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윤정의 성공파도] (205)남자 `Re-SET`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https://img.etnews.com/photonews/0911/091117105317_1545341696_b.jpg)
‘남성인권보장위원회’라는 개그코너가 있다. ‘집에서는 귀한 아들, 여자 화장실 앞에선 가방 드는 짐꾼’이라고 고발하며 남성의 애환을 유머러스하게 다룬다. “영화표도 샀는데 팝콘도 사야 하냐?” “네 생일엔 명품 가방, 내 생일엔 십자수냐?” 등 남녀 불평등한 데이트 현실을 낱낱이 꼬집고 있다.
그동안 대범함이라는 허상 속에 자칫 소심해 보일까봐 드러내놓고 얘기하지 못했던 남성 처지가 이해된다. 불평등에 대한 고발은 여성의 전유물 같았는데 남성도 끄집어내니 만만치 않다. 여성의 S라인 못지 않게 남성의 근육질 몸매를 강요하고, 여성의 외모만큼이나 남성의 경제력을 따진다. ‘넌 여자니까 조신해야지’라는 말만큼이나 ‘넌 남자니까 씩씩해야지’라며 남성의 어깨를 무겁게 해왔다. 군대에서 머리는 비우고 욕만 배워왔다. 직장에서는 폭탄주를 말아먹고 집에서는 찬밥을 말아먹는다. 공공연히 직장의 노예가 되고 가정의 머슴이 됐다. ‘축 승진’이 아니라 ‘축 생존’이라는 화환을 받을 만큼 직장생활도 치열하고 고단하다. 젊었을 때는 부끄러운 안전보다 영광스러운 위험을 택하고 싶었는데 처자식을 생각해서 영광스러운 위험을 버리고 부끄럽게 참고 있다. 놀아본 사람이 논다고 일 말고는 놀 줄 모른다. 맨 정신으로는 무슨 대화를 어떻게 나누며 무엇을 하고 노는지 모르다 보니 폭탄주로 정신적 자폐를 달랜다. 이제 남성은 가해자, 여성은 피해자라는 고정관념이 시대착오적일 수 있다. 한 발짝만 물러서면 모두 피해자일 수 있고 모두 가해자일 수 있다. 이제 이야기하기 우세스러워 참아버리고, 내가 참은 만큼 남도 참았으면 하지 말자. 남성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여성과 쩨쩨한 고삐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고, 여성의 공격에 대한 반격도 아니다. 서로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이해의 시작이다.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다른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