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스크린 휴대폰과 평판 LED TV 등 첨단 전자제품이 화려한 조명을 받는 이 때, 땅 속에 묻혀 있는 수도관이나 연결 부품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눈에 잘 띄지 않아도 우리가 늘 마시는 물은 이 수도관과 여기에 연결된 각종 부품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다. 시장 규모는 작고 비록 첨단 전자제품 만큼 주목을 받는 것도 아니지만 이 수도관 부품 시장에도 치열한 기술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더구나 먹는 물을 운반하는, 시민 건강과 직결된 제품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신념이 필요한 업종이다. 무려 7년여의 노력 끝에 친환경 다기능 상수도관 부품을 개발한 하이스텐에 주목하는 이유다.
남해고속도로 부산 방향 끝자락 서김해 IC를 빠져 달리기를 10여분. 조그만 김해 농공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하이스텐’이라는 간판은 눈에 띄지 않는다. 내비게이션에 의존하고 있어도 중간에 확신을 주는 이정표가 없으면 불안하기는 마찬가지. 내비를 믿고 끝까지 목적지라 찍힌 곳에 도착해 주위를 살피니 그제서야 여러 벽간판 속에 숨은 하이스텐이 눈에 띄었다.
“간판은 눈에 띄게 안 걸어둡니다. 중소 부품업체지만 신제품이나 신기술을 개발했다고 소문이 나면 여기저기서 찾아와 모방하려 들기 때문이죠.” 김종재 대표의 첫 마디는 이 업종의 시장 규모를 떠나 현재 기업간 기술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대번에 느끼게 하는 말이다.
하이스텐(대표 김종재 www.histen.co.kr)은 상수도관에 사용하는 관 이음쇠 및 각종 밸브, 새들붙이 분수전 등을 만드는 스테인리스 제품 전문제조 기업이다. 생산 제품은 주로 상수도 시설을 관리하고 있는 지자체나 공공기관에 납품된다. 다품종 소량 주문생산이 가능해 현재 생산 가능 제품만 1100여종. 이음쇠와 분수전 관련 기술이 특히 뛰어나 기술표준원으로부터 국내 최초의 스테인리스(조인트) 신뢰성규격 인증을 받았고 해당 특허와 의장등록만 70여 가지가 넘는다.
일반적으로 상수도관에 사용하는 각종 부품이 동합금 재질로 만들어지는데 반해 하이스텐은 95년 설립 초부터 스테인리스 재질의 수도용 기자재 생산에 전념,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스테인레스는 강하면서도 가볍고 깨끗해 최근 자동차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합금 형태로 연구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소재다.
최근 하이스텐은 무려 7년여의 노력 끝에 세계 최초로 ‘자유회전식 스테인리스 새들붙이 분수전’을 개발했다. ‘새들붙이 분수전’은 상수도 주관과 연결된 관들을 이어주는 밸브를 말한다. 하이스텐의 신제품은 기존의 고정식 또는 제한된 회전 범위의 분수전과 달리 360도 원하는대로 방향을 조절할 수 있다. 때문에 초기 시공은 물론 시공 후 보완 및 유지보수가 편하다. 특히 스테인레스를 소재로 만들어 기존 동합금 제품이 안고 있던 부식 등 위생 상의 문제를 해결했다.
김 대표는 직접 개발한 분수전을 가리키며 “2002년 쯤 서울시에 상수도관 부품을 납품하던 중 기존 분수전이 소재는 물론 기능적으로도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그 때 자체 개발을 결심했고 약 8억 원을 투자해 완성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테인레스 소재는 기존 합금동에 비해 비싸다. 또 스테인레스 소재 분수전을 처음 만드는 것이었기에 하이스텐은 개발 과정에서 제품 불량률을 낮춘 완성도 높은 주조방안을 찾는데 시행착오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원가에 따른 가격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주조분야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고 있는 생산기술연구원 사이버설계지원센터의 문을 두드렸고, 하이스텐은 생기원이 개발한 주조전용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만나면서 이 문제들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었다.
제품 개발에 성공하자 하이스텐의 생산성과 매출은 급격히 늘어났다. 제품 불량률은 9∼10%대에서 3∼5%대로 개선됐고, 매출도 48%나 증가했다. 지난 해 80억원의 매출은 올해 100억원대에 이를 전망이다. 최근에는 주문량을 감당하지 못해 전 직원이 휴가를 반납하고 주야로 생산라인을 가동 중이다.
해외 수출 등 비전 상승 또한 두말할 필요가 없게 됐다. 미국과 일본의 전통깊은 수도관 전문기업의 방문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이스텐은 3000여평의 신규 공장을 마련해 생산 라인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김종재 대표는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직접 우리 회사를 찾아, 그것도 100여회나 오가며 함께 애로기술 해소에 힘써 준 생기원측에 감사한다”며 “현재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다양한 수도, 산업용 밸브류 등의 부품을 국산화하는 것으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김해=임동식기자 dsl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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