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도 어느덧 덩그러니 2장의 달력만 남았다. 돌이켜 보면 우리 모두에게 올 한해는 전 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금융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하느라 그 어느 해보다 숨 가쁘게 달려온 시간의 연속이었다. 각 사의 최고정보책임자(CIO)들에게도 경영진이 기대하고 있는 비즈니스 가치 창출을 적기에 지원하기 위해 제반 IT 인프라 확대와 투자 효율화를 통한 비용 절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한 고민과 노력으로 점철된 나날들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무릇 ‘밀짚모자는 겨울에 사라’는 주식시장의 격언에서 잘 알 수 있듯이 급변하는 경영 환경과 작금의 무한경쟁 시대에는 미래를 위한 준비를 소홀히 하거나 투자 타이밍을 놓치면 자칫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 심한 경우에는 해당 기업의 생존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인식이 나만의 지나친 기우는 아닐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지난 1954년 창립돼 한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수행하던 국책은행의 역사를 뒤로한 채 민영화의 첫발을 힘차게 내딛은 산업은행의 정보시스템은 시중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출발은 늦었으나 2001년 오픈 유닉스 체계의 신 정보 시스템을 국내 은행권 최초로 구축한 이후 현재까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왔다.
1980년대 파콤의 ‘APFS’에서 시작해 1990년대 IBM의 ‘CAP’ 그리고 2000년대 HP의 ‘뱅스’까지 어찌 생각해 보면 과감하게 내린 변화의 결단이 지금의 산업은행을 만들었다고 감히 자부한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IT 분야에서 체득한 다양한 경험은 CIO가 된 이후 조직을 이끌어 가는 데 소중한 자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프로덕트 팩토리 구현, 멀티채널 아키텍처, 고객정보 통합, 비즈니스 프로세스 관리 등을 반영한 시중은행의 차세대 시스템 구축이 거의 일단락되어가는 요즘, 산업은행은 미래를 대비한 또 한 번의 화려한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국내 금융기관의 경영 화두는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통한 그룹 경쟁력 향상, 영역 확장과 글로벌 스탠더드의 도입 및 적용이라고 특징지을 수 있다. ‘금융투자업과자본시장에관한법률’의 시행으로 금융 업종 간 장벽이 사라지고 모든 상장기업에 국제회계기준(IFRS)이 적용되는 2011년에는 연결공시, 공정가치 평가, 파생상품 평가조정 등에 따라 회계의 투명성이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IT 측면에서도 고객중심적 비즈니스 전략 강화로 인해 다양한 고객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차별화된 맞춤형 금융서비스 제공, 복합상품 개발 및 판매 채널 다변화에 필요한 투자 확대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또 CIO는 그룹 안에 산재된 IT 기능을 통합해 시너지를 높이는 비즈니스 인에이블러(enabler)로의 역할 변모와 투자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 도출이라는 조직 내 요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어려운 입장에 놓일 것이 자명하다.
그렇다면 그룹 차원에서 시너지를 높이기 위한 방안과 통합의 효익은 무엇이 있겠는가. 자회사 간 상품 교차판매, 연계영업 활성화, 상호 이용 등에 따라 신규 수익 창출도 가능하고 인프라 공동 구매와 운용을 통한 비용 절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겠으나, 영업활동의 근간이 되는 IT 시스템의 통합 없이는 최고의 시너지를 발휘하기 어렵다고 본다.
완전한 통합을 이룬다고 가정할 때 하드웨어는 최대 40%, 소프트웨어는 21%, 서비스는 30%, 통신은 24%의 비용이 절감되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보수적으로 접근해도 약 10% 이상의 비용 절감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그룹 내 IT 운용 조직의 위상 역시 셰어드서비스센터에서 전략 코스트 센터로, 더 나아가 수익센터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가트너그룹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 이후 현재까지 CIO들이 생각하는 최고 우선순위는 비즈니스 프로세스의 개선이지만 2012년에는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 개발 그리고 혁신이라고 예상하는 점은 우리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금융 업무의 특성상 경쟁력의 원천인 IT의 중요성에 대해 굳이 부연 설명하지 않더라도 대규모 인수합병과 아웃소싱 확대에 따른 조직 구조의 변화, 규제 강화, 고객의 수요 변화, 기술 발전 등 변화하는 환경과 여건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는 것이 CIO 입장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할 산업은행의 미래시스템 구축 전략 수립의 키워드는 ‘통합’이다. 구축 방식이 빅뱅이 될지 단계별 개발이 될지 아니면 뛰어난 시스템을 구매해 산은금융그룹이 추구하는 글로벌 상업투자은행(CIB:Corporate & Investment Bank) 업무 특성에 맞게 커스터마이징하는 방식을 택할지 여부는 면밀한 검토 후에 결정하겠지만 금융환경 변화에 보다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한 최적의 방식을 선택할 생각이다.
가을이 깊어가는 오후, 사무실 창 너머 여의도공원에 고즈넉이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마음 저편에 머지않아 일진월보(日進月步)한 모습으로 발전해 있을 산은금융그룹의 IT를 꿈꾸며 미래를 향한 또 다른 화려한 비상(飛翔)을 준비하고자 한다.
정순정 한국산업은행 IT센터장 kdbcsj@kd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