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이슈] DSLR의 황혼

[이머징 이슈] DSLR의 황혼

 세계 카메라시장에 심상치 않은 변화의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올해로 출시 50주년을 맞이한 렌즈 교환식 SLR 카메라가 조금씩, 뚜렷한 몰락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고화질 필름 카메라의 대명사인 SLR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CMOS센서를 장착한 DSLR로 화려하게 변신에 성공했다. 그러나 2009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DSLR도 시장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카메라 역사에서 점차 물러날 처지에 놓였다.

 개인용 카메라는 콤팩트 카메라와 SLR 카메라로 나뉜다. 흔히 똑딱이라 불리는 콤팩트 카메라는 렌즈교환이 안 되는 소형 자동카메라를 지칭한다. 초점과 노출이 자동으로 맞춰져 카메라를 잘 모르는 사람이 대충 눌러도 쓸 만한 사진을 건질 수 있는 것이 최대 미덕이다.

 콤팩트 카메라는 휴대가 간편하고 가격도 저렴하다. 콤팩트 기종과 함께 카메라시장의 양대산맥을 이뤄온 SLR 카메라는 일안반사식 카메라(Single Lens Reflex)의 약자다. SLR 카메라는 렌즈 하나로 필름과 사람의 눈에 똑같은 영상신호를 나눠서 보내는 기막힌 아이디어의 산물이다.

 SLR 카메라 내부에는 렌즈와 필름 사이에 반사경(거울)이 45도로 들어가 있다. 평소에는 거울에 비친 렌즈 영상이 파인더에 비치지만 셔터를 누르는 순간 거울이 위로 들리면서 필름에 빛이 들어와 사진이 찍힌다. 사진을 찍을 때 덜컹하는 소리는 SLR 카메라 안에서 거울이 닫히는 기계적 소음이다. SLR 카메라는 복잡한 반사식 구조로 무겁고 덩치가 크며 소음, 진동, 잔고장 등이 뒤따르게 된다. 구조적 결함에도 SLR 카메라는 지난 반세기 동안 카메라 시장에서 왕좌를 유지해왔다. 눈으로 본 화면 그대로를 사진에 담는다는 카메라의 기본원칙에 가장 충실한 설계였기 때문이다.

 ◇필름 시대, SLR의 영광과 쇠락=SLR 카메라는 지난 1950년대 후반 일본 카메라업체에 의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니콘, 캐논 등은 독일제 카메라의 아성을 뛰어넘기 위해 새로운 기술방식인 SLR 카메라로 승부를 걸었다.

 캐논은 1959년 5월 첫 번째 35㎜ SLR 카메라를 출시한 이래 현재까지 6000만대에 육박하는 카메라를 생산했다. 같은 해 6월 니콘은 35㎜ SLR 카메라에 렌즈를 끼우는 F 마운트 규격과 이를 처음 적용한 ‘니콘 F’를 출시했다. 일제 SLR 카메라는 35㎜ 카메라의 원조인 독일제 라이카에 비해 덩치가 크고 잔고장도 많았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장면을 그대로 찍는다는 구조적 장점과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을 빠른 속도로 석권했다.

 1970∼1980년대는 SLR 카메라의 전성시대였다. 일본 카메라업계는 엄청나게 다양한 렌즈군과 액세서리, SLR 기종을 쏟아냈다. 카메라를 좀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화질이 좋은 일제 SLR 카메라를 선호했다. 하지만 SLR 시장의 탄탄대로에 예상치 못한 복병이 나타났다. 전자기술의 발달로 싸구려 콤팩트 카메라의 촬영품질이 1980년을 전후해서 갑자기 비약적으로 향상된 것이다.

 초창기의 콤팩트 카메라는 마치 일회용 필름 카메라처럼 일정한 거리, 밝기에서만 촬영이 가능한 원시적 구조였다. 일본의 전자업계는 콤팩트 카메라에도 오토포커스와 자동플래시, 전동식 리와인더 등의 사치스러운 첨단기능을 부여했다. 초보자가 대충 눌러도 콤팩트 카메라는 초점과 노출이 잘 맞춰진 쓸 만한 사진을 찰칵찰칵 찍어냈다. 휴대성도 뛰어나 생동감 넘치는 스냅사진을 찍기에는 SLR 카메라보다 훨씬 나았다. 1980년대 중반에는 줌렌즈를 장착한 신세대 똑딱이 카메라가 속속 등장하면서 SLR 카메라의 위상을 흔들기 시작했다.

 당시 콤팩트 카메라와 SLR는 모두 똑같은 규격의 35㎜ 필름을 사용했다. 렌즈의 성능만 받쳐주면 똑딱이도 SLR 카메라와 같은 고화질 사진을 촬영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대다수 소비자는 간편하고 뛰어난 화질을 제공하는 똑딱이를 점점 선호했고 무겁고 값비싼 SLR는 일부 사진 애호가들의 영역으로 축소됐다. 실제로 콤팩트 기종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지난 1987년 20%에 달하던 미국 카메라시장의 SLR 판매비중은 10년이 지난 1997년 6%까지 급감했다.

 지난 1990년대 SLR 시장의 급속한 쇠퇴는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다수 고객은 적당한 화질을 보장하는 소형 카메라가 있다면 굳이 복잡하고 무거운 SLR 기종을 선택하지 않는다. 카메라 시장에서 SLR의 독점적 위치는 새로운 기술진보에 의외로 쉽게 무너질 여지가 있다.

 ◇디지털 시대, 카메라 역사는 반복된다=똑딱이와 SLR의 경쟁구도는 2000년대에 디지털 카메라 시대가 열리면서 새로운 양상으로 바뀐다.

 디지털 카메라는 필름이 아니라 CMOS센서로 렌즈 영상을 인식한다. 필름시대에는 거의 모든 카메라가 똑같이 35㎜ 필름을 사용했지만 디카시대에는 제조원가에 따라 크기와 성능이 천양지차가 나는 CMOS센서를 골라서 장착할 수 있다.

 카메라 제조사들은 절호의 기회를 만났다. 그들은 부가가치가 높은 DSLR와 값싼 콤팩트 디지털 카메라 간의 차별화를 위해서 제품라인업을 세심하게 재구성했다. 그저 쓸 만한 사진을 만드는 보급형 디카와 궁극의 화질을 원하는 전문가용 DSLR의 품질격차는 가능한 벌려 놓을수록 매출증대에는 더 유리했다. 결국 똑딱이 디카에는 새끼손톱만 한 저가센서, 값비싼 DSLR 기종에는 화투장 크기의 고화질 센서가 장착됐다.

 고객 시각에서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서 선택의 폭은 크게 줄었다. 보급형 디카의 낮은 화질에 만족하지 못하면 수백만원대의 크고 무거운 DSLR 기종으로 넘어가야만 했다. DSLR는 기존 SLR의 복잡한 기계식 구조에 디지털 영상기술을 억지로 접목시킨 형태여서 요즘 소비자 기호와 맞지 않는 측면이 많다. 예를 들어 SLR 특유의 반사경에 비치는 광학식 파인더는 자연광을 이용하기 때문에 민첩한 촬영에 유리하다. 그러나 최신 DSLR를 구매한 고객 대부분은 사진을 찍을 때 광학식 파인더를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다. DSLR의 뒤쪽 액정화면을 통해 적당한 구도가 잡힐 때 셔터만 누르는 편이 훨씬 편하다. SLR의 상징인 기계식 거울은 마치 맹장처럼 별 쓸모도 없으면서 제품가격을 높이고 내부공간만 차지하는 천덕꾸러기가 돼가고 있다.

 현재 DSLR 고객의 과반수는 궁극의 화질을 원하는 마니아층이 아니라 좀 더 깨끗한 사진을 원하는 일반 고객층이다. 그들은 기술적 대안만 있다면 무겁고 덩치 큰 DSLR를 내팽개치고 전향할 의사를 꾸준히 내비쳐 왔다. 지난 2000년대에 DSLR가 거둔 상업적 성공은 콤팩트 디카와 불평등 경쟁에서 유래한 일시적 현상이었을 뿐이다. 이 같은 시장분위기를 간파한 후발업체들은 2009년 하반기 새로운 형태의 카메라 기종을 속속 출시하면서 폭발적 인기몰이에 나섰다.

 ◇카메라 시장의 미래, 하이브리드 카메라=올핌푸스는 지난 7월 세계 최초로 거울 없는 렌즈교환식 디지털 카메라 펜(PEN)을 선보였다. 신형 카메라는 복잡한 반사기구가 사라진 덕택에 DLSR보다 훨씬 가볍고 슬림한 몸체에도 화질은 보급형 DSLR와 맞먹는다. 귀여운 디자인에 성능까지 뛰어난 새로운 컨셉트에 소비자는 열광했다.

 일명 하이브리드 카메라는 기존 콤팩트 카메라와 DSLR의 장점만을 결합한 혁신적인 제품으로 호평받고 있다. 일본에서는 출시 3개월 만에 고급 카메라 시장의 20%를 하이브리드 카메라가 점유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미주, 유럽 지역 등에서도 펜의 품귀 현상은 여전하다. 이미 파나소닉이 유사한 경쟁기종을 출시했고 삼성전자도 뒤따를 조짐이다.

 내년 하반기면 DSLR가 독점해온 다양한 렌즈군을 소화하는 카메라계의 작은 고추들이 속속 등장해서 춘추전국시대에 돌입할 것이다. 이는 DSLR보다 작은 고화질 디카가 시중에서 인기를 끈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19세기 중반에 시작된 필름 카메라의 오랜 유산이 마침내 청산되고 21세기에 어울리는 새로운 디지털 카메라의 표준이 정립된 것이다. 디지털 DNA를 부여받은 고화질 카메라의 확산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는 동시에 기존 DSLR 시장의 몰락을 예고하고 있다. 세계 카메라 시장에서 DSLR의 비중은 현재 7% 남짓하지만 오는 2015년이면 3∼4%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DSLR는 이제 카메라 시장에서 저무는 황혼을 바라보고 있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