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2만개사’ 그리고 ‘벤처 1000억클럽 200개사.’
2009년 한국 벤처 역사에 길이 남을 두 가지 큰 획이다.
벤처 1000억클럽 200개사 돌파는 이미 이뤄냈다. 벤처 2만개사는 이르면 11월, 늦어도 12월 돌파가 예상된다. 9월 말 현재 1만9095개사로 최근 3개월 동안 적게는 한 달에 318개사에서 많게는 536개사가 증가했다.
이렇게 벤처가 다시 주목받고 있는 올해는 과거 IMF 외환위기 시대와 비슷한 상황이다. 미국 금융위기발 경기 침체가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벤처는 오히려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심각한 경기 침체가 한국 벤처를 흔들어 깨웠다고 말한다.
위기를 기회로 삼겠다며 다시 도약의 ‘기틀’을 닦고 있다. 상황도 지난 ‘벤처붐’ 당시와 유사하다.
1990년대 말 인터넷·통신을 중심으로 IT산업이 크게 성장했다. 큰 자본 없이 아이디어와 기술로 시장에 반향을 일으키는 업체들이 대거 등장했다.
10년 후인 지금도 IT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컨버전스(융합)’ 여파다. ‘녹색(그린) 열기’에서 알 수 있듯이 IT는 융합 트렌드의 중심이다. 이 영향으로 IT산업이 다시 도약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을 찾은 크리스토퍼 마인스 포레스터리서치 수석부사장은 “IT 경기는 주기가 있는데 2001년부터 올해까지는 성장 둔화기였지만 올해 또는 내년부터 다시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며 “앞으로 6∼8년 고성장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IT는 굴뚝산업을 포함한 비IT산업과 융합하면서 서로 시너지를 내며 성장한다. 이미 사례는 여럿 확인됐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 산업 각 분야에 속속 실현되고 있다. 자동차·의료·조선 등 오히려 IT 없이 진화하는 산업이 없을 정도다.
앞으로 IT 융합 시장 전망은 더욱 밝다. 지난해 기준 1102조원이었던 전 세계 IT 융합산업 시장은 10년 후인 2018년 두 배 이상인 2519조원에 이를 것이란 예상이다. 부가가치 규모도 지난해 43조1000억원에서 2018년 157조6000억원으로 무려 4배가량 급성장이 기대된다.
IT 융합시대 벤처의 역할은 중요하다. 아이디어와 기술 개발은 벤처의 몫이다. 몸통이 커버린 대기업은 순발력이 떨어진다. 아이디어가 있어도 상용화에는 한참의 시간이 소요된다. 외국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릴 개연성이 충분하다. 기술로 똘똘 뭉친 벤처기업이 그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
과거 벤처 거품기 때 우리 민·관은 좋은 경험을 했다. 튀는 아이디어로 ‘대박’의 꿈을 실현한 곳도 있고 또 가슴 아픈 실패의 슬픔도 겪었다. 이 경험은 분명 새롭게 다가올 기회에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여기에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IT인프라를 갖췄다. 우리 IT산업이 최근 심각한 성장통을 겪고 있는 이유로 이 인프라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막대한 자금도 우리 벤처에는 큰 힘이다. 현재 벤처캐털업계는 새로운 벤처 르네상스 시대의 중요한 조력자가 되겠다는 자세다. 경기 침체를 우려한 정부가 모태펀드를 통해 막대한 펀드 결성을 지원했고 그 여파 벤처캐피털업계는 상당한 투자 여력을 보유하고 있다. 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9월 말 현재 벤처캐피털업계가 보유한 펀드 총액은 2조6894억원에 이른다. 수년내 가장 많은 규모다.
정부 정책자금도 마찬가지다. 기술성과 사업성 등 미래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지원을 늘리겠다는 입장이다. 이는 지원자금의 선정기준을 보면 알 수 있다. 정부 지원기관인 기술보증기금은 이미 일반보증을 중단했으며 중소기업 정책자금을 집행하는 중소기업진흥공단도 재무 평가 비중을 대폭 축소했다.
2009년 한국 벤처는 기회의 시대를 보내고 있다. 우리가 보유한 능력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기술 개발과 시장 개척에 나선다면 수년 후 우리는 제2의 IT 성장기를 성공적으로 활용한 국가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당당히 우리 ‘벤처’가 위치할 것이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