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세상읽기] 재미있는 SF를 찾아서

[SF 세상읽기] 재미있는 SF를 찾아서

기획이나 창작 관련으로 여러 담당자와 이러저런 얘기를 나눠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피할 수 없이 들어야 하는, 정말 재미없는 말이 있다. ‘재미있으면 되죠’라는 말이다. 그러면 응수하는 말도 항상 정해져 있다.

 ‘그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아닌가요.’

 ‘재미’를 규정하거나 정량화한다는 일은 불가능하다. 물론 이런 주장에는 당장 반박이 생길 수 있다. (상당한 제작비를 들여) 엄청난 수익을 거둬들이는 할리우드 영화에는 항상 정해진 규칙이 있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어떡해서든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집어넣지 않으면 시청률을 보장할 수 없다는 TV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재미가 그처럼 단조롭고 천편일률적이라면 인류란 정말로 단순한 존재라는 얘기가 된다. 다행스럽게도 재미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미학에서도 추함의 미를 논하듯, 전형에서 벗어난 이야기들 또한 큰 재미를 주게 마련이다. SF만큼 상식 밖의 소재와 이야기를 다루는 장르가 또 없을 테니, 어찌 보면 SF의 존재야말로 인류의 가능성과 확장성을 방증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처럼 자족적인 궤변으로 서두를 꺼낸 이유는 혹여 SF란 무겁고 주제의식에 치우친 작품이 많다는 선입견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독자나 관객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주로 재미를 제공하는 SF들은 얼마든지 있다. 의미를 과도하게 덧칠하려는 일부 소수의 의견에 현혹되지 않는다면 재미를 주목적으로 하는 SF를 훨씬 더 많이 즐길 수 있다.

 이야기의 힘만 가지고 재미를 주었던 SF 작가에는 로버트 하인라인이 있다. 그야말로 ‘재미있는’ 장편 SF들을 써서 활동 당시 큰 인기를 끈 작가다. 영화 ‘스타십 트루퍼스’는 하인라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하지만 스타십 트루퍼스는 정치적 색깔 때문에 논란이 있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반면에 ‘여름으로 가는 문(The door into summer)’은 그야말로 주인공의 모험담을 즐길 수 있는 오락성 SF의 대표라 할 수 있다.

 대니얼은 발명가이자 공학자다. 하지만 지기인줄 알았던 친구에게 회사를 빼앗기고, 돈을 보고 대니얼에게 접근했던 연인도 그 배신극에 합류한다. 절망밖에 남은 것이 없던 대니얼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회사의 주식을 한 소녀에게, 유일하게 자신을 진심으로 따랐던 친구의 딸 리키에게 준다. 그리고 30년간 인공 동면에 들어간다. 하지만 동면에서 걸어나온 대니얼에게 세상은 그리 호락하지 않다. 어느새 기술은 훌쩍 앞서버렸으니 얻을 수 있는 일자리라고 해봐야 저임금 일용직뿐이다. 그러나 대니얼은 환경에 굴하지 않고 인생을 회복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설계했던 도우미 로봇 ‘프랭크’의 원형을 찾고자 노력하지만 대니얼이 인공 동면에 들어가는 날 사라졌다는 사실과 리키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런 대니얼 앞에 우연히 (이 억지스러운 우연을 큰 거부감 없이 읽는 이의 눈앞에 들이대는 것도 하인라인만의 능청스러움이다) 다가온 타임머신. 대니얼은 두 가지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엉뚱한 시간대로 날아갈지 모른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타임머신에 오른다.

 최근의 SF들은 도시 문화의 비정함이나 디스토피아적 요소가 넘치는 미래나 비관적 시선을 가진 인물들을 편애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여름으로 가는 문의 대니얼은 항상 힘이 있고 소설의 분위기는 밝다. 게다가 요사이 찾아보기 힘든 원형적 모험담에 충실한 작품이니, 사변성이 짙은 SF에 질려 원초적인 ‘재미’를 찾는 분들에게는 더없이 좋을 것이다.

김창규 SF작가 sophidia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