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무부처가 의욕이 없는데, 어떻게 예산을 늘려 줄 수 있습니까.”
내년 사상 최저치를 기록해 논란이 한창인 중소기업 정보화 지원사업 예산에 대해 기획재정부 관계자들은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내년 예산 수립과정에서 재정부보다 중소기업청이 더 앞장서 예산을 깎았기 때문이다.
실상은 이렇다. 재정부는 내년 예산 심의를 앞두고 중기청에 내년도 중소기업 정보화 지원사업 예산 한도액(실링)을 165억원으로 통보했다.
하지만 중기청은 오히려 이보다 19억원이나 깎아 146억원을 내년 예산으로 편성해 신청했다. 재정부는 이에 대해 주무부처가 삭감한 예산을 더 늘려줄 수 없다며 1차 심의에서 130억원으로 더 깎아버렸다. 중기청은 그제야 부랴부랴 예산 증액에 비상이 걸렸지만, 최종적으로 확보한 것은 163억원으로 당초 재정부 실링보다 2억원 적은 액수였다.
중기 정보화가 역주행하는 것은 이처럼 중기청이 자초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주무부처가 앞장 서 새로운 정책을 개발하고, 예산을 확보해야 할 판국에 팔짱을 끼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중기청은 정보화보다는 연구·개발(R&D) 사업만 노골적으로 ‘짝사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내년 중기 정보화 지원 사업 예산이 6.4% 삭감돼 사상 최저치를 기록한 반면에 중기청 내년 R&D 예산안은 올해보다 무려 688억원이나 늘어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정보화 사업 전담조직 급선무=중기청의 이같은 무관심은 정보화 지원사업을 전담한 경영공정혁신과가 올해 5월 사라졌기 때문이다. 조직이 없어지면서 중기청 내부의 관심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한때 경영지원국 산하에 ‘정보화지원과’라는 조직을 갖추고 있을 때와는 정책 개발이나 예산확보에서 천양지차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중기청내 중기 정보화를 전담할 조직을 새로 만들지 않는 이상 우리나라 중기 정보화는 갈수록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차석근 생산정보화협의회장은 “중기 정보화 사업은 IT를 활용한 중소기업 지원정책으로는 유일하면서도 도입 이후 매출이 30% 급증하는 등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사업”이라며 “정부가 이를 뒷받침할 전담조직을 하루 빨리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원 법체계 마련도 과제=중기 정보화 지원사업으로 중소기업의 매출확대와 비용절감 효과가 매우 크다는 성과가 나왔다.
하지만 전담조직이 없어지고 예산이 매년 감소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이 사업을 지원할 관련법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높다. 근거 법조항이 미비하다 보니 조직도 없어지고, 정책·예산도 사라지는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 중기 정보화 지원사업은 중소기업기술혁신촉진법에 단 하나의 조항으로 ‘중소기업 정보화의 기반조성과 정보기술의 보급·확산에 관한 지원사업을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을 뿐이다. 구체적인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했으나 관련 대통령령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업계와 학계에서는 중기 정보화 지원사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중소기업정보화혁신촉진법(가칭)’을 제정해야 한다는 제안도 쏟아지고 있다. 산업기술혁신법을 기반으로 중소기업기술혁신 계획을 5년단위로 수립하고, 올해 제정된 국가정보화기본법에 따라 국가정보화추진계획이 수립되듯이 장기적인 안목으로 중기 정보화를 지원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공격적인 신규 정책 발굴 필요=중기청의 중기 정보화 지원사업이 성과도 많이 남겼지만, 반성해야 할 점도 적지 않다. 특히 정보시스템 구축 중심의 일률적 지원정책은 너무 양적인 확대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평가다. 정보기술(IT)과 제조업의 융합 등 IT인프라 활용이 크게 부각되는 최근 경향에 맞춰 신규 정책 개발이 시급한 이유다.
최근 중소기업의 핵심기술 유출 사고가 잦아진 것을 감안해 정보보호체계 지원사업을 확대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또 서비스로서소프트웨어(SaaS) 등과 같이 IT 서비스 기술을 활용해 초기 투자비용은 적지만 기업특성에 꼭 맞는 맞춤형 서비스도 지원사업에 포함시킬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외에도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을 이용한 지원사업, 제조업에 IT를 접목하는 융합기술 지원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정책 개발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김현수 IT서비스학회장은 “세계적으로 제조 및 유통업에 IT를 활용해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하거나 경쟁력을 높이는 노력이 두드러지고 있다”며 “여러 기업에 적은 금액을 나눠주는 중기 정보화 사업과 별도로 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규모 국책 프로젝트를 만드는 방안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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