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이슈] 트리즈 이론

[이머징 이슈] 트리즈 이론

 #삼성전자 양문형 냉장고의 초기 모델 홈바에는 문 양쪽에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의 링크가 부착돼 있었다. 이물질이 낄 경우 문 고장은 물론이고 해외 업체에 특허료까지 물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나중에 링크가 감쪽같이 사라진 모델로 진화했다. 이 기술을 적용한 냉장고 모델에 ‘홈바 문을 열어보세요’라고 광고까지 했을 정도다. 이 혁신적 변화를 이끌어 온 것이 무엇일까. 바로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이다.

 #세계적 위생 생활용품 업체 P&G는 자사 기저귀에 들어갈 방수소재 개발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얇은 비닐막에 수많은 구멍을 뚫어야 하는데, 구멍을 촘촘히 많이 뚫을수록 기저귀 기능은 좋아지나 인장력이 떨어지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내부 아이디어에 한계를 느낀 P&G는 오픈 이노베이션 전문가에게 문제 해결을 의뢰했다. 이 전문가는 우주선이 우주공간에서 수많은 입자·물질들과 광속으로 부딪혀 발생하는 피해를 막기 위한 기술을 기저귀로 가져왔다. 기저귀 방수소재에 수많은 입자를 일시에 광속으로 쏘아 구멍을 낸 것이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창의적인 기술이나 제품은 종종 엉뚱한 곳에서 나온다.

 이들 사례처럼 엉뚱한 발상이 거대한 성공으로 이어진 길목엔 오픈 이노베이션 기법인 ‘TRIZ(트리즈)’가 있었다.

 ‘TRIZ’는 러시아어 머리글자로 만든 글자조합이며 그 영어식 표현은 ‘Theory of Inventive Problem Solving’이다. 우리말로는 ‘창의적 문제해결 이론’쯤 된다.

 트리즈는 옛 소비에트연방(소련)에서 나왔다. 그래서 영어식 ‘TIPS’가 아니라 ‘TRIZ’란 러시아식 이름으로 세계에 통하고 있다. 얼마 전 이 트리즈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시몬 리트빈 박사가 한국을 찾았다. 리트빈 박사는 TRIZ의 창시자인 겐리히 알츠슐러로부터 직접 교육을 받았을 뿐 아니라 함께 일하며 트리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사업화했다. 트리즈는 이미 삼성전자·삼성전기·LG전자·LG화학·포스코 등 여러 기업이 도입해 활용하고 있지만 더 많은 기업에 전파하기 위한 사업화 방문이었다.

 트리즈는 연구개발(R&D) 자원과 결과를 외부에서 가져오는 원론적 오픈 이노베이션에 그치지 않고, 전혀 상관없는 영역까지 문제 해결 범위를 넓힌다. 기저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주선 기술을 활용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일반적인 오픈 이노베이션이었다면 P&G 기저귀 문제는 제지기술, 코팅, 일반 화학 등의 기술범위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트리즈는 우주선 기술에서 해결점을 찾아냈다. 기술 응용의 범위를 거의 무한대로 넓힌 것이다. 창의적 문제 해결이란 그런 것이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창조경영을 강조하면서 트리즈를 눈여겨본 것도 창조경영과 트리즈가 같은 염색체를 가졌기 때문이다.

 삼성은 이후 러시아에서 핵심 트리즈 멤버들을 영입했고, 그때 영입했던 트리즈 전문가가 양문 냉장고의 홈바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해 냈다. 그 기술은 세계적인 특허가 됐다.

 트리즈의 응용사례는 무궁무진하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세탁기에 빨아야 할 옷을 넣고, 세제를 풀어 세탁기를 돌리는 것이 현실이라면 트리즈는 ‘왜 옷을 세탁기에 넣어야 할까’라는 의문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옷에다 세탁기를 넣는 방법은 없을까’까지 나간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초음파 세탁기다. 큰 통에다 빨 옷을 담고, 조그만 세탁기를 함께 넣어놓으면 세탁이 되는 상상 같은 일이 트리즈를 통해 만들어졌다. 실제로 이 초음파 세탁기는 2000년대 초반 일본 산요에서 만들어 상용화한 바 있다. 성공하는지 마는지는 진짜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창조적으로 문제에 접근해 그것을 해결하는지가 관건인 것이다.

 1950년대 러시아에서 처음 나온 트리즈도 시대에 맞게 진화하고 있다.

 미국 보스턴에 있는 GEN3파트너스(www.gen3partners.com)는 트리즈 방법론을 더욱 발전시켜 현대화한 ‘G3:ID’로 완성했다. 역시 러시아는 이론과 원천에 강하고, 미국은 사업에 강한 토질을 지닌 것이다.

 물론 GEN3파트너스에는 리트빈 박사가 참여해 러시아 지사인 알고리듬과 오픈 이노베이션 서비스를 지원하는 글로벌날리지네트워크(GKN)의 총괄 책임을 맡고 있다. 전통을 지키면서 실제를 가미한 진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GEN3파트너스 측은 “‘G3:ID’는 트리즈로부터 수년 동안 2개의 방향으로 진화한 결과”라며 “첫째로 초기 트리즈는 문제를 풀기 위해 아이디어를 내는 도구로만 활용될 수 있었지만 G3:ID는 비즈니스상의 중대한 도전을 해결하는 방법론으로 활용된다. 둘째는 아이디어를 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들을 어떻게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로 만들 것인지의 방법까지 제시한다”고 설명한다.

 GEN3파트너스 한국 내 서비스 독점권을 행사하는 QM&E경영컨설팅은 국내 기업들이 차세대 제품 개발, 기술 개발 과정에서 한계에 부딪혔을 때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혁신적인 솔루션을 제공함으로써 보다 진보된 기술로 지속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또 창의적 경영을 위해 자체 인력의 혁신능력 향상을 원하는 기업에 가장 과학적이면서 진보된 이노베이션 방법론을 제시한다는 방침이다.

 트리즈가 던진 작은 아이디어의 파문이 우리나라 오픈 이노베이션 확산의 거대한 물결이 될지 주목된다.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kr 

 ◆인터뷰-시몬 리트빈 박사

 “문제 해결을 단어적으로 접근해선 안 됩니다. 기능적으로 접근해야 근원적인 처방이 가능합니다.”

 트리즈 이론의 세계적 대가이자 GEN3 서비스 확산에 앞장서고 있는 시몬 리트빈 박사는 기능을 중심에 놓고 접근해야 문제 해결점을 멀리서도 반드시 찾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자동차 기업의 기술적, 경영적 문제점을 자동차 분야에서만 찾는 것이 아니라 신발기업, 섬유제조업은 물론이고 옛날 농사기법에서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리트빈 박사는 “그래서 우리는 고객(기업)이 문제해결을 요청한 것에 단어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말로 듣고 분석한다”며 “단어로 접근해서는 근본적인 해결에 다다를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GEN3파트너스는 기업들로부터 문제 해결 요청이 들어오면 한 달간은 말을 분석하는 데 매달린다고 한다. 단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앞뒤 문장, 뉘앙스까지 분석한다는 얘기다. 리트빈 박사는 “진짜 해결과제가 뭔지를 찾고 나서 그 다음에 솔루션을 찾는다”고 했다.

 그는 “일례로 R&D 3000개 중에 성공하는 것은 1개에 불과한 기업이 있다면, 그 성공률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라는 고민에 빠져 있을 것”이라며 “우리는 어떤 기술이 성공할 것인지를 알려주기보다 성공제품이 어떻게 개발됐는지를 역분석해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다”고 설명했다.

혁신도 창의적으로 해야 한다는 강조인 것이다.

 리트빈 박사는 “궁극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How to)에 대한 대답이 있어야 한다”며 “오픈 이노베이션을 하는 목적도 결국은 하우 투(How to)를 찾기 위한 작업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리트빈 박사는 러시아과학원(Russian Academy of Science)에서 기계공학 박사를 받았으며, 삼성전자 러시아에 근무한 경험으로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국제트리즈협회(International TRIZ Association)의 부회장으로 재직 중이며, 트리즈 마스터 인증위원회(TRIZ Master Certification Board) 의장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근무하는 러시아 오픈 이노베이션 관련 전문 인력이 다 함께 추앙하는 멘토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