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포럼] 디지털 연구보고서 도입, 10년 늦었다

[콘텐츠포럼] 디지털 연구보고서 도입, 10년 늦었다

정부 출연연구소에 근무하는 한 사람으로 여러 연구보고서를 볼 기회가 있다. 연구결과는 부분적으로 관련 학회에 발표되기도 하고 저널로 남기도 하나 전체 연구결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연구보고서 외에는 없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형식의 연구보고서는 보존자료로서의 효용성이 떨어진다. 연구보고서도 콘텐츠의 하나인데 콘텐츠 기술 발전을 수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사용되는 연구보고서 형식 중 가장 큰 문제점은 인쇄매체를 기본으로 한다는 것이다. 수십권을 인쇄하는 것을 기본으로 생각했기에 비싼 컬러 인쇄는 포기하고 값싼 흑백 인쇄를 하도록 돼 있다. 소리와 동영상 같은 멀티미디어 자료는 종이에 인쇄할 수 없어 당연히 포기했다. 웹과의 연결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따라서 사운드와 관련된 연구과제에서 사운드를 뺀 보고서가 만들어지고 영상 특수효과 구현에 관한 연구에서 결과 영상물이 제외되는 보고서가 만들어진다. 우리가 늘 자랑하는 IT가 연구보고서 작성에 기여한 것은 타이프라이터 대신 워드 프로세서를 이용한다는 것이 전부다.

 연구보고서에 가장 중요한 연구결과물을 포함할 수 없으니 연구결과 평가는 연구보고서만으로는 부족하고 별도의 프리젠테이션 자료 위주로 진행된다. 프레젠테이션 자료에는 연구결과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멀티미디어 자료와 공들여 만든 애니메이션까지 사용된다. 이러한 프레젠테이션 자료는 평가 후에 연구자 개인이 보관한 것을 제외하고 찾을 수 없게 된다. 디지털 자료의 필요성을 알고 있는 콘텐츠 관련 유명 학회에서는 오래 전부터 학회 프로시딩과 함께 DVD로 디지털 자료를 제공하고 있으며 웹에서 해당 동영상을 제공하기도 한다.

 연구보고서에 가장 중요한 내용이 빠지게 되니 문제는 더 커진다. 우선 연구보고서를 덜 보게 된다. 학술지 논문은 심사라는 과정이 있기에 차라리 논문 작성에 더 노력하겠지만, 연구보고서는 결과 평가가 핵심이 아니기 때문에 보고서 작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고 공식적으로 남는 것은 학술지의 논문이 아니고 연구보고서라는 것이다. 이제 연구보고서의 틀을 새로 짜야 할 때다. 아니 이미 10년 가까이 늦었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연구보고서는 당연히 멀티미디어 자료를 포함하도록 해야 한다. PDF 형식의 문서에는 이미 이러한 기능이 구현되어 있다. 다른 자료를 참고할 때 하이퍼링크를 사용하도록 한다. 타 연구결과의 인용을 바로 확인할 수 있으니 어느 연구결과가 더 인정받는지의 평가도 가능해진다. 보고서를 키워드 검색해 원하는 연구결과를 찾는 것도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러한 보고서는 해당 시스템에 로그인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위키피디아같이 결과를 놓고 토론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검토해 보자. 자신의 연구결과를 누구나 쉽게 볼 수 있고 의견을 달 수 있다면 연구자는 연구결과 발표에 더욱 신중한 태도를 취할 것이며 이는 연구의 질과 투명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디지털 연구보고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연구관리 기관에서 새로운 보고서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며, 보고서의 포맷도 새로 정해야 하고 관련 연구규정도 바꾸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가 가장 절실한 분야는 디지털 콘텐츠 분야다. 이른 시일 내에 디지털 연구보고서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이만재 한국전자통신연구원 SW콘텐츠부문 연구위원/manjai@et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