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뺏긴 ‘전자왕국’의 타이틀을 탈환하겠다는 일본 업체들의 야심찬 목표는 좀처럼 실현하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소니·파나소닉·히타치·NEC 등 일본을 대표하는 전자업체들의 실적이 줄줄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그나마 일본의 체면을 세워줬던 닌텐도가 최근 실적 발표에서 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내놓으면서 일본 전자업계 전체가 충격에 휩싸였다.
닌텐도는 상반기(4∼9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5% 떨어진 5480억엔(약 7조815억원), 영업이익은 52%나 떨어진 690억엔(약 8916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당초 밝힌 매출 목표 7000억엔, 영업이익 1000억엔과도 상당한 차이가 나 주가는 급락했다.
실적 부진의 원인은 그동안 효자 노릇을 해온 비디오게임 ‘위(Wii)’였다. 이 기간 동안 위 게임 콘솔 판매량은 575만대에 그쳤고 경쟁에 떠밀려 가격 인하를 단행하면서 관련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3% 떨어졌다. 위 소프트웨어는 6% 떨어진 7620만카피가 팔렸다. 닌텐도DS 역시 판매가 부진했다. DS 게임기와 타이틀의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5%, 16% 하락했다.
닌텐도는 하반기 실적 목표도 당초 3000억엔 영업이익에서 2300억엔으로 낮췄다. 목표를 달성해도 전년보다 10%나 떨어진 결과다. 닌텐도는 또 상반기 실적 부진의 영향이 커서 하반기에 성과가 좋아도 연간 목표를 달성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히로시 가미데 KBC증권 이사는 “닌텐도가 앞으로도 2008년의 실적을 재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히타치와 NEC는 실적 악화의 골을 더욱 깊게 했다.
히타치는 최근 분기(7∼9월)의 순손실액이 총 505억엔(약 6529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손실액이 173억엔(약 2236억원)인 것과 비교한다면 3배 가까이나 늘어났다. NEC 역시 이번 분기 손실액이 97억엔(약 125억원)으로, 전년 동기 12억엔(약 15억원)의 이익을 냈던 것과 큰 차이를 보였다. 두 회사 역시 올 회계연도 실적이 개선되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그나마 샤프가 중국시장에서 중저가 LCD TV 판매에 성과를 거두면서 전년 동기보다 이익을 늘려 체면치레를 했다.
소니와 파나소닉은 지난 분기 실적 악화 이후 구조조정을 벌이고 있다. 소니는 ‘선택과 집중’을 기치로 내걸고 실적이 나쁘거나 비핵심 사업은 과감하게 철수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분기 실적 역시 400억엔이 넘는 영업 손실이 예상돼 3분기 연속 적자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파나소닉은 20여곳이 넘는 국내외 공장을 폐쇄하기로 결정하고 생산라인을 축소하고 있다. 3분기 영업이익이 90% 이상의 감소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됐다.
두 회사는 비교적 수익성이 높은 LED 등 신제품으로 평판TV 시장에서 난국을 타개하겠다고 밝혔으나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한국 업체의 장벽을 넘기가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소니의 주바치 료지 부회장은 최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엔화강세까지 겹쳐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어렵다”고 토로했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