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컨버전스-융합형 인간이 뜬다] (2)유럽-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호모컨버전스-융합형 인간이 뜬다] (2)유럽-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유럽 심장부에 위치한 음악과 예술의 나라 오스트리아.

 오랜 역사를 거치며 유럽의 중심국가로서 찬란한 문화를 가꿔온 오스트리아는 세계 각지에서 매년 수백만명의 관광객이 문화와 자연을 보기 위해 몰려든다. 이곳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서쪽으로 160㎞ 떨어진 곳에 린츠라는 중소도시가 위치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제3의 도시인 린츠는 올해 유럽연합(EU)이 매년 선정하는 ‘유럽 문화의 수도(European Capital of Culture)’로 지정됐다. 수도인 빈도, 모짜르트의 도시 짤츠부르크도 아닌 린츠가 유럽 문화의 수도로 선정된 데는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센터(Ars Electronica Center·이하 AEC)’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린츠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도나우강에 놓인 니벨룽겐 다리를 건너자 강변 한쪽에 미래적인 외관을 자랑하는 AEC가 눈에 들어왔다. 1996년 처음 건립됐던 센터는 지난 2007년부터 재건축에 들어가 올해 1월에 다시 문을 열었다. AEC 앞에는 파란색의 유럽연합 깃발과 함께 유럽 문화의 수도를 상징하는 빨간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이미 30년 전부터 과학기술과 예술의 융합을 모색해 온 곳이다. 우리나라에는 세계적인 미디어아트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곳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AEC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융합기술연구 기관 중 하나이자 과학기술과 예술이 융합하는 모든 것을 연구하고 있는 곳이다.

 ◇AEC의 역사=1970년대까지 린츠는 철강과 화학산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도시였다. 그러나 70년대 말 린츠시는 새로운 린츠를 위한 계획을 세우게 됐고, 이때 IT와 문화 중심의 도시라는 청사진을 그리게 됐다. 그리고 그 계획의 중심에 예술과 과학기술, 사회가 어우러진 아르스 일렉트로니카가 있었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는 페스티벌로 처음 시작됐다. 1979년 열린 첫 페스티벌은 시를 가로지르는 도나우 강변에서 과학과 예술이 조화를 이룬 콘서트, 문화공연, 레이저쇼 등을 진행했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속에 페스티벌이 2년마다 성황리에 개최됐고, 회를 거듭하면서 인기가 높아져 1983년부터는 매년 열리게 됐다. 산업과 기술, 예술을 융합한 행사가 알려지면서 1987년부터는 국제적으로도 주목받게 됐고, 예술과 과학기술이 융합된 분야를 정해 국제 경연대회도 시작했다.

 경연대회 종목은 △컴퓨터 애니메이션 △디지털뮤직 △컴퓨터 인터랙티브 △하이브리드 아트 △프리스타일 컴퓨팅 등이었다. 첫 경연대회인 1987년 컴퓨터 애니메이션분야 1등 수상자는 스티브잡스와 함께 ‘픽사 스튜디오’를 공동 창업한 존 래스터가 차지하기도 했다.

 이 페스티벌과 경연대회가 지금까지 이어졌고, 이제는 매년 전 세계 미디어아트계가 주목하는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행사로 발전했다. 올해도 지난 9월에 페스티벌이 열렸고, 1주일 간의 축제기간 동안 세계 각국에서 7만2000여명이 린츠를 방문했다.

 ◇생각의 중심은 미래=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행사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린츠시는 행사를 주관하고, 행사 결과물을 전시하는 공간을 기획하게 됐다. 그렇게 만들어진 곳이 AEC이며, 건물이 완공된 것은 1996년이었다. 린츠시가 중심이 돼 도나우 강변에 도시의 미래를 이끌어갈 센터를 건축한 것.

 당시 AEC는 첫 전시 주제를 ‘5년 후 우리가 어떤 물건을 사용하고, 어떤 기술을 쓰고, 이런 것들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로 정했다. 그후로 지금까지 AEC가 추구하는 것은 미래, 즉 앞을 내다보는 것이었다. 지금은 IT를 중심으로 한 유전공학, 의학, 생명공학 등의 융합이 어떻게 발전할 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AEC가 연구 못지 않게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시민 및 관람객들과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 구성원과 생각을 공유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철학이 바탕이 됐다. 1996년의 첫 전시회에서 린츠 시민을 대상으로 5년 후 아이디어를 공모한 것이 좋은 예다. 현재도 전시기획 단계에서 중점을 두는 부분 중 하나는 사람들이 직접 참여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AEC의 싱크탱크 ‘퓨처랩’=센터를 건립한 1996년에 퓨처랩도 함께 설립됐다. 퓨처랩의 역할은 한마디로 ‘AEC의 미래를 생각하는 곳’으로 요약할 수 있으며, 예술 분야의 작업실과 과학기술 분야의 실험실 역할을 함께 하는 곳으로 만들어졌다.

 호스트 회르트너 퓨처랩 소장은 “퓨처랩은 AEC의 미래를 생각할 때 매년 새로운 것을 기획하고 보여주려면 새로운 시도가 필요했기 때문에 설립됐다”며 “센터에 전시할 다양한 작품을 제작하고,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퓨처랩에는 다양한 국적,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가진 연구원들이 한데 모여 연구하고 있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연구원들이 함께 연구하면서 자연스럽게 융합을 이끌어내고, 서로에게 자극을 줘 참신한 아이디어를 생산한다. 최근에는 융합을 더욱 가속화하기 위해 국제 협력연구를 위한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으며, 모스크바·싱가포르·도쿄 등에 해외 사무소도 설립했다. 우리나라의 KAIST와도 네트워크를 맺고 있다.

 퓨처랩의 연구역량은 AEC를 위한 연구뿐만 아니라 기업들의 융합연구·미래연구를 수행하기도 한다.

 회르트너 소장은 “보다폰, 지멘스, 내비게이션 업체 등의 인터페이스를 개발하는 작업을 했다”며 “인간과 기계의 커뮤니케이션처럼 기술과 문화·예술이 합치는 것을 다양하게 연구한다”고 설명했다.

 ◆인터뷰 - 호스트 회르트너 퓨처랩 소장

 “과학기술과 예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다른 것이 아닙니다. 두 분야 모두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사람이 과학기술과 예술에 다가가는 방식이 같기 때문에 결국 하나로 보아야 합니다.”

 퓨처랩이 처음 설립된 1996년부터 계속 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호스트 회르트너는 융합연구는 기술과 예술을 분리해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 가지를 하나로 보고 함께 연구할때 예술은 과학기술에 상상력과 창의력을 주고, 과학기술은 예술에 영감을 준다는 설명이다.

 회르트너 소장은 “지난 20∼30년간 인문학보다 과학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사회가 기술발전을 따라가지 못했는데, 이 간격을 메꾸는 것이 예술”이라며 “예술은 사회반응과 인간을 반영하기 때문에 기술과 인간의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예술과 과학기술 측면에서 함께 바라보기 위해 퓨처랩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았다. 그리고 융합연구의 시작은 다양한 배경의 연구원을 섞는 것에서 시작했다.

 그는 “퓨처랩에는 공학자, 디자이너, 사회학자, 건축가, 예술가, 물리학자, 게임디자이너, 해커까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다”며 “이들이 역할 분담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프로젝트를 위해 모여서 함께 논의한다”고 연구방식을 설명했다.

 각각의 연구원들이 자기 분야에서 연구한 결과를 종합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연구를 진전시켜 나가는 것이 진정한 융합연구라는 말이다. 예술·과학·기술·문화 등에서 나온 다양한 아이디어가 서로에게 자극을 주고, 이 자극을 바탕으로 기존에 없던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회르트너 소장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연구자들이 모여) 계속 논의하다보면 기존에 생각하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생각에 도달하는 시기가 오고, 이때가 상호협력을 통한 개혁이 되는 시기”라며 “융합연구란 결국 다양한 분야 연구자들이 생각의 경계없이 논의하는데서 시작하고, 여기서 창의적인 결과가 나온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정 분야에서 함께 모여 연구하는 그룹들이 있긴 하지만, 모든 분야를 전체적으로 통합해서 연구하는 곳은 전 세계에서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퓨처랩외에는 찾기 어렵다”며 자부심을 표시했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센터·페스티벌

 올해 초 재개관한 AEC는 4000㎡의 대지에 연면적 6500㎡ 규모로 지어졌다. 건물은 전시관과 레스토랑이 위치한 본관과 퓨처랩이 있는 별관으로 구성돼 있다. 현대식 건물로 다시 재탄생하기 위해 들어간 비용은 무려 2970만유로(한화 약 519억원)나 들었다. 이 비용은 모두 린츠시가 부담했다. 시의 미래를 위한 투자인 셈이다.

 AEC 건물 곳곳에는 다양한 의미가 담겨있다. 건물 외관은 얼핏 보면 사각형 두개가 연결된 형태지만, 자세히 보면 건물의 가장자리 선이 어느 하나도 평행하지 않은 이상한 모양이다. 마치 직육면체 상자를 조금씩 틀어진 듯한 모양인데, 이는 평행하지 않은 선들이 모여 하나의 완성된 건물을 완성하듯 다양한 생각들이 모여 새로운 생각을 창조한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모두 유리로 된 건물 외벽과 이를 따라 설치된 4만개의 LED 조명이 만들어낸 미래적인 외관은 린츠시의 인상적인 풍경으로서의 ‘총체적 실체(a holistic entity)’와 도나우강 반대편에 있는 또 다른 미래형 건물인 ‘렌토스 현대 미술관’의 대응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본관 주 전시장을 수면 1.5m 높이에 위치하게 해 건축과 예술의 도전이라는 뜻을 담았다.

 린츠시에서는 매년 9월이면 AEC와 동명의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이 열린다. 페스티벌이 열리는 9월은 맨 처음 열렸던 1979년 9월을 기념한 것이다. 첫해 페스티벌에는 20명의 예술가와 과학자가 참여했지만, 매년 발전을 거듭해 지난 2008년에는 세계 25개국에서 온 484명의 예술가와 과학자가 발표자로 참여했다.

 지난 9월에 열린 올해 페스티벌에도 7만2000여명이 방문했었다. 또 58명의 외국기자를 포함한 650여명의 취재진이 몰려 AEC가 제시하는 미디어아트와 기술의 미래에 대한 언론의 관심의 보여줬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