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세상읽기] SF와 현실사회

[SF 세상읽기] SF와 현실사회

흔히 SF를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비현실적인 것’이나 ‘허구’라는 단어를 떠올리곤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개연성 있는 허구’라는 소설문학의 기본적인 정의를 떠올리며 쓴웃음을 짓곤 하지만, 그 어떤 문학·문화도 현실과 유리돼 있는 것은 없다.

 SF는 장르의 특성상 지금 눈에 보이는 현실과 다른 겉모습을 취하고 있으나,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현실을 반영하는 사례가 많다. 많은 창작자들이 SF라는 장르 안에서 훌륭하게 현실과 연결된 작품을 만들어냈다. 얼마 전에 개봉한 ‘디스트릭트 9’이라는 영화는 매우 모범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디스트릭트 9’은 기본적으로는 외계인이 나오는 SF영화다. 그러나 이 작품 속의 외계인들은 다른 많은 SF 액션영화와는 달리 지구를 침공하거나 인간에게 사악한 생체실험을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그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지구, 그것도 요하네스버그에 나타나 천민 취급을 받으며 얹혀 사는 피난민일 뿐이다. 영화는 이러한 독특한 설정을 기반으로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면서 국제기구의 외계인 담당관인 주인공에게 벌어지는 사건을 추적한다.

 여기까지만 듣는다면 그냥 참신한 설정의 SF 액션영화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너무나 분명하다. 남아공 출신인 감독 닐 블롬캠프가 외계인의 우주선을 왜 하필 뉴욕도 워싱턴도 아닌 요하네스버그에 출현시켰겠는가. 외계인들의 거주구역인 ‘제9구역(district 9)’은 과거 아파르트헤이트 시기, 요하네스버그 근교에 있던 흑인 빈민가인 ‘제6구역’에서 따온 것이다.

 주인공 바커스가 가지는 외계인을 향한 태도는 전형적인 백인 중산층 소시민의 태도다. 핍박받는 흑인들이 안쓰러운 측면은 있으나, 그들은 자신들과 같은 인간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지식이 없는 관객이라도, 외계인의 자리에 흑인, 소수민족, 빈민을 등치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영화에는 이 외에도 많은 현실적 모습이 녹아 있다. 외계인을 등쳐 먹고사는 나이지리아인 폭력조직, 자원을 위해 다른 국가를 사실상 침공하고 착취하는 강대국의 모습 등 현재 남아공과 국제 사회의 수많은 문제점이 영화의 배경과 사건으로 매우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있다. 간단하게 말해 ‘아는 만큼 많은 것이 보이는’ 그런 영화인 것이다.

 그러나 ‘디스트릭트 9’의 미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감독은 교조적인 다큐멘터리를 찍는 대신에, 약간은 모자라지만 소시민이기에 감정적 공감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주인공을 내세운다.

 특히 영화 후반에 전개되는 액션 장면들은 3000만달러라는 저예산을 생각한다면 놀라운 수준이며, 그러면서도 주인공의 감정선을 세심하게 따라간다. 아무리 훌륭한 CG와 화면을 자랑하는 액션이라도, 감정적 공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얼마나 지루한 화면이 되는가를 잘 보여준 영화가 ‘트랜스포머 2’였다면, ‘디스트릭트 9’의 후반 액션은 정확히 그 대척점에 서 있다.

 닐 블롬캠프가 현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SF를 선택한 이유는 분명하다. 흑인 또는 유색인종의 어려운 현실을 체험하지 않은 관객들에게 대놓고 흑인을 등장시킨 영화를 보여준다면 공감을 얻지 못할 수 있다. 반면에 외계인의 등장은 관객들의 믿음 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해 앞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에 오히려 더 몰입하게 한다. 비현실적 존재의 등장이 되레 개연성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동시에 교조적인 다큐멘터리에서 탈피해 더 큰 대중성을 획득할 수 있다. 즉, SF는 그 ‘비현실성’으로 인해 오히려 더 훌륭한 사회비판 장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홍인수 SF번역가 iaminsu@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