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전자제품에서 안테나가 사라지는 시대가 머지않았다. 국내 한 중소기업이 전자제품 케이스 안에 구리 잉크로 도금한 안테나를 내장할 수 있는 인쇄 도금형 안테나(PDS) 공법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이 기술은 이미 휴대폰에 적용되고 있으며, 노트북·자동차 등 무선주파수(RF)를 사용하는 모든 전자제품에 적용될 전망이다.
PDS 공법이 개발된 지 3년이나 지났지만 업계의 무관심, 기술의 불완전성으로 인해 그동안 제품에 적용되지 못했다. 자칫 기술이 빛을 보지도 못한 채 사라질 뻔했다. 그러나 한 기술장인의 오랜 끈기와 고집 덕분에 결국 이 기술은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30여년 도금장인의 길을 걸어온 그가 바로 김용문 탑네트워크 사장(55)이다.
“지난 2007년 모 대기업에 제품을 납품하기로 했는데, 이 계약이 불발되면서 지난해 회사가 부도가 났습니다. 오랜 직장 생활 끝에 마련한 집도 팔고, 전세·월세를 전전했죠. 임차료를 내지 못하니 건물 주인이 전기를 끊어버렸습니다. 전 재산을 털어먹고 자살까지 결심했지만, 일평생 도금기술에 바친 장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더군요. 촛불 켜고 샘플을 개발한 결과 겨우 계약 한 건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김 사장은 일생을 도금 기술 개발에 전념해온 장인이다. 삼성전자에서 연구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도금 기술과 인연을 맺게 됐으며, 대부분의 삼성전자 IT기기 개발에 관여했다. 1997년 회사를 퇴직한 후 그는 휴대폰 재질의 90%를 차지하는 폴리카보네이트에 도금을 입히는 기술 개발에 매진해 왔다. 대부분의 재료 공학 전문가들은 불가능하다며 기술 개발을 단념하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보란 듯이 기술개발에 성공하게 된다.
성공의 달콤함도 잠시, 곧 큰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휴대폰에 금속 피막을 입히자 안테나가 제 기능을 못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혁신적인 기술도 적용이 불가능하다면 무용지물입니다. 그러나 재앙과 같은 이 문제는 곧 축복으로 바뀌었습니다. 발상을 전환해 휴대폰 케이스에 부분 도금하는 방식으로 휴대폰용 안테나를 개발한 것입니다.”
휴대폰용 PDS 공법은 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휴대폰 내에서 안테나가 차지하던 공간을 줄일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또 기존 제품에 비해 절반 가격으로 안테나를 생산할 수 있고, 제작기간이 짧아 유연하게 휴대폰에 적용할 수 있는 강점도 지닌다.
탑네트워크의 안테나는 삼성전자 휴대폰 1개 모델에 채택돼 3개월 전부터 양산에 들어갔다. 현재 여러 회사 제품 12개 모델에 공급계약을 추진 중이다. 특히 고기능 구현을 위해 휴대폰 내 공간 줄이기에 관심 많은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러브콜이 잇따르고 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