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소방, 방재, 민방위 운영 및 안전관리에 관한 사무는 어떤 정부조직에서 담당할까? 정답은 행정안전부와 소방방재청이다. 한 조직이 아니라 두 조직이다. 왜 그런지에 대한 해설은 아주 어렵다. 우리나라 정부조직법의 허점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뿐만 아니라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고시생들도 이 물음에 답할 수 없게 정부조직법이 지난해 2월 일부 개정됐다. 이렇다보니 서울특별시, 부산광역시, 인천광역시, 광주광역시, 울산광역시 등 우리나라 모든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은 어떤 정부조직의 장단에 맞춰야할지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 하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다.
행정안전부 정책자문위원회 재난안전분과위원(위원장 김찬오, 서울산업대 교수)들뿐만 아니라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중앙대, 숭실대, 동국대 등 소방, 방재, 안전 분야 교수들은 다 알고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김찬오 서울산업대 교수는 지난 9월16일 울산광역시청, 울산광역시 산업단지, 석유화학단지 현장을 방문했다. 김찬오 교수는 이날 9시간 정도 현장 소방, 방재, 안전 담당공무원들로부터 성토(聲討)를 받았다. 이날 이 자리는 거의 이명박 정부의 잘못을 여러 사람이 모여 폭로, 비판, 규탄하는 자리가 됐다.
행정안전부와 소방방재청의 엇비슷한 여러 공문 하달 때문에 일선 지방공무원들이 제대로 화가나 있었다. 김찬오 교수는 행정안전부 정책자문위원회 재난안전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다. “행정안전부와 소방방재청의 업무중복을 몰라서 고치지 못하는 것이냐?”, “분과위원장이 건의해서 바로잡아야하는 것 아니냐?”라는 항의도 빗발쳤다.
마침 다음날인 9월17일은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이 직접 주재하는 정책자문위원회 분과별 위원장들과 회의가 있었다. 행정안전부 재난안전실과 소방방재청 공무원 모두 잘 알고 있는 사항을 이달곤 장관만 모르고 있었다.
김찬오 교수는 “행정안전부와 소방방재청의 업무중복으로 인한 행정력 낭비부분을 잘 알고 있었지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확정해 발표한 것인데 문제점을 이야기하기란 교수로서도 쉽지 않아 저를 포함해 모든 교수들이 입을 다물고 있던 것”이라며 “잘못된 정부조직법이 시행된 지 20개월 정도 시점에서 더는 그냥 둘 수 없어 분과별 정책자문위원장단 회의에서 이달곤 장관에게 공식 건의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가 요구한 사항은 정부조직법 29조 1항과 6항을 명확하게 조정해 달하는 건의였다.
실제 우리나라 정부조직법 제29조(행정안전부) 1항과 6항에 따르면 “소방, 방재, 민방위 운영 및 안전관리에 관한 사무”는 행정안전부와 소방방재청이 같이 맡도록 돼 있다.
정부조직법 제29조(행정안전부) 1항은 “행정안전부장관은 국무회의의 서무, 법령 및 조약의 공포, 정부조직과 정원, 공무원의 인사·윤리·복무·연금, 상훈, 정부혁신, 행정능률, 전자정부 및 정보보호, 정부청사의 관리, 지방자치제도, 지방자치단체의 사무지원·재정·세제, 낙후지역 등 지원, 지방자치단체간 분쟁조정, 선거, 국민투표, 안전관리정책 및 비상대비·민방위·재난관리 제도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고 돼 있다.
정부조직법 제29조(행정안전부) 6항은 “소방, 방재, 민방위 운영 및 안전관리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행정안전부장관소속으로 소방방재청을 둔다”고 돼 있다.
김찬오 교수는 “1항에 행정안전부는 안전관리정책 및 비상대비·민방위·재난관리 제도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고 돼 있고 6항은 소방, 방재, 민방위 운영 및 안전관리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행정안전부장관소속으로 소방방재청을 둔다고 돼 있어 업무의 이원화(중복)가 뚜렷하다”며 “1항과 6항의 업무를 재조정하지 않으면 현재 행정안전부 재난안전실에서 추진하고 있는 국정과제 중 하나인 ‘통합적재난안전체계구축’은 요원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진항 행정안전부 재난안전실장은 “분과별 정책자문위원장단 회의에서 공식건의 된 사항인 행정안전부와 소방방재청의 업무 중복해결을 위한 보고서를 현재(10월12일) 작성 중”이라며 “빠르면 이번주 늦어도 다음주 중으로 이달곤 장관님께 보고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김진항 실장은 또 “이 사항은 지난해 초부터 감지됐던 사항으로 비슷한 공무 하달의 문제와 안전문화업무, 민방위업무 등과 관련해 법을 개정해야 하는 상황인 만큼 소방방재청 박연수 차장과 업무조정 협의를 했던 사항”이라며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민방위기본법, 비상대비자원관리법 등 관련 법 상의 업무조정 등 포괄적으로 대안을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실장은 특히 대안으로 “행정자치부에서 행정안전부로 바꿀 때 초심으로 돌아가 소방방재청은 예방, 대비, 대응, 복구 업무 중 대응업무에 주력하는 대응전문조직으로 발전시키고 행정안전부는 예방, 대비, 대응, 복구 업무 중 예방, 대비, 복구 업무에 주력하는 총괄정책조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현 단계에서 가장 바람직하고 현실적인 모델일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소신을 밝혔다.
소방방재청 한 고위공무원은 “행정안전부는 내무부, 행자부, 민방위재난통제본부 시절의 방재업무에서 이제는 눈을 때고 전통적 방재업무는 소방방재청에 그대로 맡겨 업무를 더욱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것”이라며 “행정안전부는 대한민국의 안전을 총괄하는 만큼 안전문화진흥공단과 같은 조직을 새로 만들어 전통적인 소방ㆍ방재, 건설안전, 항공안전, 산업안전, 원자력안전, 전력안전, 가스안전 등 기술적 전문업무가 아닌 안전문화 의식개혁 등 기술적 전문업무까지 통합, 총괄할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 개척에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재난포커스(http://www.di-focus.com) - 윤성규 기자(sky@di-foc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