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과 AMD가 4년여에 걸친 법정 다툼을 끝냈다. 인텔이 합의금을 내밀며 두 손을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인텔은 모든 독점금지·특허권 소송을 접는 대가로 AMD에 12억5000만달러(약 1조4500억원)를 지급하기로 했다. 12년 이상 세계 PC 칩(CPU)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려왔던 인텔의 자존심이 무너진 셈이다.
두 회사는 앞으로 5년간 반도체 관련 기술 특허권을 공유하기로 합의하는 등 화해 분위기가 역력했다. 시장의 반응도 좋아 두 회사 주가를 얼마간 끌어올렸다.
그러나 매듭이 모두 풀리지는 않았다. 인텔이 미 뉴욕주와 델라웨어 법정에 서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5일 앤드루 쿠오모 뉴욕검찰총장은 인텔을 미 연방과 뉴욕주의 독점금지법을 어긴 혐의로 기소했다. 시장에서 AMD를 압박하기 위해 PC 제조업체인 델·HP·IBM 등을 협박하거나 뇌물로 수십억달러를 건넸다는 게 뉴욕검찰의 인텔 기소 이유다.
쿠오모 총장은 인텔의 PC 제조업체 협박 증거와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려고 건넨 뇌물 사례를 83쪽이나 정리해 둔 상태여서 인텔에 적잖은 시련이 될 전망이다. 그래픽 칩(GPU) 제조업체인 엔비디아가 델라웨어 법정에 제기한 특허소송도 여전히 살아 있다. 엔비디아는 거대 기업인 인텔이 그래픽 칩 시장에서 자사를 짓누르는 행위에 대해 서슬을 돋구었다.
뉴욕·델라웨어 법정은 초점을 ‘소비자’에게 맞출 것으로 보인다. 인텔의 독점금지법 위반 행위가 ‘더욱 좋은 제품을 값싸게 살 수 있는 소비자 선택권’을 침해했을 수 있다는 것. 경쟁 업체를 압박해 시장의 공정경쟁 환경을 훼손한 것도 궁극적으로는 소비자 편익을 떨어뜨린 것으로 해석될 개연성이 크다.
인텔은 AMD와 화해하면서 기존 반도체 시장 관행에 관련된 규정들을 준수하겠다고 선언했다. 인텔의 이러한 자세가 뉴욕·델라웨어 법정에서도 이어질지 주목된다. 또 지난 7월 유럽연합(EU)으로부터 독점금지와 관련해 부과받은 벌금 15억7000만달러(약 1조8200억원)에 대해 항소를 유지할지도 관심거리다.
미 연방거래위원회(FTC)도 뒷문에 빗장을 건 채 인텔을 기다린다. 인텔과 AMD의 화해를 주시하되 반도체 시장의 독점 현상과 경쟁 훼손 여부를 조사하는 서슬이 여전히 퍼렇다. EU도 벌금 부과에 머무르지 않고 반도체 시장을 지배하는 인텔의 독점금지법 위반 행위를 계속 돋우어 볼 계획이다.
지난 12년간 PC 칩 시장을 주도해온 인텔의 영화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성이 조금씩 깨지는데다 그래픽 칩처럼 성장하는 시장에 발을 들여놓기도 쉽지 않아 사면초가로 내몰리는 경향이다. 인텔이 이런 상황을 맞아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인텔의 선택과 결과에 따라 시장을 지배하는 기업이 걸어야 할 길을 보여주는 새 경영 지표가 설 전망이다.
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