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을 중심으로 해외 사업이 빠르게 확장되고, 인수합병(M&A)를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글로벌 IT지원체계가 주요 대기업의 새로운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IT지원체계를 잘 구현하기 위해서는 전세계 곳곳에 거미줄처럼 뻗어있는 비즈니스 체계를 제대로 지원할 수 있는 IT인프라와 서비스가 갖춰져야 한다. 이와 관련해 지금까지 많은 기업들이 전세계에 산재한 정보시스템 인프라를 통합하는 데 초점을 맞춰 관련 프로젝트를 주로 진행해 왔다면, 최근에는 정보시스템을 배치하는 물리적 공간, 즉 데이터센터를 어떻게 통합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기업들이 진출하는 해외 지역마다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경우 비용도 문제지만 제각각으로 흩어져 있는 정보시스템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데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주요 대기업의 최고정보책임자(CIO)를 중심으로 글로벌 통합 데이터센터에 대한 검토 작업이 서서히 일고 있다. 실제 한 조사에서 글로벌 IT임원의 50%가 데이터센터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비즈니스가 지속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데이터센터에 대한 CIO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딜로이트컨설팅 등 글로벌 컨설팅 업체들은 ‘글로벌 싱글 데이터센터’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진출한 나라별로 정보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따라서 한 나라에, 또는 적어도 몇개 권역으로 묶어 통합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국내에서는 삼성, LG그룹이 글로벌 전사적자원관리(ERP) 통합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해외 데이터센터 통합을 추진하고 있거나 고민 중이다. 현재 이들 그룹은 ERP시스템에 대해서는 통합 데이터센터를 국내에 구축했거나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그외 업무시스템에 대해서는 어느 지역에 거점 통합 데이터센터를 구축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스러운 상황이다.
◇삼성·LG그룹, 싱글 데이터센터 고민=아직까지 국내 기업 중 해외에 데이터센터를 두고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 현재로서는 삼성, LG그룹, 현대기아차그룹 정도가 글로벌싱글데이터센터를 고민하고 있는 정도다. 또 이들 그룹도 전체 정보시스템에 대한 통합이 아닌 글로벌 ERP 시스템에 한해서만 한 곳으로 묶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이는 모든 업무시스템을 한 곳으로 통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삼성그룹의 데이터센터 중 트랜젝션의 90%는 삼성전자가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삼성전자의 정보시스템이 데이터센터 내에서 차지하는 양도 많다. 이중 글로벌 ERP시스템이 전체 트랜젝션 중 30% 수준에 달한다. 적지 않은 정보시스템 규모다. 따라서 과거 삼성전자가 진출한 해외 사업장에는 별도로 ERP시스템을 보유하기 위한 전산실을 갖추고 있었다. 이렇게 생겨난 전산실이 100여개가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삼성전자는 글로벌 ERP 통합작업을 진행하면서 각국에 분산돼 있는 ERP시스템들을 모두 수원 데이터센터로 통합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오는 12월 글로벌 ERP 통합 프로젝트가 모두 마무리되면 내년 중으로는 ERP시스템에 대한 데이터센터 통합도 마무리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다른 업무시스템들은 4개 권역으로 나눠 권역별로 데이터센터를 통합했다. 현재 삼성SDS가 운영하고 있는 삼성그룹의 해외 데이터센터는 미국 뉴저지, 영국 런던, 중국 북경, 싱가포르 등 4곳에 있다. 이들 데이터센터에도 대부분이 삼성전자의 업무시스템들이 입주돼 있다.
LG그룹의 경우도 LG전자의 정보시스템이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LG전자도 글로벌 ERP 통합 작업을 진행하면서 해외 ERP시스템을 서울 상암동 데이터센터에 모두 통합했다. 이로 인해 과거 해외의 현지 정보시스템을 운영하던 조직인 리전널인포메이션센터(Regional Information Center)는 현재 일부 정보시스템에 대한 유지보수 업무만 담당하고 있다. 반면 LG전자의 일부 업무시스템과 다른 LG그룹 계열사들의 해외 정보시스템들은 미국 뉴저지, 중국 북경, 네덜란드 등에 위치한 LG그룹 해외 데이터센터에 입주해 있다. 이 데이터센터들은 LG그룹 IT계열사인 LG CNS가 운영 중이다.
이외에 현대기아차그룹도 현재 해외사업장에 적용 중인 ERP시스템을 통합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만큼 이 프로젝트가 완료되는 내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데이터센터 통합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될 것으로 업계에서는 예상하고 있다. 이밖에 두산그룹도 데이터센터 통합을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두산그룹은 두산인프라코어가 해외의 대형 기업을 인수해 생겨난 해외 데이터센터이기 때문에 삼성, LG 등과 접근 방식은 다르다.
최근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 2007년 인수한 미국의 두산인프라코어인터내셔널(옛 밥캣)과 ERP 등 IT시스템에 대한 통합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컨설팅에 착수했다. 이 결과에 따라 향후 데이터센터 통합에 대한 밑그림이 마련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SK그룹이 경우 아직 해외 데이터센터를 보유하고 있지는 않다.
◇은행권, 중국 등 데이터센터 보유=은행들의 해외사업 진출도 활발하다. 중국 등 일부 지역에 대해서는 단순한 지점 개설이 아닌 현지법인 설립을 통한 소매금융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따라서 과거 통합국외점포시스템 구축을 통해 해외 지점들의 업무를 지원하는 수준에서 최근에는 현지에 자체 시스템을 설립하는 방식으로 IT지원체계가 바뀌고 있다. 이는 적극적인 시장공략을 위해서 이기도 하지만 많은 국가가 현지법인 승인 기준으로 자체 정보시스템을 보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규모 데이터센터는 아니더라도 국가별로 일정 규모의 전산실을 운영하고 있다.
자체 정보시스템 구축이 가장 활발한 곳은 중국이다. 이미 우리, 하나, 외환, 신한, 기업은행이 중국 내 현지법인 설립을 위해 정보시스템을 현지에 구축한 상태다. 이들 은행들이 구축한 정보시스템은 계정계시스템, 정보계시스템, 리스크관리시스템, 인터넷뱅킹시스템 등이다. 국내에 전산센터에 보유하고 있는 정보시스템 환경과 거의 동일하게 구축돼 있다.
아직 본격적으로 해외에 진출한 은행은 많지 않지만 미국이나 유럽도 현지법인 설립을 통한 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자체적으로 정보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신한은행 등 일부 은행은 규모가 작다 하더라도 자체 정보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상황이다. 향후 은행들의 해외진출이 보다 활발하지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해외 현지법인에 대한 데이터센터 통합을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금융권의 경우 제조업과 달리 해당 국가의 감독규정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쉽게 데이터센터를 통합하거나 움직이지는 못한다. 과거 한미은행을 인수해 국내 현지법인으로 전환한 한국씨티은행이나 현지법인으로 업무를 하고 있는 알리안츠생명 등이 데이터센터를 해외로 이전하기 위해 추진했으나 모두 국내 감독당국의 제재로 백지화 된 바 있다.
이로 인해 국내 은행들은 향후 영업 비중이 큰 국가를 중심으로 거점을 마련해 통합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주변 국가의 법인들을 지원하는 체계를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신한은행이 가장 앞서 추진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최근 13개 해외 현지법인 중 중국, 미국, 일본, 베트남 등 4개 해외현지법인의 정보시스템을 전면 재구축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이를 통해 거점별 데이터센터 구축도 마련할 예정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 있는 데이터센터에는 주변 국가인 캐나다 등의 현지법인의 정보시스템도 입주하게 되는 것이다. 신한은행은 앞서 은행권 최초로 글로벌IT전략, 글로벌 IT모델, 글로벌IT구현 로드맵 등을 수립했다.
◇통합데이터센터 체계적으로 이뤄져야=딜로이트는 싱글 데이터 센터가 이상적 구조가 아닌 현실적 구조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싱글데이터센터는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가. 현재 삼성, LG그룹의 경우 ERP시스템 통합데이터센터로 국내를 염두에 두고 있다. 그렇지만 많은 업무시스템을 모두 단 하나의 데이터센터로 통합하기에는 해외 각국의 컴플라이언스를 준수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쉽지 않다. 그렇다면 다른 몇개 국가에도 불가피하게 데이터센터를 구축해야 한다. 권역별 해외 데이터센터 설립이 이뤄지게 되는 배경이다.
딜로이트는 해외 거점 데이터센터 입지 선정에 있어 반드시 3가지 핵심적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우선 첫번째는 비용측면이다. 거점 데이터센터는 비용상 가장 유리한 곳에 입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데이터센터의 비용을 결정짓는 요소는 전력, 토지, 네트워크 비용이다. 데이터센터 가동을 위해서는 24시간 365일 전력공급이 필수적이다. 엄청난 열기를 내뿜는 데이터센터의 적정 온도 유지를 위해서도 전력기반의 냉각이 이뤄져야 한다. 많은 CIO들은 현재 이러한 비용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또 데이터센터는 대규모 부지를 필요로 하는 만큼 토지 비용도 적지 않다. 대규모 트래픽을 관리하는데 필요한 네트워크 비용도 고려 사항이다.
두번째 고려 사항은 인력에 대한 부분이다. 데이터센터가 구축되게 되면 시스템 운영을 위해 많은 인력이 필요하게 된다. 이는 단순히 비용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인력에 대한 자질 상의 문제도 있다. 거점 데이터센터의 정보시스템은 해당 지역의 업무를 원활하게 지원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정보시스템에 장애가 일어나거나 시스템 운영상에 문제가 있을 경우 막대한 피해를 일으킬 수도 있다. 이로 인해 최근에는 해당 국가의 인력에 대한 검증을 강화하고 있는 추세다. 세번째는 자연재해 및 정치적 안정성 등 혹시 모를 위험에 대한 고려도 이뤄져야 한다.
부지가 결정되면 통합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안효성 딜로이트 상무는 “CIO들은 기존 데이터센터의 통합, 산업규제, 환경위험, 관련 기술의 발전 등 통합 데이터센터를 둘러 싼 많은 요인들을 효과적으로 수용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데이터센터 설계 및 구축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안 상무는 “체계적으로 통합 데이터센터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구조를 모듈화 해야 한다”면서 “주요 4개 모듈을 중심으로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4개의 모듈은 조직, 설비, 기술, 운영이다. 각각의 모듈은 또 다양한 하위 모듈로 구성된다. 이러한 모듈 구성은 단기간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3∼5년 정도에 걸쳐 체계적 계획과 구축이 뒷받침 돼야 한다. 실제 삼성그룹의 데이터센터는 종량제 기반으로 통합 운영되고 있는데 수년간의 준비와 IT운영 조직의 대대적 개편을 통해 현재의 서비스 체계를 만든 것이다.
◆글로벌 싱글 데이터센터=전 세계 산재돼 있는 각종 데이터센터와 IT 인프라스트럭처를 통합하여 단일한 데이터센터로 재구축하는 것이다. 유무선 네트워크 기술 및 클라우드 컴퓨팅과 같은 호스팅 서비스 기술이 발전하면서 각 지역 거점 데이터센터를 원격의 단일 데이터센터로 통합해도 IT 서비스가 전 세계 각 지역의 이해 관계자에게 차질없이 제공될 수 있게 되면서 가능해졌다.
박현선기자 hspark@etnews.co.kr
신혜권기자 hk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