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네트워크] (5부)에너지=네트워크 ‘혼연일체’

 # A군은 주말 데이트를 위해 애인 B양과 남이섬을 찾았다. 남이섬에 있는 식당엔 태양광으로 전력을 생산하는 창문이 달려 있다. 식당 주인은 겨울이라 해가 나는 날이 줄긴 했지만 그래도 난방비 걱정은 없다고 자랑이다. 밤이 되자 A군은 애인에게 “차에 배터리가 다 된거 같아. 가다가 멈출 것 같은데…”라는 말을 슬쩍 흘린다. 그러자 B양이 쏘아붙인다. “배터리 없다는 알람도 안울렸는데 뭘 그래? 그리고 없으면 집에 있는 전기 무선으로 받으면 되잖아?” 꿀먹은 벙어리가 된 A군은 입맛을 다신다. ‘차에 에너지가 떨어질 일이 없으니 편하긴 한데… 씁쓸하구먼∼’

 환경오염, 에너지 고갈, 지구 온난화 등의 이슈가 부각되면서 에너지에 관한 전 세계의 관심은 높아져만 간다. 누구는 신재생에너지를 강조하고 다른 사람은 원자력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이라고 주장하지만 모든 에너지들은 결국 ‘전기, 전력’이라는 한 점으로 수렴된다.

 태양열이나 지열같은 일부 열원(熱原)을 제외하면 에너지원이 그대로 산업 현장이나 가정에서 쓰이는 일도 없거니와 쓸 수도 없다. 바람의 회전에너지, 조수간만의 위치에너지, 태양광의 광전효과는 모두 전기로 바뀌어 공급된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모든 시스템은 전기에 의존할 것임은 자명하다. 그래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고 모든 에너지는 전기로 통하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에너지원을 전기로 바꿔서 필요한 곳에 적절히 배분해 주는 전체 시스템, 즉 발전, 송전, 배전을 아우르는 전력망(그리드)의 중요성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하지만 매우 아쉽게도 현재의 전력망은 낡았다. 전기를 공급하는 쪽은 전기를 누가, 얼마나 필요한지, 또 얼마나 사용하는지, 낭비되는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기 공급량을 조절하는 기준을 60헤르츠(㎐)라는 표준 주파수에 두고 있다. 60㎐보다 주파수가 떨어지면 예비 발전소를 가동하고 주파수가 높아지면 가동률을 줄인다. 어림짐작의 성격이 클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한국전력공사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마찬가지다. 에디슨과 테슬라가 설계한 전력망 시스템 자체의 한계다.

 ◇미래 에너지 네트워크=여기서 등장하는 게 바로 똑똑한 전력망, 즉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다.

 통신, 네트워크, 소프트웨어(SW) 기술을 활용해 전력망을 업그레이드해 발전, 송전, 배전 현장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안정화함으로써 전력공급량 부족이나 대규모 정전 사태를 막는다. 양방향 통신 기능을 더해 기업 현장이나 가정의 전력 수요를 실시간으로 정확히 파악할 수 있고 전력수요도 조절한다.

 어디 그뿐인가. 풍력, 태양광처럼 시간에 따라 발전량이 급변하는 수많은 신재생에너지원을 전력 공급망과 조화시킬 수도 있고 남는 전력을 지금처럼 버리지 말고 모아 뒀다가 필요할 때 쓸 수도 있다.

 미래 네트워크는 바로 이런 에너지 네트워크다. 스마트 그리드는 특정한 기술이나 제품이 아니라 현재 전력망보다 전체적으로 업그레이드된, 지능적인 시스템이자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미래 사회 자체다. 네트워크화된 사회를 일컫는 ‘유비쿼터스’ 같은 개념이다.

 분명한 것은 통신기술을 활용함으로써 전력망의 모든 요소가 네트워크로 동등하게, 또 긴밀히 연결되는 것이다. 홍준희 경원대학교 교수는 이를 “형광등은 1000원짜리고 원자로는 2조원짜리지만 스마트 그리드에서는 둘 다 하나의 단말기라는 점에서 똑같다”고 말한다. 또 하나 분명한 것은 스마트 그리드와 혼연일체인 미래 네트워크가 전력회사, 소비자, 국가경제, 환경에 모두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아=물론 미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건 쉽지 않다.

 2008년 12월 미국 전기자문위원회(EAC)는 ‘스마트 그리드 : 새로운 에너지 경제의 동력원’이란 보고서에서 스마트 그리드 달성의 과제로 규제, 전력사업자 사업모델, 전력산업 전체의 공조전략 부재, 비용, 안정성 등 8개를 지목했다.

 기술적인 이슈도 많다. 송전자동화(transmission automation), 배전자동화(distribution automation), 신재생에너지시스템과 전력망의 통합(renewable integration), 스마트 미터링(smart metering), 분산전원 및 안정적인 에너지저장시스템 구축(distributed generation & storage) 등 어려운 기술적 성과를 달성해야만 한다. 에너지와 통신, 네트워크 시스템이 완전히 융합되는 만큼 표준화의 문제도 크다. 에너지 네트워크 구축에 전력, 에너지, 네트워크, 통신 등 관련 업계 모두의 힘이 모아져야 한다는 뜻이다. 마크 맥그라나한 미국 전력연구원(EPRI) 이사도 “스마트그리드(인텔리그리드)를 추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표준화’”라고 말했다.

 ◇발빠른 대응…기대감 무럭무럭=우리나라는 다행스럽게도 미래 에너지 네트워크 구축에 빨리 나선 편이다. 올해 G8 확대정상회의(G20)에서 우리나라는 이탈리아와 함께 스마트그리드 선도국가로 지정됐다. 2000년대 중반부터 일찍이 ’전력IT’에 투자해 온 탓이다. 지난 19일엔 지식경제부가 국내 스마트그리드 구축 로드맵 초안을 발표하고 공청회를 열기도 했다.

 최근엔 제주 지역에 건설될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 사업자로 8개 컨소시엄이 지정되기도 했다. 러시아, 미국, 일본과 함께 전력기술 선도국으로 인정받는 우리나라가 역시 세계 최고의 기술과 노하우를 보유한 통신, 네트워크 기술을 적극 활용해 선도적으로 미래 에너지 네트워크를 구축하면 향후 수십, 수백조원대로 성장할 에너지 네트워크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에너지 미래 네트워크를 기대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최순욱기자 choisw@etnews.co.kr