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뇌는 좌뇌와 우뇌로 구성돼 있다. 좌뇌는 수리적인 능력과 논리적인 능력을 관장하고, 우뇌는 미적능력 즉 창의력과 관련된 기능을 맡는다. 양쪽 뇌의 종합적인 활동으로 인간 활동이 나타난다. 최근 뇌연구가 진전되면서 양쪽 뇌의 균형적인 발달이 중요함을 알게됐다.
좌뇌와 우뇌의 균형 발달, 즉 논리적인 능력과 창의적인 능력의 고른 발달은 학문분야에도 요구된다. 과학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예술적인 상상력이 필요하고, 예술에 과학기술이 접목돼 새로운 예술을 창조할 수 있어서다. 이러한 경향이 반영된 것이 융합연구다. 하나의 학문에 얽매이지 않는 폭넓은 사고와 연구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융합이 주목받고 있고, 이러한 융합적 사고를 하는 ‘융합형 인간’이 시대를 선도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융합형 인간을 우리는 호모컨버전스라고 부른다.
전자신문은 한국창의재단과 공동으로 ‘호모컨버전스-융합형 인간이 뜬다’ 특별기획 시리즈를 마련했다. 과학기술과 인문사회, 문화예술 등 다양한 학문간 융합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국내외 연구현장을 찾아 연구목적과 내용을 파악·분석·보도함으로써 새로운 학문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는 융합 분야를 소개하려한다. 특히 융합을 통해 기존과는 전혀 새로운 창의적인 연구성과를 내고 있는 사례를 집중 소개함으로써 창의·영재성 확보를 위한 융합연구의 의미를 보여주고자 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출발한 학문은 르네상스를 거쳐 인문학과 자연과학 등으로 분화되면서 발전해왔다. 이후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면서 점점 더 전문화·세분화된 학문은 눈부신 발전을 이뤄냈다. 하지만 각 학문의 빠른 발전속도는 20세기 말과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점차 둔화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나눠진 학문간 장벽이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벽을 뛰어넘기 위해 학자들은 새로운 연구 방법을 시도했다. 다른 분야의 학문과 함께 연구를 하기 시작한 것. 한가지 학문의 깊이와 함께 넓이도 함께 확대된다면 더 좋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것을 알게됐기 때문이다. 인문학과 과학이 융합하고, 과학과 예술이 합치는 것이 그 예다. 융합연구는 기존 학문과 다른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았고, 이는 신기술·신학문으로 발전했다. 과학, 기술, 문화, 인문, 사회, 예술이 어우러진 융합연구는 21세기 신르네상스를 이끌 핵심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이제 2개 이상의 학문이 함께 연구하는 융합연구는 새로운 학문 연구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융합을 가로막는 한국의 교육현실=일본의 교육시스템에서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는 고등학교에서부터 문과와 이과로 구분해서 학생들을 교육시킨다. 이로 인해 문과생에게는 인문학적인 소양만을, 이과생에게는 자연과학과 공학적인 소양만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고착화됐다. 최고 지성들이 모이는 대학도 마찬가지다. 단과대와 학과로 나누고, 각자의 연구만을 추구한다. 세분화된 학문은 다시 영역구분을 하고, 또 다시 자르는 과정을 거쳐 그 원형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이로 인해 국내에서는 학문간 융합보다는 구분짓기가 더 익숙하고, 서로 다른 분야 연구자들이 모여 함께 연구하기 보다는 벽을 쌓고 단절시키는 것이 일상화됐다.
그러나 세계는 다학제간 연구, 통섭 등으로 일컬어지는 융합연구 흐름이 강하게 일고 있다. 한 분야만의 사고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다양한 분야의 학문간 소통을 통해 창의적으로 극복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국내에서도 몇 년 전부터 융합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학문에 배타적인 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융합연구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본격적인 확산 분위기를 이끌어야 한다.
정윤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은 “융합과 소통은 변화의 트렌드이고 미래의 방향이며, 서로 다른 영역간의 교류와 만남은 창의성의 원천”이라며 “글로벌 이슈 이해나 미래사회변화 예측조사는 한 분야만의 전문지식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과학, 인문사회, 문화예술 간의 협업과 융합·통섭적 관점을 필요로 한다”고 강조한다.
◇빠르게 변하는 선진국=융합기술이라는 말이 세계적으로 확대된 계기는 지난 2002년 미국 정부가 발표한 보고서였다. 미국 국가과학재단(NSF)과 상무부는 2002년 ‘인간 능력의 향상을 위한 기술융합(Converging Technologies for Improving Human Performance)’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하고, 나노기술(NT), 바이오기술(BT), 정보통신기술(IT), 인지과학(CS)이 결합되는 것을 융합기술이라 정의했다. 그리고 이 융합기술로 인해 2020년을 전후로 해 인류가 한단계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그 이전인 20세기 초부터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들은 이미 융합연구를 활발하게 수행해오고 있었다. 굳이 융합 또는 다학제간 연구라는 거창한 이름을 내걸지 않았을 뿐,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모여 공동으로 연구하는 풍토가 갖춰져 융합연구가 진행돼 오고 있다.
기획취재팀=권상희 팀장, 김유경기자, 권건호기자, 허정윤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