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부서라고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혹시 ‘네고(negotiation)’를 떠올렸는가? 이러한 인식이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공급망관리(SCM) 역량을 저해하는 요소라는 지적이 있다.
한 글로벌 컨설팅 업체의 제조업 SCM 부문 대표는 글로벌 SCM 구축에서 한국 기업들의 아킬레스건이 바로 ‘소싱(Sourcing)’이라고 지목했다. 한국 기업들이 유독 구매 부서에 대해서만큼은 인식이 매우 취약하다는 것이다.
연구개발과 마케팅에는 핵심 인재를 투입해 ‘인재 경영’을 가속하는 기업들도 유독 구매 부서는 등한시한다. 마케팅과 연구개발에는 핵심 인재를 두고 임원들을 앞다퉈 전진 배치하면서 구매 부서에는 상대적으로 비핵심 인력을 배치하고 ‘가격을 깎는’ 부서로만 생각하는 것이 국내 기업들의 현주소다. 이런 의식이 글로벌 SCM 역량을 키우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 컨설턴트는 “최근 2년간 최고구매책임자(CPO) 워크숍을 개최했으나 글로벌 단위 사업을 하고 있는 많은 기업들이 아직 구매 담당 임원을 두지 않고 있어 적잖이 놀랐다”고 말했다.
실제 극소수 대기업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국내 기업들은 구매 부서의 최고 담당자가 부장급이다. 임원이 배치된다고 해도 다른 경영 임원들에 비해 회사 내 실질적인 영향력이 미약한 편이다. 몇 년 전부터 구매 역량 고도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변화를 시도해 온 기업들도 고정관념과 관습을 깨는 데 적잖은 시간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SCM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구매 부서의 역량을 높이고 구매를 기업 운영의 핵심가치 중 하나로 삼아야 한다. 아웃소싱이든 자체 소싱이든 자국 내에서 저렴한 부품과 소재를 구매하는 수준을 넘어 해외 어디든 거점으로 삼고 어떤 해외 업체도 파트너로 삼아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구매 역량을 갖춰야 한다.
국내 일부 대기업들은 최근 SCM 역량 강화를 위한 구매 고도화에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특히 SCM 역량에 관심이 높은 삼성전자, LG전자 등 제조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제조 대기업에서 SCM 컨설팅을 수행하고 있는 한 전문 컨설턴트는 “최근 SCM을 위한 기업들의 관심이 개발에서 구매로 무게중심을 옮겨갔다”며 “연구개발에 의한 제품 출시보다 많은 부품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조달하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제품의 종류를 막론하고 제조 대기업의 완성품을 들여다보면 부품 대부분을 협력사로부터 공급받는다. 기술 평준화와 빠른 제품 수명 주기, 그리고 선택과 집중 전략은 한 기업이 모든 부품을 자체 개발해 공급하는 것보다 협력사를 통해 양질의 부품을 적절한 원가로 신속히 조달받아 완성품을 출시하는 것이 더 경쟁력이 있다는 결론을 낳는다. 제품 경쟁력은 차별화된 공급망 역량에서 비롯된다는 인식에서 구매 업무에 우수 인력을 투입하고 구매 전문가를 양성하는 등 구매 역량 강화를 위한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
한 공급관계관리(SRM) 업계 관계자는 “최근 SRM을 도입하려는 기업들의 요구는 단순히 협력사를 평가하는 수준을 넘어 저렴한 원가에 좋은 제품을 공급하는 회사들을 전략적으로 육성해 파트너로 삼겠다는 것”이라며 “SCM을 강화하기 위해 전략적 구매 역량을 높여 원가절감까지 실현하는 것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구매 부서에 대한 인식 제고와 함께 구매를 위한 핵심 인재 양성을 통한 글로벌 SCM 역량 확보가 필요한 시점이다.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