 정부 내의 이견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이란 설명이다.
다만, 이런 그의 구상이 어느 정도 구체화할지는 현 단계에서 예측하기 쉽지 않다. 더욱이 내년 7월 참의원 선거가 예정된 상황이어서 한국, 중국과의 FTA가 체결될 경우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농민층이 거세게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최대 장애물이다.
일단 하토야마 총리는 내년 이른 시기에 투자협정을 체결하고 싶다는 방식으로 농민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차단막을 설치한 것으로 평가된다. 내년 중에는 3개국 간 투자협정을 체결하되, FTA 협상은 그 이후의 문제인 만큼 시간을 갖고 농민을 중심으로 한 반발 층을 설득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년 이후라도 FTA 협상이 본격화할 땐 여전히 농민층의 반발이 최대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저가 농수산물이 대량 수입되면서 피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본의 농민층이 중국과 한국과의 FTA 체결을 쉽게 인정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토야마 정권은 그러나 아직 이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 대안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아시아 공통통화까지 목표로 하고 있는 하토야마 총리의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3국간 쟁점 현안인 영토나 역사 문제에 못지않게 이런 경제 문제에서도 넘어야 할 벽이 산적해 있는 상황이어서 앞으로 그의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