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기관 및 지방자치단체의 정보화 사업이 소프트웨어(SW)분리발주제도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다수의 SW를 묶어 본 사업과 분리 발주하거나 일정 부문으로 나눠 통합 분리발주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SW통합 분리 발주에 대한 명확한 제한 규정이나 지침을 마련해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23일 관련 업계에서 따르면,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4대보험 징수통합 정보시스템 구축 사업을 발주하면서 관련 SW를 모두 묶어서 128억원의 예산으로 본 사업과 분리 발주했다. 해당 SW는 총 60여종에 이르는 대규모 발주였다. 업계는 무려 60여개의 SW를 한꺼번에 통합발주하게 되면 대형 SI 사업자가 관여할 수밖에 없고 결국 기존의 통합 발주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지적이다.
SW분리발주 제도는 10억원 이상의 공공 정보화 사업을 진행할 때 5000만원 이상의 SW 사업을 따로 분리 발주해야 한다는 것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징수통합 사업은 이를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측은 전체 550억원 규모의 징수통합 사업을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시스템통합 등 총 3개 영역으로 나눠 분리 발주했다. 하지만 이렇게 SW 사업을 본 사업과 분리한다고 해도 SW끼리 통합 발주하면 제값 주고 품질 좋은 SW를 사자는 본래 제도 도입 취지는 퇴색될 수 밖에 없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 16일 SW 사업자 제안서 접수를 마감했지만 제안한 업체가 한군데도 없어 사업자 선정을 하지 못했다. 이에 SW 라이선스 수를 줄이고, 가격 경쟁력이 있는 국산업체 솔루션으로 윈백할 수 있는 조건을 내거는 등 RFP 내용을 일부 수정하긴 했지만 여전히 통합SW 발주라는 도입 방식을 바꿀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최고정보책임자(CIO)인 장석원 실장은 "SW가 한두개라면 가능하지만 60여종이 넘는 상황에서는 분리발주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며 "내부에서 1년내내 SW 벤치마크테스트(BMT)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외에도 이런 사례는 다양하다. 최근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정책연구팀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10월달까지 조달청 사전규격서 중 예외사업을 제외한 10억이상 사업 67건에 대한 SW분리발주에 대한 내용을 조사한 결과 21건이 분리발주제를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유는 기존 시스템과의 호환성 문제와 현저하게 지연될 우려 때문이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SW 도입 사업처럼 수십가지 SW를 모두 일일이 분리발주하는 것도 발주자 입장에서 지나친 업무 부담이고 관련 추진 비용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대규모 SW 발주의 경우 기능별 혹은 영역별로 SW를 분류해 일정부문을 구분해 통합발주하는 방안도 등장했다. 하지만 이 역시 구분 기준이 명확치 않은 상황이라 구분 단위가 커질 경우에는 통합SW 분리 발주의 한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물론 예외로 인정되는 사유도 있다. 국가계약법 시행규칙 84조에 따르면 기존 제품과의 통합이 어렵거나 SW 제품을 직접 구매해 공급하는 것이 현저하게 비효율적이라고 판단되는 경우 등에는 예외 사유로 인정한다. 하지만 이런 예외 사유에 대한 규정도 세부적으로 나와있지 않아 기관 담당자들이 예외 사유에 포함되는 것인지 아닌지를 판가름 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국내 SW 기업의 대표는 "예외 사유를 포괄적으로 인정해 줄 경우 실제 SW분리발주 대상 사업은 거의 없다"며 "예외 사유라 하더라도 발부계획서 및 입찰공고상에 SW 분리발주를 시행할 수 없다는 내용을 명시해야 하는데 그것조차 하지 않은 곳도 많다"고 말했다.
이에따라 업계에서는 예외 사유를 명확하게 구분 지을 수 있는 기준과 통합 SW 발주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부 관계자는 "SW 통합 발주는 자칫 분리발주제의 본래 취지를 실현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예외 사유에 포함이 되더라도 효율적으로 분리발주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기관별 추진되는 모든 사업의 환경이 틀리기 때문에 명확한 규정을 정하기가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