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웹브라우저만 띄워놓으면 그림이든 동영상이든 음악이든 자유자재로 붙여놓을 수 있는 시대지만 불과 십수년 전만 하더라도 그림 한 장 띄우는 것이 엄청난 일이던 때가 있었다. 전화선을 이용해 통신을 하던 그때, 웹이 아닌 PC통신이 주였던 그 시절 통신 에뮬레이터 화면에 글씨 외에 이미지가 글 속에 첨부돼 나오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지금 보면 정말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글을 볼 때 그림이나 사진이 같이 나올 수 있다는 것에 감동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록 새록하다. 재미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기능이 새로 등장하던 시기에 소설과 영상을 결부한 새로운 형식의 극이 시도된 적이 있었다는 점이다. 만화 ‘남벌’의 원작자이자 최근에는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의 원작자로서 분야를 넘나들고 있는 야설록씨가 이 당시 ‘사이버 드라마’라는 이름을 걸고 소설과 그 내용에 맞는 장면에 배우를 기용해 영상으로 촬영, 극 진행에 맞춰 보여주었던 ‘아벌(我伐-나를 벌한다)’이 바로 그 작품이다. 당시 PC통신 회사로 지금의 네이버나 다음에 비견할 수 있을 만했던 천리안 이용자 중에서 여배우를 뽑는 파격을 선보이기도 했다.
비록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내놓지는 못했지만 만화를 작업하기도 한 작가답게 텍스트를 영상과 어떻게 결부시키는 것이 좋은지를 잘 꿰뚫어보았던 사례라 할 수 있을 듯하다. 시간이 지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림은 물론이고 동영상이나 음악 정도 첨부하는 것이 대단할 게 하나 없는 시대가 됐지만, 여전히 창작물의 장르를 넘나드는 시도는 시선을 끌게 마련이다.
최근 웹툰에서 주목할 만한 장르 교배가 눈에 띈다. 얼마 전 ‘이끼’의 연재를 성황리에 마친 윤태호 작가가 ‘외계지적생명체탐사계획’을 뜻하는 ‘세티(SETI)’라는 작품을 미디어 다음 만화속세상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독특하게 각 화 마지막 장면마다 HD 규격으로 촬영된 영상이 만화와 연결되는 이야기의 남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인기 그룹 SS501의 김규종과 ‘그들이 사는 세상’의 배우 서효림이 출연한 이 영상은 재미있게도 카메라 제조사 캐논의 협찬을 받아 캐논의 신기종 DSLR의 동영상 촬영기능을 이용해 제작됐다. 영상뿐 아니라 같은 기종을 이용한 사진도 작품 속에 등장하며, 이는 곧 기기의 성능을 보여주는 광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웹툰 드라마’라는 명칭을 붙인 이러한 형식이 극의 전달에 어떤 동반상승 효과(시너지)를 줄 것인지, 또 만화와 마케팅의 조합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또 다른 사례로는 얼마 전 한 편의 연쇄점 전용 우유로 등장해 화제를 모았던 지강민씨의 ‘와라! 편의점(the Animation)’을 들 수 있다. 팬시한 그림과 에피소드가 딱딱 나뉘는 전개, 편의점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한데 어울려 잔재미를 주는 ‘와라! 편의점’은 10월 22일자로 웹을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 제작 소식을 알렸다.
‘세티’가 웹툰 드라마라면 ‘와라! 편의점’은 스스로를 웹투니메이션으로 정의한다. 그동안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은 자주 등장했고 웹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애니메이션 종류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만화를 내놓고 있는 포털 사이트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보여주고 있는 네이버 웹툰에서 자사 연재물을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을 직접 시리즈로 ‘방영’하겠다고 나선 점은 그 자체로 신선하다고 할 수 있겠다.
‘세티’와 ‘와라! 편의점’의 사례같이 다양한 장르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갈수록 정체돼 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우리네 웹툰계에 많은 점을 시사한다. 어떤 방향이든 이들 작품이 좋은 결과를 끌어내 또 다른 시도가 이어질 수 있어야 하겠다.
서찬휘 만화 칼럼니스트 seochnh@manhwa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