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세상읽기] SF와 인류의 비이성

[SF 세상읽기] SF와 인류의 비이성

‘폭스 박사 효과’라는 용어가 있다. 실험 내용은 이렇다. 특정 전문 분야에 관해 아무 지식도 없는 전문 배우(가명 폭스 박사)에게 대본을 주고 강의 내용을 연습시킨다. 단 이 내용은 완벽하게 엉터리다. 처음부터 끝까지 말이 안 되도록 지능적으로 구성했다는 뜻이다. 그런 다음 유명 학자인 폭스 박사의 강연이라고 그럴듯하게 설정한 뒤 전문가들 앞에서 강의를 시작한다.

 수차례 반복한 이 실험에서 강의 내용이 엉터리라는 것을 발견한 청중이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사실 폭스 박사 효과는 강의평가 제도가 그리 합리적이지 않다는 결론을 이끄는 데에 쓰였다. 청중은 실제 내용보다는 다른 요소들, 즉 강사의 화법이나 화자의 능숙함 등에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 외에도 사람들이 항상 이성적인 판단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여러 가지 실험이 존재한다. 유명한 ‘밀그램 실험’은 권위라는 추상성 앞에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쉽게 꺾이는지를 보여준다. 스탠퍼드 대학에서 벌어진 모의 감옥 실험 역시 주어진 체제와 권위가 어떻게 사람을 바꾸는지 (또는 사소한 본성을 확장시키는지) 알려준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실험들이 인류 전체의 보편적인 속성을 완전히 드러낸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인간이 항시 이성의 레이더를 켜놓고 살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군중심리나 강사의 흡인력이나 체제가 부여해준 눈꼽만 한 권력만으로도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예는 비단 실험을 해보지 않더라도 주변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다. 당장 우리말에서도 ‘완장을 찼다’는 표현이 있지 않은가.

 이런 현상이 극대화된 것은 아마도 전쟁, 그중에서도 전면전일 것이다. SF란 것이 지금 당장은 일어나지 않아도 언젠가는 벌어질지 모를 일, 또는 그 정도의 개연성을 담는 일을 다루는 장르라고 한다면, 대형 자연재해나 환경 자체의 전복뿐 아니라 기술과 반목을 통한 자멸을 주제로 삼는 것이야말로 어찌 보면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러한 극단의 상황을 다룬 작품은 시대상황과 병행해 수도 없이 많았을 것이다. 이번에 소개할 SF는 모르데카이 로시왈트가 지은 ‘핵폭풍의 날(Level Seven)’이다.

 주인공은 7층으로 구성된 지하 대피 시설의 7층에서 근무한다. 그의 임무는 스피커를 통해 울려나오는 지시에 따라 최종적인 핵병기 발사 버튼을 누르는 것. 그리고 대피시설 전체에는 비상시의 군사·행정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수많은 인원과 설비들이 갖추어져 있다.

 현실에서는 결국 전면전이 벌어지지 않고 냉전시대가 지나갔지만 소설에서는 그렇지 않다. 결국 두 나라는 보유한 핵병기를 상대에게 모조리 퍼붓고, 이제 이 시설에 남은 사람들이 할 일이라고는 ‘살아가는’ 것뿐이다. 단시일 내에 지상으로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한 사람들은 후손들을 위해 ‘지하는 선이고 지상은 악’이라는 주제의 동화를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하나의 결론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작품 전체는 비이성적이고 대규모 자해에 지나지 않는 희극을 연출한다.

 시대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가상적인 상황이 그리 헛되어 보이지 않는 것은 인류가 얼마나 어리석은 실수를 많이 저질렀는지,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지 우리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성이라는 최고의 도구가 있다. 그 도구를 잘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파국이나 공황이 끝까지 상상에만 머물도록 하는 길일 것이다.

김창규 SF작가 sophidia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