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이 건강해졌다. 2000년 버블기를 거치면서 정부와 벤처캐피털 등 민간이 평가시스템을 대대적으로 바꾼 결과 재무건전성이 크게 개선됐다. ‘묻지마 투자’가 극성을 부릴 때 벤처에 씌워진 ‘아이디어뿐인 부실 벤처’라는 멍에를 벗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는 벤처 본연의 특징인 ‘고위험 고수익(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과 반하는 것으로, 튀는 아이디어 벤처가 설자리를 잃고 있다는 방증으로도 해석됐다.
26일 관련 정부당국 및 업계에 따르면 9월 말 현재 벤처기업과 일반(비벤처) 중소기업의 보증사고율(기술보증기금)은 각각 1.8%와 9.0%로 벤처기업이 크게 낮았다. 보증사고란 기업이 정부기관 보증으로 은행 대출을 이용한 후 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다. 벤처가 일반기업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은 채무불이행률이 그만큼 낮으며 재무건전성이 좋아졌음을 의미한다.
벤처 대(對) 일반기업 보증사고율은 조사에 착수한 2004년 이후부터 매년 폭이 크게 확대됐다. 2004년 벤처 보증사고율은 9.1%로 일반기업(10.7%)과 유사했지만, 2006년(벤처 3.3%, 일반 8.3%) 이후 차이를 크게 벌렸다. 지난해는 벤처와 일반기업 사고율이 각각 3.1%와 9.9%였다.
정부는 벤처 사고율이 크게 낮아진 배경으로 지난 2006년 벤처 확인제도 개편과 동시에 평가기관의 책임을 확대한 것이 부실 벤처기업을 억제하는 데 크게 기여했기 때문으로 평가했다. 아이디어와 기술뿐만 아니라 기술 사업성을 민간 책임하에 검증한 것이 통했다는 설명이다.
백운만 중기청 벤처정책과장은 “과거에 기술성 위주 심사였다면 지금은 민간을 통해 사업성을 함께 보도록 하고 있다”며 “이것이 사고율 하락에 유효하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했다.
재무 건전성 개선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동시에 과거 벤처 붐 때와 같은 참신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갖춘 벤처 등장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엇갈린 분석을 낳았다. 사업성과 안정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참신한 아이디어나 기술이 설 자리를 잃고 벤처 생태계 전반이 활력을 잃었다는 지적이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보증사고가 줄었다는 것은 그만큼 우량벤처가 늘었지만 한편으로는 신기술이나 이노베이션 여건이 나빠진 것”이라며 “벤처가 안전 투자 위주로 간 것으로 보이는 만큼, 벤처 본연의 기능을 살리는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벤처기업협회 부설 벤처기업연구원 조사 결과, 교수와 연구원 창업 벤처기업 비중은 2004년 39.5%를 정점으로 매년 크게 감소해 지난해 10.1%까지 낮아졌다.
이민화 기업호민관은 “벤처기업의 정의가 벤처캐피털이 투자하거나 기보가 보증한 성장한 기업으로 바뀌었다. 사회적으로도 실패를 두려워하는데 혁신은 실패 없이 불가능하다”며 과감히 도전하는 기업이 인정받을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을 강조했다.
백운만 중기청 과장은 “벤처기업 사고율이 낮아지자 정부가 검증된 기업만 벤처로 지원한다는 지적도 있다”며 “앞으로는 민간시스템에서 지원이 안 되는 기술기업을 지원하는 방안을 찾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
<표>기보 보증사고율 추이(단위:%)
구분 ‘04년 ‘05년 ‘06년 ‘07년 ‘08년 ‘09.9월
벤처 9.1 7.3 3.3 2.6 3.1 1.8
일반(비벤처) 10.7 11.5 8.3 8.3 9.9 9.0
전체 10.3 10.3 6.1 5.4 6.1 4.5
※자료:중기청
<표>교수·연구원 벤처창업 현황(단위:개사, %)
구분 ’04 ’05 ’06 ’07 ’08
벤처기업 7,967 9,732 12,218 14,015 15,401
교수·연구원 창업 3,144 2,290 2,022 1,738 1,555
비중 39.5 23.5 16.6 12.4 10.1
`저위험 고수익`실현 재무건전성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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