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iPhone)’이 중국 시장에서 냉대를 받고 있다. 차이나유니콤이 지난 1일부터 10일까지 열흘 동안 계속된 황금 연휴에 아이폰 구매 예약을 받았지만 상하이 지역 주문은 1000여대에 그쳤다. 상하이는 새로운 것에 민감한 도시인데다 상주 인구만 1000만명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1000대는 차이나유니콤 관계자나 몇몇 마니아만 산 모양이다. 중국 전체로도 1만개가 예약됐다고 전해졌는데, 중국 내 휴대폰 사용자가 7억명인 것을 생각하면 가히 처참한 상황이다. 중국 소비자가 손꼽아 기다렸던 아이폰이 어찌하여 이런 처참한 대우를 받는 것일까.
◇‘와이파이’ 기능 빠져 실망= 중국 누리꾼은 아이폰의 근거리 무선통신(Wi-Fi) 기능이 빠져 크게 실망했다. 이를 폄하하는 수식어가 ‘아이폰’ 앞에 붙기 시작했을 정도다.
그동안 중국의 아이폰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하드웨어적으로 ‘와이파이’가 설치돼 있으며, 단지 소프트웨어로 막은 것이기 때문에 “사용이 가능하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러나 지난 14일 시나IT의 아이폰 차이나유니콤 버전 분석에서 하드웨어적으로도 와이파이 모듈이 장착되지 않은 게 드러났다. 이후 중국 누리꾼은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다”며 아이폰에 낯부끄러운 수식어를 가져다 붙였다.
가장 매력적인데다 기존 이동통신사를 위협하는 와이파이가 설치되지 않은 탓에 중국 소비자는 아이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할 때 차이나유니콤을 통할 수밖에 없게 됐다. 차이나유니콤의 무선 인터넷 서비스 가운데 가장 싼 2만원짜리 묶음상품으로 월 데이터량 300MB를 쓰는 데 만족해야 하는 것이다. 3세대(3G) 이동통신이 구현하는 데이터 전송 속도라면, 300MB는 하루면 쉽게 쓸 수 있는 양에 불과하다.
또 아이폰의 또 다른 매력인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을 때 오직 ‘아이튠스’를 통해야 하는 불편함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아이폰으로 누릴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을 상실한 상태다.
◇‘억!’ 소리 나는 차이나유니콤의 가격 정책=가격이 너무 비싼 것도 걸림돌이다. ‘아이폰 3GS’를 2년 약정으로 살 때 우리 돈으로 120만원을 내야 한다. 또 매월 기본 통화료 2만5000원을 지급해야 하고, 휴대폰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요금정책 등이 없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초기 구입비 140만원과 매월 최저 6만원을 낸다고 한다. 일본은 120만원에 매월 최저 5만원, 미국은 32만원에 매월 10만원을 각각 낸다. 홍콩은 초기 구입비 80만원에 매월 2만4000원 정도면 된다.
단지 가격만 놓고 본다면 중국의 아이폰은 홍콩보다 조금 비싸고, 다른 나라들보다 싸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절대적인 비용만을 계산을 결과일 뿐이다. 각국 국민의 소득 상황 등을 비교·검토한 게 아니다.
특히 중국 국민의 평균 소득이 가장 낮은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 시장에서 아이폰 구입비 32만원은 현지 소비자에게 그다지 큰 부담이 아니지만, 중국 시장의 120만원은 소득 수준에 비춰 매우 비싸다. 그래서 ‘귀족폰’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홍콩판 ‘아이폰’과 차이나유니콤의 딜레마=중국에서는 차이나유니콤 판(버전)이 아닌 홍콩판 아이폰을 상대적으로 더 싸게 구할 수 있다. 이 제품으로 차이나유니콤은 물론이고 다른 통신사 서비스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현재 홍콩판 아이폰 3GS 16Gb는 4800위안(약 96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자유롭게 이동통신사를 선택할 수 있는데다 와이파이 기능까지 갖췄다.
홍콩판 아이폰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사후관리서비스(AS)를 받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단점도 중국 정보기술(IT) 시장 음지에 있는 수많은 아이폰 수리점을 이용하면 해결할 수 있다.
차이나유니콤의 아이폰은 아직 시중에 나오지 않았다. 11월 이후에나 시장에서 제대로 된 승부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 상황으로는 차이나유니콤 아이폰이 말라 죽는 모습이다.
차이나유니콤도 이런 시장 분위기를 인식하고, 아이폰 판매 정책을 급선회했다. 지난 13일 홍콩 판 아이폰에서도 자사 3세대 이동통신 상품인 ‘WO’를 쓸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또 차이나유니콤의 정액 요금제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자사가 판매하는 아이폰을 살 수 있게 했다.
그러나 발등의 불을 끄려는 차이나유니콤의 이러한 노력은 많은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향이다. 홍콩판과 같은 기종(아이폰 3GS 16Gb)을 5880위안(약 115만원)에 내놓은 바람에 판매량을 끌어올리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홍콩판과 가격 차이가 40만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차이나유니콤의 이런 선택은 ‘중국 내 아이폰 독점 판매권’을 포기하는 행동이다. 그만큼 급했던 모양이다. 독점 판매권을 포기하되 3세대 이동통신 보급에 힘을 쏟으려는 뜻으로도 보인다.
지금도 차이나유니콤 영업점에서 산 3세대 이동통신용 번호를 홍콩 판 아이폰에 심어 쓸 수 있다. 큰 문제없이 차이나유니콤의 3세대 이동통신망에 접속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정확한 데이터 요금 부과기준이 나오지 않아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차이나유니콤 아이폰에 대한 일련의 상황은 한국에서도 관심 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겠다. 최근 KT가 등록했다는 스마트폰 요금제가 아이폰에 그대로 적용된다면, 상당히 비싼 요금을 부과하게 될 것이다. 이는 일반 사용자가 아이폰을 기피하는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다. 현재까지 “실패했다”고 여겨지는 중국 시장에서의 아이폰 판매 정책이 한국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주목된다.
베이징(중국)=김바로(베이징대학 역사학과) ddokbar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