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재난영화’는?

한국 최초 ‘재난영화’는?

무너진 갱도 갇힌 광부 구출 다룬 1969년작 <생명>

재난을 소재로 다룬 영화들이 화제가 되고 있다. 올해 국내에서 상영된 영화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흥행 성적을 거둔 장르가 재난이기 때문이다. 재난 영화는 관객들에게 쉽게 보기 어려운 장관을 보여줘 인기를 끌었다. 따라서 그 동안 많은 작품이 제작됐고 영화의 한 갈래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하지만 올해만큼 국내 관객들이 재난 영화에 힘을 실어준 경우는 지금까지 없는 듯하다. 국내 영화론 여름 성수기에 개봉한 <해운대>가 1000만 관객을 훌쩍 뛰어넘어 ‘한국형 재난 블록버스터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았다. 외화 쪽에서도 12일 개봉한 <2012>가 개봉 첫 주에 국내 관객 163만명을 돌파했다. 이는 지금까지 국내에서 11월에 개봉한 영화 가운데 최고 기록이라고 한다.

이처럼 재난 영화가 큰 인기를 끌자 많은 네티즌이 재난 영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한 포털사이트를 보니, “볼만한 재난 영화를 추천해 달라”는 부탁에서부터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재난 영화는 아니냐?”는 논란에 이르기까지 관심이 다양했다.

특히 <해운대>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한국 재난 영화’에 대해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데, 국내에서 제작된 재난 영화는 예상처럼 많지 않았다. 그 이유는 영화 시장 크기에 따른 제작비 문제 탓으로 보인다.

재난 영화 한 작품을 만들 때는 매우 ‘큰돈’이 필요하다. 장르 특성상 관객을 끌어 모으려면, ‘스케일’이 커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재난 영화들이 주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인 이유다. 67억 인류의 생존 드라마를 담은 <2012>도 제작비 2억6000만달러(약 3010억원)를 쏟아 부어 만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다.

<해운대>의 제작비는 <2012>에 비하면 ‘껌값’에 불과한 160억원이다. 국내에선 160억원이란 제작비도 최고 수준이지만 할리우드에서 이 돈으로 재난 영화를 만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당연히 ‘한국 재난 영화’는 편수가 적고, 같은 장르라도 할리우드 영화에 비해 ‘스케일’이 작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해운대>를 빼고 ‘한국 재난 영화’는 어떤 작품들이 있을까. 한국영상자료원을 통해 확인해보니, 장편영화에는 <싸이렌>·<리베라메>·<생명>이, 단편영화론 <기념촬영>·<가스도시>·<길>·<지워버리다>가 있었다.

이 가운데 <싸이렌>과 <리베라메>는 화재를 다룬 것으로, 2000년에 제작돼 비교적 널리 알려진 작품들이지만 나머지는 생소한 이름들이다. 거의 개봉이 안 되는 단편영화야 그렇다 치더라도, 장편영화 가운데 <생명>이 생소한 것은 왜일까?

40년 전인 1969년 제작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생명>은 바로 ‘한국 최초의 재난 영화’이기도 하다. 이만희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석탄을 캐다가 지하 갱도에 고립된 광부를 구출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장민호, 남궁원, 허장강 등 당대 유명 배우들이 출연했다.

줄거리는 갱도가 무너져 지하 250미터에 고립된 광부가 가까스로 목숨을 이어가면서 전화선을 통해 밖에 소식을 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신문 기자들이 이 이야기를 취재하게 되고, 자원한 동료 광부들이 사투를 벌인 끝에 고립된 광부를 구한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를 만든 이만희 감독은 ‘천재감독’ ‘영화천재’ 등으로 불리다가 1975년 40대에 요절한 영화인이며, 배우 이혜영의 아버지로도 널리 알려졌다. 그가 남긴 작품으로는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만추>(1966)·<삼포가는 길>(1973) 등이 있다.

재난포커스(http://www.di-focus.com) - 이주현 기자(yijh@di-foc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