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의 습성을 응용한 ‘BR23C’와 물고기로부터 영감을 얻은 ‘에포로(Eporo)’. 이들은 일본의 자동차 회사인 닛산이 작년과 올해 연달아 선보인 로봇들이다. 데뷔 무대도 모터쇼가 아니라 일본 최대의 IT관련 전시회인 CEATEC였다. 이제 자동차회사가 로봇을 만드는 일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2000년에 등장해 계속 발전하고 있는 혼다의 아시모가 대표적이고, 도요타도 다양한 형태의 로봇을 선보였다. 최근에는 현대자동차가 로봇산업 진출계획을 밝혔다. 로봇연구를 통해 미래 자동차의 핵심 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인간형태인 혼다 아시모와 달리 닛산의 로봇들은 자동차처럼 바퀴로 움직인다. 작년에 등장한 BR23C는 벌이 겹눈을 통해 주변환경을 감지하고 각자의 공간 내에 있는 천적이나 장애물을 피해 비행하는 습성을 흉내 냈다. 센서가 전방 180도 내의 장애물을 탐지하고 감속과 방향전환을 통해 이를 회피하도록 한 것이다. 복잡한 분석에 의존하는 기존 시스템과 달리 환경 적응 능력에 의해 반사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이 특징이고, 축적된 데이터나 고도의 연산처리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고성능 CPU나 메모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장점이다. 닛산은 이 기술이 자동차의 장애물 인식 및 충돌회피 기능에 응용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올해 선보인 에포로는 여러 대가 함께 무리 지어 이동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었다. 떼지어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들에서 영감을 얻어 레이저 거리 탐지기와 울트라 와이드 밴드(UWB) 통신이 각각 물고기의 옆선과 눈 역할을 하도록 했다. 덕분에 에포로들은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이동하면서도 서로 간에 속도와 거리를 유지할 수 있고 충돌 없이 방향을 전환할 수 있다. 주위 사물의 위치와 차량 간 정보를 파악해 무리 지어 행동하는 로봇은 에포로가 세계 최초. 이 기술이 자동차에 접목된다면 좁아지는 길에서의 병목현상이나 교차로에서의 신호대기를 줄일 수 있고, 사고 예방에도 도움을 주게 된다.
닛산은 11월에 일본에서 출시되는 최고급 세단 신형 푸가를 통해서도 세계 최초의 안전기술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커브길에 접근하는 속도가 지나치면 내비게이션에 연동된 안전장치가 이를 파악해 속도를 줄이도록 하며, 지능형 교통 시스템(ITS)에서 주변 교통환경에 대한 정보를 받아 사고 위험 요소를 운전자에게 미리 알려준다. 차량 자체의 독립적인 안전장치는 물론이고 인프라와 연동된 안전기술까지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국닛산은 13일 개막된 한국전자전에 국내외 자동차업계 최초로 전시부스를 마련하고 BR23C와 주행 안전기술 시뮬레이터, 첨단 슈퍼카인 GT-R를 출품했다. 이번 전시와 관련해 방한한 닛산의 기술 마케팅 책임자는 현재 자동차에서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전자장치의 비중이 향후의 전기차 등에서는 70%까지 올라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민병권기자 bkm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