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출연 IT R&D기관으로는 유일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새 수장에 임베디드 SW 전문가인 김흥남 연구위원이 결정되면서 ETRI의 향방에 귀추가 주목된다.
정부는 내부인 발탁으로 자칫 흔들리기 쉬운 연구 분위기를 다잡는 한편 50대 초반의 ‘젊은 리더’를 바탕으로 변화와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더욱이 이번 기관장 선임과 개혁 추진 분위기는 내년 정부출연연구기관 거버넌스(지배구조) 체제개편의 신호탄으로 여겨졌다.
ETRI는 사실 지난 10년간 5조2000억원의 연구 예산을 투입해 5040억원 안팎의 기술료 수입을 거둬 총연구비 투입 대비 수익성이 10%를 육박한다. 다른 연구기관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TRI는 ‘그동안 도대체 한 일이 무엇이냐’는 지적에 끊임없이 시달려왔다.
올 한 해 예산만 6500억원을 집행하는 ‘거대조직’이지만 리더십 부재와 정부의 지나친 간섭으로 국가 IT 산업의 씨앗을 뿌리는 ‘원천’ 연구보다는 ‘돈’ 되는 기술 개발에만 치중했다. 전전자교환기(TDX)와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기술 개발 이후 뚜렷하게 내놓은 업적이 거의 없을 만큼 정체성 위기를 겪는다. DMB나 와이브로 등이 있다지만 시장 상황은 성공을 속단하기 이를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ETRI는 지식경제부가 올해 말까지 마무리 지을 산업기술연구회 산하 13개 출연연구기관의 거버넌스 체제 개편의 중심에 놓였다. 조직 전체가 부품소재와 SW, 통신·방송 등으로 나뉠지 아니면 IT 그룹으로 새로 뭉쳐질지 가늠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R&D 부문에서는 최근 주목하는 그린테크놀로지 및 조선, 자동차 등과의 융합연구와 IT만의 고유한 원천연구를 방관만 할수 없는 처지다. 일본과 미국, 유럽 등은 저만치 달아나 있고, 중국 등 신흥국의 추격은 코밑에 와 있다. R&D에 치중해야 할 ETRI를 정계가 들었다 놨다 하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은종원 남서울대 정보통신공학과 교수는 “국민의 혈세를 쓰는 ETRI의 생산 효율이 낮다고 하지만 서비스 위주의 제품보다 원천기술 개발로 가야 한다”며 “공익사업 중심의 출연연다운 모습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ETRI 나눠놓기 식에 이견이 분분하다. 일부에서 시너지 효과를 위해 ETRI가 하나로 뭉쳐 있어야 한다는 의견과 융합은 단지 결과물이기에 각 부문에서 핵심요소만 보유하고 있으면 된다는 분리론이 맞서 있다. 경종민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전공 교수는 “대학과의 실질적인 협력과 기업체와의 컨소시엄 등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 필요가 있다”며 “기반연구와 응용연구는 명쾌히 구분,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흥남호에는 대형 국책과제의 선도적인 기획과 기금 확보를 포함해 R&D에 ‘올인’할 연구환경 마련, 탄력적인 인력순환과 채용, 경력관리, 흩어진 연구원 민심 바로잡기 등 숱한 과제가 놓였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