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컨버전스-융합형 인간이 뜬다] (3)스웨덴 하셀블라드 재단 및 PLUS센터](https://img.etnews.com/photonews/0911/091110043137_2061897625_b.jpg)
‘작지만 강한 나라’의 표상인 스웨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선정하는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항상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나라로 유명하다. 인구 1000만명 정도의 작은 나라 어디에서 이런 힘이 나올까.
노벨의 나라 답게 인문사회학, 기초과학, 응용과학이 고루 발전한 것을 꼽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과학기술자를 우대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비롯된 뛰어난 과학기술이 강점이다. 유럽 국가들이 그렇듯 자신과 다른 학문, 다른 견해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학문간 교류와 융합을 촉진한 것도 힘이다. 안정적인 사회복지제도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러한 요소들이 어우러져 북유럽 한쪽에 자리한 스웨덴은 세계에 이름을 떨치고 있다.
스웨덴 제2의 도시 예테보리(고텐부르크). 이 곳에는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예테보리국립대학과 칼머스 공대가 자리하고 있다. 또 예테보리 중심가인 애브닌 거리 끝에는 과학 대중화와 창의성 향상을 위한 활동을 하는 하셀블라드 재단이 운영하는 하셀블라드 센터가 위치하고 있다.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 3개 기관은 하나의 융합연구센터를 공동으로 지원한다. 세계적인 융합연구 전문가이자, 창의적 과학교육의 권위자인 일란 차바이 박사가 이끄는 ‘플러스(PLUS:Public Learning and Understanding of Science) 센터’가 그 곳이다.
◇세계적 융합연구 선도=플러스 센터는 하셀블라드 재단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고, 국립 예테보리대학과 칼머스공대가 공동으로 운영한다.
플러스 센터가 수행하는 연구분야는 다양하다. 창의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과학교육 개선방안에 대해 연구하고 있고, 과학의 대중화 방안과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혁신방안도 연구한다.
특히 흥미를 끄는 주제 중 하나는 유럽연합(EU) 프로젝트로 연구하고 있는 ‘발트해 수산자원의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한 연구다. 제목만 들으면 어느 분야의 연구인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정치학적인 주제인 것도 같고, 생물학이나 사회학 관련 주제같기도 하다. 어느 한 측면에서 본다면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러나 플러스 센터는 이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보기 위한 연구를 한다.
발트해는 스웨덴을 비롯해 덴마크·독일·폴란드·러시아·핀란드·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의 8개국이 인접해 있다. 지정학적 상황, 각 나라의 입장, 발트해의 자연환경 등을 다각도로 연구하고, 과학적인 근거를 갖춘 대안을 찾기 위해서는 각 학문을 종합한 융합연구가 필요하다.
◇사람부터 융합=융합연구를 위해 플러스센터가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바로 사람이다. 특히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방면의 인재를 선발해 함께 연구한다. 실제로 발트해 관련 연구에도 사회학, 컴퓨터 공학, 수학, 화학, 생명공학, 물리학 등 다양한 전공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단 기본은 필요하다. 바로 다른 연구자의 얘기를 귀담아 듣는 것이다.
일란 차바이 박사는 “서로 다른 분야지만 함께 일하고 다양한 분야의 배경을 혼합해 아이디어를 얻는다”며 “모든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우리는 서로 잘 이야기할 수 있고, 서로의 생각을 잘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연구라는 것이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 아닌 경우는 더욱 그렇다. 다양한 생각들이 모여 전혀 다른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물론 어려운 점도 있다. 국적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할 때 언어가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영어의 같은 단어를 말해도 의미가 다른 경우가 있어서다.
◇융합의 산물은 창의성=학문간 융합연구를 통해 얻는 결과물은 창의적 아이디어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가 모인 것은 사회를 한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차바이 박사는 “세계는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모두 연결돼 있어서, 무엇을 먹고, 무엇을 사용하고,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하는지가 다 연관이 있다”면서 “때문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미래의 후손을 지속하게 하는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더 지속가능한 세계를 만들기 위해 어려운 도전에 직면에 있고, 이로 인해 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것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며 “서로 다른 지식과 배경을 가진 문화간 교류를 통해 새로운 사고와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 일란 차바이 박사
“학문간 융합연구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창의성이 필요하고, 동시에 창의적이 되기 위해서는 어릴때부터 교육을 통해 환경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일란 차바이 박사는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를 지원하는 교육시스템이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창의성을 개발하려면 다양한 아이디어를 스스로 실험하고, 질문하고, 대답하는 과정이 중요한데, 학교에서는 이것을 제한하는 것이 문제”라며 “틀려도 좋으니 많은 것을 경험을 통해 얻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집중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어떤 것을 아느냐 모르느냐보다 잘 생각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차바이 박사는 “학생들은 많은 것을 배우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배우지는 못한다”며 “지식은 인터넷만 뒤져보면 정말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이를 이해하고 사용하게 하는 것은 어렵다”고 지적했다.
단지 사실을 아는 것보다 이를 스스로 활용하는 방법을 알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과정보다 답을 찾는 기술만을 요구하는 우리나라 학교교육의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었다. 차바이 박사는 “나는 약간 문제아로 보일 정도로 학교에 맞는 학생은 아니었다”며 “하지만 배우는 것을 정말 갈망했는데, 아쉽게도 선생님들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는 관심없이 지식만을 강요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2명의 선생님이 대학에 갈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다른 선생님은 오히려 이해하고 독려해주기도 했었다”면서 “결국 대학에 가서 금세 과정을 마치고 대학원 코스까지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방법으로 배우는 것에 대해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웠다고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획일적인 교육을 강요하는 것은 지금도 여전하다.
한국을 방문하고, 과학교육에 대한 강연을 하기도 했던 차바이 박사는 우리나라에 대한 애정어린 조언도 했다. 차바이 박사는 “한국같이 물리적으로 작은 나라는 브레인 파워를 혁신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통해 창의적인 직업, 창의적인 힘을 만들어야 한다”며 “교육과 입시가 함께가기 때문에 무엇보다 입시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선생님들 역시 기존의 교육방식에서 벗어나야 하고, 학생들을 평가하는 방법도 향상시켜야 한다”며 “정부, 선생님, 부모, 학생의 생태계가 새로운 구조를 만들 수 있도록 정책입안자들이 문제점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일란 차바이 박사는
스웨덴 제2의 도시인 고텐부르크(예테보리)에 소재한 칼머스공대(Chalmers University of Technology) 교수로, 국제적인 융합연구를 수행하는 PLUS 센터를 이끌고 있다.
차바이 박사는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하다 과학교육에 뜻을 두어 미국의 대표적인 과학체험센터인 샌프란시스코 익스플로라토리움의 부관장으로 재직했으며, 직접 물리법칙 체험기구를 고안해 체험형 물리교육에 앞장서왔다.
그는 과학교육을 포함한 과학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인지해 세계적 과학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인 ‘세계과학커뮤니케이션회의(PCST)’에도 깊게 관여하고 있다.
현재 차바이 박사는 스웨덴에서 창의성을 자극하는 과학교육을 실천하기 위해 유럽연합(EU) 차원의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있으며, 세계 국가들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펼치고 있다. 다양한 분야 학자들과의 융합연구환경을 갖추고 있어 국제연합(UN), EU 등의 국제기구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으며, 창의적인 과학교육을 위한 프로젝트도 중국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차바이 박사가 추천하는 융합·창의 교육 우수 사례 - 이탈리아 ‘레지오 에밀리아’
일란 차바이 박사는 융합·창의 교육과 관련해 ‘레지오 에밀리아(reggio emilia)’를 첫 손에 꼽았다.
레지오 에밀리아는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작은 마을 이름으로 우리나라에도 ‘레지오 에밀리아 접근법’이라는 유아교육법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8년부터 마을의 어린이들을 나이에 관계없이 함께 교육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어린이들을 중심에 둔 레지오 에밀리아만의 교육방법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차바이 박사는 “레지오 에밀리아에서는 아이들이 프로젝트의 중심이고, 아이들 간의 협동을 강조한다”며 “또 학생들이 사용하는 창의적인 리소스도 곤충·동물·자연·전선·찰흙 등 다양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레지오 에밀리아에서는 선생님에게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듣게 훈련시킨 것이 다른 곳의 교육과 가장 큰 차이가 있다”고 덧붙였다.
어른의 입장에서 아이들에게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로부터 반응을 이끌어내고, 여기서 아이들 스스로 생각하고 배우게 하는 교육법이다.
그는 레지오 에밀리아에서 실시한 교육의 예를 한가지 들었다.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운동장을 지나가면서 선을 만들면, 이 선이 왜 생기는지를 아이들과 함께 얘기한다는 것. 또 직선, 곡선, 복잡한 선 등 다양한 패턴을 만들고, 이를 사진으로 남기거나 조형물로 만들기도 했다. 모든 과정은 여러 아이들이 함께 했다. 그리고 수개월간 진행된 결과물을 모아 책으로 냈다.
차바이 박사는 “앞의 예는 아이들 스스로 협력, 다양한 결정, 프레임워크 등을 배운 것”이라며 “이것이 바로 학습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테보리(스웨덴)=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