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 수교 60주년 행사 참석차 10월 4일 방북한 원자바오 중국 총리를 맞이하기 위해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공항 영접에 나섰고, 평양시민 수십만명이 동원된 대대적인 환영을 했다. 이는 1970년 4월 김일성 주석이 저우언라이 총리를 직접 영접한 이례로 그런 사례가 거의 없었던 외교적 파격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배경은 지난 5월 북한의 핵 실험 이후 소원했던 양측 관계를 복원하고 미국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이후 북핵문제의 해결이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면서 향후 북중관계의 미래를 어떻게 정립시켜 나갈 것인지를 협의하고 조정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은 지난 8월 클린턴 방북 시 김정일과의 회담에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해법과 함께 북미관계의 정상화를 놓고 중요한 합의가 있었다는 인식하에 향후 북중관계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 끝에 북·중 수교 60주년 행사를 계기로 큰 선물보따리를 들고 원자바오와 김정일의 회담을 추진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북한이 처한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중국과 미국이 경쟁적 차원에서 북한에 개입의 여지를 만들려고 하는 측면이 존재해 중국으로서는 상황이 아주 극단적으로 흘러가지 않는 한 최종적으로 중국이 북한에 대한 지렛대를 유지·강화시키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신시켜준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은 석유·식량 등을 포함한 무상 대북 원조를 재개했고, 북한과 중국 양국 정부는 만수대의사당에서 ‘경제 원조에 관한 교환 문서’ 등 여러 종류의 협정과 합의문·의정서·양해문 등에 조인했다. 북한은 이에 호응하는 차원에서 중국의 관심사인 비핵화 문제와 6자회담 이슈에 대해 김영일 총리가 ‘비핵화 실현은 고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며 양자 및 다자 대화를 통해 비핵화 목표를 실현할 용의가 있다’고 언급함으로써 국제사회에 중국의 체면을 살려주는 모양새를 만들어낸 것이다.
원자바오 총리의 방북 일정 중 주목해야 할 하나가 한국전쟁 당시 참전한 중국군을 추모하는 인민지원군 열사릉원을 방문한 것이다. 평양에서 100㎞ 이상 떨어져 있고 교통도 안 좋은 곳에 원자바오 방북단과 북한 내에 있던 유학생 등이 대대적으로 참석했다. 이는 양국 관계의 역사적인 동맹·혈맹적인 전통적인 유대를 다시 한번 부각시킴으로써 향후 북핵문제 해결 과정에서 혹여 북한이 미국과 과도하게 가까워질 것에 대한 경계의 포석 차원에서 취한 행동으로 보인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북한의 연고권 등을 재확인하면서 대북한 영향력 확보를 향한 분명한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8월, 클린턴·김정일 회담의 내용은 북핵문제 해법 뿐만 아니라 향후 북한의 미래, 한반도의 미래와 관련해서 대단히 중요한 내용들이 포함돼 있었다. 이에 따라 북한문제, 한반도문제와 관련한 중대한 이해관계자인 중국이 10월 원자바오 방북으로 큰 포석을 두는 행동을 취한 것이다. 또 중국은 대북한 영향력 확보를 위한 경제적 교류와 협력 차원을 넘어서 역사적·정치적 영향력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 같은 중대한 변동에 대한 준비작업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 정부와 시민사회를 넘어서서 민족공동체 전체의 미래를 진정으로 걱정하고 미래를 준비해나가는 주체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된다.
구해우 미래재단 상임이사·북한학 박사/haewook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