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LG전자. 한국의 두 전자업체가 미국 TV시장을 주무르고 있다.
십년 전까지만 해도 마이너였던 두 업체가 ‘TV의 명가’로 군림하던 소니를 누를 것이라고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미국 전자유통점 한쪽 구석에서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 쓴 ‘메이드 인 코리아’ 전자 제품은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이 됐다. 이제 삼성·LG의 TV는 미국 주요 전자제품 유통점의 가장 ‘비싼’ 자리에 당당히 자리잡고 있다.
◇미국 TV 시장 압도한 삼성·LG=미국 뉴저지의 쇼핑몰 가든스테이트 플라자에 위치한 베스트바이에 들어서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1층 TV 전시 공간이다. 100여평에 달하는 이 공간에 깔린 전체 TV 중 삼성·LG의 제품은 절반에 달한다. 매장 입구에서 곧장 보이는 전면이나, 눈이 잘 가는 곳에는 어김없이 한국 업체의 TV가 버티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올해 초 첫 선을 보이며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만든 ‘LED TV’로 전용 전시 공간을 꾸며 놓았다. 베스트바이가 특정 공급업체에 따로 부스를 마련해 준 것은 삼성전자가 처음이다. 이는 현지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미국 최대 전자유통점인 베스트바이가 관행을 깨면서 까지 삼성전자에 자리를 내준 것은 LED TV가 단숨에 미국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기 때문이다. 존 카스틸로 베스트바이 판매과장은 삼성·LG의 LED TV를 입이 마르게 칭찬했다. 그는 “별 생각없이 평판 TV를 구매하려고 온 고객들이 LED TV를 직접 보고는 깜짝 놀라는 경우가 많다”며 “베스트바이의 판매점원들 조차 삼성의 LED TV를 처음 봤을 땐 믿을 수 없는 얇은 두께에 정말 놀랐다”고 귀뜸했다.
뉴저지 파라무스에 자리잡은 로컬 전자 유통점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P.C. 리처드앤드선의 테드 김 판매원은 “우리 매장에서 자릿세가 가장 비싼 곳에 LG전자의 TV가 자리잡고 있다”고 소개하며 “수십년 간 이 자리에서 TV를 판매해 왔는데 이제 삼성과 LG가 확실히 소니를 밀어낸 느낌”이라고 말했다.
과거에 ‘디자인 하면 소니’라는 등식을 공식처럼 받아 들였지만 TV 판매에 잔뼈가 굵은 전문가가 볼 때도 확실히 한국업체의 디자인이 돋보인다는 것이다. 테드 김 판매원은 “삼성의 ‘터치 오브 컬러(ToC:한국에서는 ‘크리스탈 로즈’로 마케팅)’나 LG의 ‘보더리스 TV’에 한표를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압도적인 제품과 디자인=비결은 제품력과 디자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북미 시장에 백라이트로 LED를 채용한 LCD TV를 LED TV로 이름붙여 선보였다. 2년 전부터 삼성은 LED 백라이트 TV를 선보였지만 본격적으로 시장에 내놓은 것은 올해 3월이다.
3㎝가 채 안 되는 얇은 두께, 기존 LCD TV를 능가하는 뛰어난 화질에 소비자들은 열광했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도 고가의 LED TV는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갔다. 신제품 출시 6주만에 미국에서만 14만대가 팔렸다.
엄영훈 삼성전자 미국법인 상무는 “LED TV는 기술과 디자인의 집약체”라며 “LED TV로 소비자들에게 삼성이 TV 시장의 선구자(founder)라는 것을 다시금 각인시켰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가 올해 미국에서 판매하는 TV 중 10∼15%는 LED TV가 될 전망이다. 엄 상무는 “9월 기준으로 삼성의 LED TV 시장 점유율은 84% 정도”라며 “LG와 소니에 이어 저가 TV업체인 비지오까지 LED TV를 내놓고 있지만 앞으로도 시장 점유율 50% 이상을 지킬 것”으로 내다봤다.
만년 3등이었던 LG전자의 감회도 남다르다. 2위 소니를 턱밑까지 추격한 LG가 내건 전략도 LED TV다. 직하방식(패널에 LED를 촘촘히 박는 방식)을 밀고 있는 LG전자는 ‘화질과 디자인 사이에서 타협하지 않는다’는 모토 아래 신제품 LED TV를 쏟아내고 있다. 특히 직하방식과 엣지방식(패널의 테두리에만 LED를 박는 방식)을 섞은 ‘하이브리드’ LED TV에 거는 기대가 크다. 가격과 디자인(두께), 화질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황재일 LG전자 US법인장은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타일리시한(stylish) 디자인과 똑똑한(smart) 기술 사이에서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며 “올해 점유율 10%를 목표로 확실한 2등으로 올라서겠다”고 밝혔다.
저가 물량 공세를 펴고 있는 현지업체 비지오의 기세가 대단하지만 비지오는 주요 경쟁상대로 보지 않는다. 비지오는 최대 전자유통점인 베스트바이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코스트코·샘스클럽 등 회원제 할인점에서 수량 기준으로 상당한 양을 팔아치우고 있다. 삼성과 LG는 공략하는 시장이 다른 만큼 브랜드 이미지를 깎아 먹으면서 비지오와 가격 경쟁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엄영훈 상무는 “LG와 소니에 이어 저가 TV업체인 비지오까지 LED TV를 내놓고 있지만 가격 경쟁에는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